"사회학, 좌파가 탈취"…교수들 발칵 뒤집은 플로리다 방침
미국 플로리다주(州)가 지역 내 공립대학들의 졸업 필수 과목에서 사회학을 제외하기로 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회학이 급진적인 사회 운동을 부추기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플로리다 주지사 이사회는 지난달 24일 주(州) 내 12개 대학교 43만명 학생의 졸업 필수 과목에 사회학을 없애기로 했다. 대신 1776년 미국 독립부터 1877년까지 역사를 다룬 개론서 격인 '사실에 입각한 역사' 과정을 도입하기로 했다.
주지사 이사회는 지역 내 대학 교육 과정 등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이사회 구성원 17명 중 14명을 주지사가 임명하고, 주 상원의 승인을 받는다.
플로리다 주지사 이사회 다수는 최근 미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사퇴한 론 디샌티스가 임명했다. 그동안 디샌티스 주지사는 '워크(Woke)' 철폐를 앞세워 보수 적자 이미지를 공고히 구축해왔다. '깨어있다'를 뜻하는 워크는 차별이나 사회 정의,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각성을 뜻하지만, 보수 진영에선 PC를 비꼬는 의미로 쓴다.
디샌티스도 워크를 진보적 정체성을 강요하는 이른바 '좌파 담론'으로 간주하며 비판적 자세를 취해왔다. 이 같은 입장을 반영해 지난해 1월 플로리다 공립 고등학교에서 AP(대학 과목 선 이수제) 과목 중 하나인 '미국 흑인 역사'를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그해 4월에는 성적 지향·성 정체성 교육을 한국의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12학년까지 금지하기도 했다. 앞서 2022년 디샌티스는 9세 이하 어린이에게 성 정체성 등을 교육할 수 없게 하는 '부모의 교육권리법(게이 언급 금지법·Don’t say gay)'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이 학문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 셈이다. 디샌티스 주지사가 임명한 이사회 소속이자 플로리다 주(州) 교육부 장관인 매니 디아즈 주니어는 자신의 SNS X(옛 트위터)에 "좌파에 탈취당한 사회학이 이제 더는 학문 본연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 공립대학들이 '워크' 이데올로기를 심어줄 게 아니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로리다주의 '사회학 몰아내기'에 학계와 교수는 반발하고 있다. 미국사회학협회는 성명을 통해 "사회학을 그저 급진적이고, '워크'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불법 학문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어떠한 합리적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학은 사회 변화, 인간 행동의 사회적 원인 및 결과에 대한 과학적 연구"라며 "다양한 직업 활동에 밑바탕이자 시민 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디샌티스의 조치를 옹호하기도 했다. 주카 사볼라이넨 미 웨인주립대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을 통해 "1996년부터 학부에서 사회학을 가르쳤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회학이 뻔뻔스럽게 정치적이 됐다"며 "과학적 연구에서 이젠 좌파가 주도하는 각종 운동을 학문적으로 옹호하는 역할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플로리다주(州)가 워크 철폐를 외치며 강경한 정책을 이어가자 저명한 지식인들이 이탈하는 현상도 빚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플로리다 대학교에서 세법 등을 가르치는 경제학자 닐 뷰캐넌은 재직 4년 만에 종신 교수직을 사직했다. 그는 한 법률 전문지 칼럼에서 "이곳에서 발생하는 두뇌 유출이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월터 부트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 종신 교수도 뉴욕주에 있는 웨일 코넬 의과대학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는 지난 2008년 플로리다 주립대 교수직을 수락하면서 "남은 경력을 보내고 싶은 좋은 대학"이라고 평했지만, 2019년 디샌티스 주지사가 취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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