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료공장도 힘든데 핵잠? 김정은 '위험한 버킷리스트' 진실
‘김정은의 위험한 마지막 버킷리스트’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대한 군 당국의 평가는 이 같은 표현으로 요약된다. 핵·미사일의 진정한 ‘게임체인저’로서 역할이 핵추진 잠수함에 달려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에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 평가는 엇갈리지만,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상황을 시사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북한 ‘5대 과업’ 중 마지막에 자리한 핵잠수함
‘2022 국방백서’에는 북한 핵추진 잠수함을 바라보는 군 당국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백서는 “북한이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위해 전략무기 최우선 5대 과업을 제시했다”며 ①초대형 핵탄두 생산 ②1만5000㎞ 사정권 안의 타격 명중률 제고 ③극초음속 활공비행 전투부 개발 ④수중 및 지상 고체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⑤핵잠수함과 수중 발사 핵전략무기 보유를 꼽았다.
사실 북한은 5대 과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해당 용어가 처음 등장한 건 8차 당대회가 끝나고 8개월 뒤 2021년 9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서였다. 당시 신문은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 시험발사를 알리며 “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 개발 5개년 계획의 전략무기부문 최우선 5대 과업”이라고 설명했다.
5대 과업의 존재가 뒤늦게 드러나면서 8차 당대회에서 언급된 무기 개발 계획 내용이 다시 소환됐다. 군 당국은 핵추진 잠수함을 가장 마지막 항목에 배치하며 5대 과업을 추렸다. 여기엔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가 당장 쉽지 않은 과제이지만, 현실로 다가올 경우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함의가 담겼다.
김정은은 8차 당대회에서 직접 핵추진 잠수함에 대해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 단계에 있다”고도 소개했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뜸하다가 지난해 9월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 진수식 때 오랜만에 언급됐다. 김정은은 진수식 축하연설에서 “앞으로 계획돼 있는 신형 잠수함들 특히 핵추진 잠수함과 함께 기존의 중형 잠수함들도 발전된 동력체계를 도입하고 전반적인 잠항작전능력을 향상시키겠다”고 말했다.
이후 김정은은 지난달 28일 함경남도 신포 인근 해상에서 이뤄진 잠수함발사순항미사일(SLCM) '불화살-3-31형' 시험발사 현장에서 핵추진 잠수함 얘기를 다시 꺼냈다. 북한 매체는 김정은이 “핵동력(추진) 잠수함과 기타 신형 함선 건조 사업과 관련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해당 부문들이 수행할 당면 과업과 국가적 대책들을 밝혔으며 그 집행 방도에 대한 중요한 결론을 주셨다”고 전했다. 핵추진으로 움직이는 잠수함에서 핵공격을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한 결론’으로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기술 수준 미달” “러시아 변수 주목” 北 핵잠수함에 엇갈린 시선
그러나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을 놓고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관건은 잠수함에 탑재될 소형 일체형 원자로 확보 여부다. 핵추진 잠수함은 농축 우라늄으로 증기를 발생시켜 터빈을 돌리는 원리로 작동하는데, 이를 위해선 밀폐 구조의 소형 일체형 원자로가 필요하다. 고도의 기술로 고온·고압을 견디는 특수강, 배관 등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비료를 만드는 화학공장조차 해당 기술 미비로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게 북한의 현실이다.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할 소형 원자로 지상 시험 관련 정황이 아직 포착되지 않은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중국 핵추진 잠수함의 경우 1960년대 개발을 시작했다가 1980년대 들어 정상 가동했을 만큼 고난도 기술을 요구한다”며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은 선행연구 정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의 기술 개발 속도를 가볍게 봐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비밀리에 소형 원자로 시험을 거듭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는 “최고지도자가 ‘최종 심사 단계’에 이어 ‘중요한 결론’을 언급할 정도면 개발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뜻”이라며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해석했다.
러시아의 기술 지원 가능성도 주목된다. 김정은이 핵추진 잠수함을 다시 거론하기 시작한 시점이 북·러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해 9월이라는 점은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소형 원자로 기술 지원 등을 놓고 러시아와 논의가 진행 중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군 당국은 올 상반기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관련 기술 지원이 가시화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北 핵잠수함 보유…국제사회 판 흔든다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국제 정세를 크게 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본토가 공격당하더라도 수중에서 얼마든지 반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핵 위협 능력을 급격히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핵추진 잠수함은 이론적으로 원자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무한대로 잠항할 수 있다. 속도 역시 시속 40㎞로 디젤 잠수함의 시속 12㎞보다 월등히 빠르다. 핵추진 잠수함이 이른바 ‘제2격(Second Strike)’ 개념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유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추진 잠수함은 ICBM, 전략폭격기와 함께 3대 핵전력을 구성한다”며 “이 중 가장 위협적인 건 단연 핵무기로 무장한 핵추진 잠수함”이라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북한이 핵추진 잠수함을 기반으로 핵 위협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한국은 핵잠 추진하다 중단…SLBM 대응 필요성
한국에서도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이 꾸준히 거론된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대응하는 데 핵추진 잠수함의 장기간 작전 능력과 추적 능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논리다. 문근식 교수는 “적 잠수함을 잡으려면 이보다 1.5~2배 빠른 속도를 내야 한다”며 “핵추진 잠수함이 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군 당국은 2019년 장보고-Ⅲ 배치-Ⅲ를 디젤ㆍ전기 추진의 재래식 잠수함인 배치-Ⅰ(3000t), 배치-Ⅱ(3600t)와 달리 4000t급 핵추진 잠수함으로 건조하는 계획을 검토했다. 배치(Batch)는 같은 종류로 건조되는 함정들의 묶음이며, 로마 숫자는 성능 개량 순서다.
하지만 핵추진 잠수함 논의는 현재 중단된 상태다.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 우선순위가 밀린 것으로 보인다. 양욱 연구위원은 “적 기지 인근에 장기간 대기하고 있다가 적 잠수함을 추적해 타격하는 건 확률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며 “핵추진 잠수함이라고 해도 2주 이내로 승조원을 교대해야 하는 등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별개로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라 한국은 우라늄을 20% 미만으로만 농축할 수 있고, 원자력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협정을 개정하지 않는 한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미 핵추진 잠수함처럼 높은 효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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