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70살 먹은 구닥다리? 되레 찬사받는 현역, F-16과 C-130 [이철재의 밀담]
1974년 1월 2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 기지의 활주로 위에 1대의 항공기가 올랐다. 날렵하게 생긴 항공기는 곧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추력을 최대한으로 높이고는 활주로를 빠르게 달렸다.
고속 활주 시험(High Speed Taxi Test)이었다. 실제로 날 수 있도록 연료를 넣고 최대로 가속하는 테스트였다. 첫 시험비행에 앞서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그런데 동체가 휘청거려 날개끝이 지면에 긁힐 정도였다. 조종사는 차라리 이륙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항공기가 하늘을 날았다. 의도치 않은 최초 비행이었다. 기지를 한 바퀴 돈 뒤 활주로에 가볍게 내렸다.
이 항공기는 YF-16이었다. 1975년 1월 13일 미국 공군은 이 항공기를 제공전투기(ACFㆍAir Combat Fighter)로 선정한 뒤 시험기를 뜻하는 Y를 떼고 ‘파이팅팰콘(Fighting Falcon)’이라는 통상명칭(별명)을 달았다. F-16의 첫 비행은 초라했다.
김형철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원장(전 공군참모차장)은 “F-16은 원래 작고 가볍고 가속력이 좋은 데다 시험 조종사가 당시 처음 도입된 플라이 바이 와이어(Flight-By-Wireㆍ전자비행제어방식)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1974년 2월 2일 원래 계획했던 첫 비행에서 YF-16은 고도 3만 피트(9144m)와 시속 400 마일(약 시속 648㎞)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활짝 열렸다. 올해는 F-16 파이팅팰콘과 C-130 허큘리스(Hercules)의 정주년(꺾어지는 해)이다. 첫 비행을 기준으로 F-16은 50살, C-130은 70살이 각각 됐다. F-16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투기이며, C-130은 인도주의 작전에서부터 특수작전까지 못 하는 게 없는 수송기다. 둘 다 베스트 셀러(F-16 4604대(2018년), C-130 2700대 이상)며, 한국 공군의 주력이다.
이상은 보이드, 그러나 현실은 공군
F-16 1호기, 그러니까 YF-16은 1973년 12월 13일 미국의 방위산업 회사인 제너럴다이내믹스의 포트워스 공장에서 생산됐다. 제너럴다이내믹스는 나중에 항공기 사업 부문을 록히드마틴에 팔았다. 지금은 록히드마틴이 F-16을 생산한다.
미 공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월맹의 미그-21과 미그-19 때문에 뼈아픈 손실을 겪고선 경전투기를 찾았다. 미그기들은 당시 미국의 주력 전투기인 F-4 팬텀과 비교하면 작고 날렵했다. 조종사 출신의 연구자인 존 보이드 대령과 수학자 출신의 국방부 당국자인 토머스 크리스티 박사 등 ‘전투기 마피아(Fighterr Mafia)’는 경전투기가 앞으로 공중전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공군은 ACF에서 값싼 획득ㆍ운용 비용, 넓은 행동반경, 높은 기동성, 작은 선회반경을 갖춘 YF-16의 손을 들어줬다.
전투기 마피아의 바람대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ACR은 전투기 마피아의 바람대로 굴러가진 않았다. 전투기 마피아가 꿈꾼 경전투기는 레이더가 없거나, 있더라도 간단한 레이더만 달고, 기관포와 몇 발의 단거리 미사일로 무장한 것이었다.
미 공군은 입맛에 맞게 F-16을 ‘제멋대로’ 만들었다. 더 강력한 레이더에 더 튼튼한 랜딩기어(착륙장치), 더 많은 무장능력 등등…. 현실의 F-16은 전투기 마피아의 이상과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전투기 마피아들은 개탄했다.
F-16은 개량을 거치면서 최신 전자장비로 갈아끼우고, 무장능력을 키우고, 새로운 기능을 더하면서 무게가 더 무거워졌다. 그런데도 F-16은 50년 넘게 4600대 이상이 만들어졌고, 28개국에서 도입했다(현재 운용국 26개국). 에비에이션위크의 한국통신원 김민석씨는 “F-16에 대해 외국 전문가들은 ‘무에타이 선수로 태어나서 이종격투기 선수로 변신했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은 F-16에 눈독을 들였지만, 미국의 반대로 입맛만 다셨다. 그러다 1986년 F-16C/D형 블록32 36대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환율이 떨어져 예산이 남은 덕분에 F-16D 4대를 더 도입했다. 이때 들여온 F-16을 F-16 PB라고 한다. 당시 F-16 도입 사업을 피스브리지(Peace Bridge)라 불렀기 때문이었다.
1991년 KFP(Korean Fighter Programㆍ한국형 전투기 사업)에서 F-16이 최종 승리해 F-16C/D 블록52 120대를 공군이 더 확보했다. 120대 중 12대는 직도입, 36대는 조립생산, 72대는 면허생산 방식이었다. 한국은 항공산업에 입문할 수 있었다. 1999년 20대의 추가 도입이 결정됐다. 이들 140대는 KF-16이라고 따로 부른다.
러시아와 2년 넘게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덴마크와 네덜란드로부터 중고 F-16을 들여올 계획이다. 현재 전투기가 한 대도 없는 아르헨티나는 덴마크의 중고 F-16 24대를 사와 전력 공백을 메우려 한다. 불가리아는 F-16 16대를 2025년부터 도입한다.
44 대 0의 일방적 스코어
F-16은 냉전과 탈냉전 시대 각종 국제 분쟁에서 맹활약했다. 미국은 걸프 전쟁, 유고 내전,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F-16을 투입해 지상목표를 타격하는 임무를 주로 맡겼다. 미 공군 F-16의 첫 공중전 기록은 1992년 12월 27일 이라크 남부에서 F-16D가 유엔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NFZ)으로 넘어온 이라크의 미그-25를 AIM-120A 암람 공대공 미사일로 격추한 것이다.
F-16의 진가를 보여 준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F-16A는 1981년 4월 28일 시리아의 Mi-8 히프 헬기 2대를 20㎜ 기관포로 떨궜다. 이게 F-16의 최초 공중전 기록이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14일 이스라엘의 F-16A는 시리아의 미그-21을 격추했다.
이스라엘은 1982년 6월 6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축출한다며 레바논을 침공했다. 제1차 레바논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6월 9일부터 사흘간 베카 계곡에서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결과는 86대 1. 이스라엘의 RF-4E 팬텀 1대가 시리아의 대공포 사격으로 추락한 게 유일한 손실이었다.
특히 이스라엘 F-16은 단 한 대의 손실 없이 시리아의 미그-21과 미그-23 등 44대를 격추했다. 또 이스라엘 F-16은 베카 계곡의 시리아 레이더와 방공전력을 제거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F-16은 1981년 6월 7일 이라크의 오시라크 원전을 폭격한 오페라 작전(Operation Opera), 2007년 9월 5일 시리아의 알키바 원전을 타격한 상자 밖 작전(Operation Outside The Box)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역사적인 앙숙이자 아직도 분쟁 중인 튀르키예와 그리스는 모두 F-16을 갖고 있다. 2006년 5월 23일 튀르키예의 RF-4 정찰기와 이를 호위하던 F-16 편대를 그리스 공군 F-16 편대가 요격했다. 양측 F-16은 서로 도그파이트(Dogfightㆍ근접 공중전)를 벌이다 두 전투기가 충돌해 추락했다.
1996년 10월 8일 그리스의 미라지 2000은 튀르키예 F-16D를 향해 R.550 매직 Ⅱ 공대공 미사일을 발사해 격추했다. 이게 공중전에서 유일한 F-16의 패배 사례다. 1974년 이후 지금까지 F-16의 실전 기록은 적기 격추 76대, 손실 6대다. 손실 중 5대는 방공 전력에 의한 것이었다.
매에서 독사로 더 독해진 전투기
F-16은 통상 7.8t까지 무장과 연료를 탑재할 수 있다. M61A1 20㎜ 벌컨포 1문으로 무장했고, 동체 중앙(1)ㆍ주익 양쪽(6)ㆍ주익 끝단(2) 등 9곳의 외부 무장기본장착대에 공대공ㆍ공대지ㆍ공대함 미사일을 달 수 있다. 여기에 외부연료탱크나 전자 방해 공격(ECM) 포드도 장착할 수 있다.
공기흡입구 아래 동체 좌우의 장착대에는 임무에 따라 항법 포드와 조준 포드 등을 달 수 있다. 이들 포드를 장착할 경우 정밀타격과 적 방공시설 제거가 가능해진다.
F-16은 배다른 형제들이 많다. F-16 설계를 바탕으로 한국은 T-50 골든이글과 FA-50을 각각 개발했다. 일본의 F-2, 타이완의 F-CK-1 징궈(經國)도 F-16의 피를 물려받았다.
F-16이 50살이지만, 구닥다리는 아니다. 지금도 발전하고 있다.
요즘 F-16의 대세는 F-16V 블록70이다. 블록70의 별명은 바이퍼(Viperㆍ독사)다. AN/APG-83와 같은 능동형 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AESA) 등 항전 장비와 전자전 장비를 새로 바꿨다. 동체 상부에 컨포멀 연료탱크를 달면 작전 반경이 1000㎞급으로 늘어난다. 공군은 보유 F-16을 F-16V로 업그레이드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민석씨는 “F-16이 이처럼 21세기에도 쌩쌩하게 날 수 있는 배경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약속(Promise)된 기적(Miracle)
5학년이 된 F-16이 놀랍지만, 7학년인 C-130은 경이롭다. C-130은 미국 조지아주 매리에타 공장에서 2700대 이상이 생산됐다. 73개국(현재 운용국 66개국)에서 C-130을 도입했다. 매리에타 공장은 아직도 주문을 받고 있으며,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이다. 김민석씨는 “전 세계 군용기 중 KC-135·B-52·Tu-95 등 50년 이상 장수한 기체들이 많지만, 70년 동안 꾸준히 개량되고 신규 생산된 건 C-130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C-130의 최초 비행은 1951년 8월 23일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의 록히드 에어 터미널에서 이뤄졌다. 록히드 마틴의 전신인 록히드는 1951년 7월 2일 YC-130 2대를 만들어 납품하는 계약을 미 공군과 맺었다.
미 공군이 C-130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6ㆍ25 전쟁이었다. 미 공군은 한반도로 부지런히 병력과 물자를 나르며 튼튼한 전술수송기가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92명의 병력 또는 완전무장한 64명을 태우고 약 1945㎞ 이상을 날 수 있고, 짧은 비포장 활주로에서 이착륙할 수 있으며, 엔진 중 1개가 고장 나도 비행할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록히드의 C-130이 간택됐다.
그리스 신화의 장사 헤라클레스(허큘리스)라는 별명답게 C-130은 돌쇠 중 돌쇠다. C-130은 넓은 적재함과 짧은 랜딩기어를 갖췄다. 대형 화물의 공중투하가 가능하며, 비포장 활주로는 물론 빙판이나 항공모함에서 이착륙도 할 수 있다. 최신형 C-130J 수퍼허큘리스(Super Hercules) 기준으로 3만 3000㎏까지 탑재할 수 있으며, 최고 속도 시속 671㎞로 날 수 있고, 1만 5400㎏의 화물을 싣고 3334㎞까지 갈 수 있다.
C-130은 팔레트 탑재 시스템을 군용기에 최초로 채택했다. 그래서 기존 수송기보다 화물을 빠르고 손쉽게 싣고 내릴 수 있다.
공군은 C-130H 12대와 C-130J 4대를 갖고 있다. C-130J는 C-130H보다 최고 속도, 화물 적재량과 항속거리를 키우고, 자동화로 승무원(5명→3명)을 줄인 기종이다.
지난해 4월 21일부터 25일까지 내전이 일어난 수단에서 교민 28명 등을 무사히 구출한 프라미스 작전에서 C-130J가 큰 역할을 했다. 2021년 8월 24~2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한국 협력 아프가니스탄인 391명을 데려온 항공기도 C-130J다. 위험한 환경에서 짧은 거리로 이착륙할 수 있는 항공기가 C-130J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척척, 다재다능 일꾼
C-130은 정말 다양한 곳에서 쓰인다. 그래서 C-130 앞에 다양한 임무를 뜻하는 알파벳이 붙는다.
MC-130 컴뱃탤런(Combat Talon)은 특수전 지원기다. 레이더와 전자장비 덕분에 야간 초저공 비행이 가능하다. 낮게 천천히 날기 때문에 특수부대원이 정확한 위치에 강하할 수 있다. 김민석씨는 “독일ㆍ프랑스ㆍ영국 등 A400M이나 C-17이 있는 국가들도 특수작전용 등으로 C-130을 굳이 구매해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AC-130은 지상에 화끈한 화력을 퍼붓는 건십(Gunship)이다. 최신형 AC-130J 고스트라이더(Ghost Rider)는 105㎜ 포 1문을 갖췄고, AGM-114 헬파이어 등 각종 정밀타격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 AC-130J는 고출력 전투 공수 레이저 시스템(AHEL)도 무장할 계획이다.
EC-130J 코만도솔로(Commando Solo)는 적진에 라디오ㆍTV 전파를 송신해 심리전을 수행한다. 한마디로 해적방송용 항공기다.
KC-130는 헬기나 틸트로터와 같은 저속 항공기에 연료를 공급할 수 있는 공중급유기다.
LC-130의 랜딩기어에 스키가 달렸다. 극지방 수송을 위한 개조다. 미 공군은 C-130에 플로팅(부유) 랜딩기어를 달아 수상기로 쓰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WC-130은 기상관측기다. 별명은 ‘허리케인 헌터’. 미국에서 대형 산불이 나면 주방위 공군의 C-130이 출동해 진화한다. 모듈식 항공 진화 시스템(MAFFS)을 단 C-130은 1만L 이상의 물을 담을 수 있다.
이밖에 해상초계용의 PC-130, 귀빈수송용의 VC-130, 정찰용의 RC-130 등이 있다. 록히드는 C-130을 민수용으로 바꾼 L-100을 1962년 출시했지만, 114대를 파는 데 그쳤다.
매년 크리스마스면 C-130은 사랑을 싣고 난다. 다국적 C-130 편대는 태평양의 섬을 돌며 의약품ㆍ의류ㆍ선물이 담긴 상자를 떨어뜨린다. 1952년부터 이어진 크리스마스 수송작전(Operation Christmas Drop)이다. 공군은 2021년 처음 참가했다.
미국 조지아주 상원은 지난달 9일 C-130 70주년을 기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에서 조지아주 상원은 “C-130은 조지아의 우주항공 대사”라며 “앞으로 10년 더 C-130을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공자(孔子)는 나이 50에 하늘의 뜻을 알았다며 지천명(知天命), 나이 70에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從心所欲 不踰矩)며 종심(從心)이라고 했다. 2024년 F-16은 하늘을 지키는 뜻을 알았으며, C-130은 도움이 필요하다면 어느 곳이라도 제 맘대로 가는 군용기로 자리 잡았다. F-16과 C-130은 자유 세계를 지켰고, 지금도 지키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래 지킬 것이다. 두 군용기의 헌신에 찬사를 보낸다.
이철재 국방선임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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