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독특한 색상은 도공의 의도와 상관 없어"
[김희정 기자]
▲ 한도현 도예가의 '연청진사' 작품(가운데 작품), 한도현 갤러리에서 |
ⓒ 김희정 |
한도현 도예가는 1960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전통 도자 문화 속에서 지냈다. 1960년대 초 수광리에서는 도예가들이 상감청자 등 우리나라 전통도자기 재현에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칠기를 생산해 온 일명 칠기가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수교 이후 우리 전통도자기가 호황기에 접어들자 수광리에는 도자기 공장이 늘어놨다. 도자제작기술을 배우거나 도자 관련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수광리는 청자· 백자· 진사백자· 분청 등 우리 전통도자문화를 부활시킨 도예마을이었다.
한 도예가가 수광리에서 본격적으로 도자 관련 일을 한 해는 1980년이었다. 그는 그로부터 44년 동안 청자·백자·분청사기·천목다완·한국계영배·진사백자·진사요변·황금진사·연청진사 등 전통도자기 제작·재현·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본인이 개발한 진사유약, 그리고 장작불의 변화를 이용해 진사요변(붉은 빛이 감도는 전통 진사 도자기를 구울 때 불꽃의 성질이나 잿물 상태로 인해 가마 속에서 변화가 생겨 변색하거나 모양이 일그러지는 것, 언론 인용)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한 도예가는 1996년 이천도자기축제 단체전을 비롯해 2018년 런던 사치박물관 등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영국·중국·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시한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참여했다. 2010년 예술의전당, 2012년 미국 산타페 게버트 컨템퍼러리 갤러리(Gebert Contemporary Gallery)등 국내 외에서 여러 차례의 개인전도 열었다. 2005년 문경 전국 찻사발 공모전 금상 및 특선, 2018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최우수상, 2022년 이천시 문화상(문화부문) 등 수상 경력도 다채롭다. 2023년에는 이천시도자기명장에 선정됐다.
일본 국보보다 더 뛰어난 명품 만들고파
- 이천시도자기명장에 선정된 것을 축하드린다.
"감사하다. 이천에는 수십 년간 자기만의 도자 세계를 구축하며 전통도예작업을 하는 도예가가 많다. 겸허하게 더 좋은 명품, 내실있는 작품 제작에 정성을 다하겠다."
- 도예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80년, 둘째 형님이 운영한 동해도요(신둔면 수광리), 토종 홍재표 선생님의 이조도요(신둔면 수광리)에서 일했다. 이후 대학에 입학했고 군대에 다녀온 후 우당 한명성 할아버지의 우당고려청자연구원(신둔면 수광3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4년 넘게 일했는데 어느 날, 우당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도자기의 귀재(鬼才)라고 말씀하시며 칭찬해주셨다. 그것이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
이후 진주, 단양 등 여러 지역에 계신 도자 기술과 실력이 뛰어난 장인과 도공을 찾아다녔다. 당시 숙식을 제공받되, 임금은 받지 않고 선생님들께서 시키는 일은 성실하게 열심히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통도자기 제작과정을 몸으로 익히게 됐다. 청자, 고백자, 분청, 다완 등 전통 도자 제작에 관한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우고 습득했다. 도자기 복원이나 작품 중 일부 깨진 부분을 보수하는 기술도 터득했다.
▲ 한석봉도예 한도현 도예가 |
ⓒ 김희정 |
- 임금도 받지 않고 열심히 도예를 배울 때 어떤 꿈이 있었을 것 같다.
"당시 내 꿈은 일본의 국보보다 더 뛰어난 명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당시 일본을 70회 이상 다녔다. 일본 도자기 명품을 보고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명품을 향한 꿈은 지금도 여전하다."
- 그 시절 기억나는 선생님은?
"당시 대한민국에서 장작가마 불 때기(소성)의 대가셨던 김현재 선생님, 청자와 백자 장인이며 장작불을 탁월하게 잘 때시던 박헌영 선생님(당시 신둔면 사음리 거주. 현 사음동)이 생각난다. 선생님들이 가마에 불 땔 때 나무 갖다 드리며 불 때는 방법을 배웠다. 두 분 다 소천하셨지만 내 마음에서는 진정한 장인으로 남아 있다."
- 도자기를 배울 때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1980년대 중반이었다. 우리나라 전통도자기의 호황기였다. 이천에 도자기 판매상인들이 많이 왔었고 그들은 몇 달 전부터 도자기공장에 현금을 갖다주며 가마에서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겨울이었다. 가마에 불을 때는데 비가 내렸다. 가마 내부 천장에 습기가 차고 헐어서 흙하고 물이 도자기 위로 뚝뚝 떨어졌다. 불을 서서히 때면서 가마를 예열 시켜야 하는데 급하게 불을 때서 생긴 일이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과 방수 모자 쓰고 전투화 신고 가마 안에 들어가서 가마를 뜯고 보수했다. 그을음이 가마 안에 가득 차 기침이 쉴새 없이 나오는데 가마를 보수했다. 비과학적이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 우리 선배들이 발휘한 지혜였다."
▲ 한석봉도예 망생이가마, 이 가마는 2024년이 가기 전에 이천시 신둔면 인후리로 이전을 한다고 한다. |
ⓒ 김희정 |
- 가마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린다.
"이 가마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수백 년간 우리 선조들이 사용해온 가마 형태이다. 전통 장작가마, 흙가마, 망생이가마라고 한다. 가마 내부를 망생이(망댕이. 무 모양의 흙벽돌)를 아치형으로 차곡차곡 쌓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겉은 볏짚을 섞은 황토흙으로 덮었다. 승염식(昇焰式)으로 가장 원시적인 형태이며 봉통부(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불이 가마칸 사이에 있는 살창(불이 나가는 통로)을 통과해 위로 올라간다.
경사는 13도~15도이다. 가마칸(변조실)은 총 다섯 칸이고 각 칸마다 출입구가 1개 있다. 2번 칸은 처음엔 망생이였으나 내화벽돌로 바꿨다. 가마를 오래 사용하다 보니 2번 칸이 무너져서 보수했다. 그 외 나머지 칸 내부는 전체가 망생이다. 1989년 둘째 형하고 같이 제작했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이 가마에 작품을 굽는다."
- 1년에 가마에 불은 몇 회 정도 때나?
"불은 1년에 평균 4~6회 정도 땐다. 보통 흙가마는 20년 정도 사용하는데 우리 가마는 36년째 불을 때고 있다. 가마 안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보수한 데도 많다. 가마를 튼튼하게 만들었어도 불을 하도 많이 때니까 그렇다. 가끔 혼자 가마한테 얘기한다. '내가 너를 너무 혹사시켰다. 고생 많이 했다'라고. 가마한테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 장작가마에 불을 때면서 실패한 작품 사례도 있었을 것 같다.
"실패한 사례는 많다. 그 가운데 1990년대 중반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서 작품 의뢰가 왔다. 대기업에서 외부 손님들한테 우리 전통도자기를 선물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청자 작품 불 때기에 실패했다. 전에 분청사기 작품이 매우 잘 나와서 청자도 같은 방식으로 불을 땠는데 그것이 원인이었다. 당시 나의 불 때는 실력은 부족했다. 그래도 작품이 나올 때까지 믿고 기다려주시고 도움주신 현대전자 관계자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다."
▲ 진사요변 작품 |
ⓒ 김희정 |
- 진사요변 작품은 신비하고 수려하다. 어떻게 불을 때야 이 경지에 달할 수 있는가?
"진사요변(窯變)은 가마 안에서 불과 진사유약이 만나 도자기 색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작품을 얻으려면 우선 불을 수없이 많이 때봐야 한다. 그 외 아름다운 진사요변 작품을 얻기 위한 중요한 사항을 세 가지로 이야기해보겠다.
첫 번째는 진사요변 작품은 가마에 재임시 배치 간격을 다른 작품보다 넓게 한다. 가마 안에서 작품 배치 간격은 불과 공기의 흐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불을 땔 때 가마 안에 그을음(카본)이 발생하는데 간격이 넓으면 그을음이 잘 빠져나가 도자기가 깔끔하게 구워진다.
두 번째는 장작이다. 장작은 보통 3년 이상 말린 소나무를 사용한다. 장작은 3년에서 7년 정도 말렸을 때 화력이 좋다. 바로 구입한 나무는 송진 등이 남아 있어 화력이 떨어진다.
세 번째는 도공(陶工)이나 화부(火夫)의 불 때는 기술(솜씨)이다. 보통 장작가마에 불을 땔 때 환원소성이나 산화소성 중 한 가지 방식을 취한다. 한데, 진사요변 작품은 환원과 산화를 번갈아 땐다. 한 종류의 작품에 불 때기를 두 번 하는 것이다.
그렇게 불의 온도가 1,300~1,500도까지 올라가면 불이 도가기 표면의 유약을 만나 독특한 디자인과 색상, 아무도 모방할 수 없는 3차원 4차원 세계의 작품이 탄생한다. 이는 도공의 의도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도공은 불의 흐름을 주시하며 장작을 넣을 뿐이다. 이렇게 하루 이상의 불 때기를 마치고 가마를 3~4일 식힌 후 작품을 만난다. 가마에서 작품을 꺼낼 때마다 떨리고 설렌다."
- 쉼없이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시는데, 작품의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서 얻는가?
▲ 망생이 장작가마 내부 |
ⓒ 김희정 |
- 편리한 가마가 있는데, 굳이 고된 망생이 가마를 계속 사용하는 까닭은.
"사실 전통 도자기 작업은 중노동이다. 특히 가마에 불 때기는 고되고 지난한 일이다. 혼자 이 과정을 다 한다. 그런데도 나는 도자기가 좋다. 또 우리 가마는 이천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망생이가마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 가마를 통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들지 못한 독보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명품, 세계인이 감탄하는 스토리가 있는 명품을 만들고 싶다."
-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고?
"개인이 장작가마를 꾸준히 사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장시간 불을 때려면 체력관리도 중요하고 장작 비용도 상당하다. 혼자서 이것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 주변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우리 전통도자기를 사랑해주시고 후원해주시는 후원회와 여러 모양으로 협조해주시고 함께해 주신 분들, 제 작품을 아껴주시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저는 축복받은 사람이다. 마음 다해 고맙고 감사드린다."
신둔면 수광리에 있는 망생이가마는 2024년 안에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석봉도예(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315. 이천시 신둔면 경충대로 3148-26)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가마 주변에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밀집해 있는데 가마에 불 때는 날이면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인해 발생하는 불편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이전을 결정했단다.
▲ 진사요변 작품, 한도현 도예가는 망생이가마에서 불을 때서 도자기를 굽는다. |
ⓒ 김희정 |
며칠 후 혼자 망생이가마를 만났다. 가마 안을 요리조리 살펴봤다. 상처투성이였다. 수많은 명품도자기를 구운 흔적이었다. 한 작가의 도자 인생, 수광리의 도자역사를 담은 가마가 이 자리에 오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훅 밀려왔다.
아주 멀고 먼 훗날 우리 후손 학자들이 이곳에서 수많은 도자기를 구운 흔적이 있다고, 망생이가마터를 발굴했다고 기뻐할까. 다가오는 3월에 여기 망생이가마에서 불을 때고 도자기를 구울거라고 한다. 가마가 이사 가기 전에 영상으로 촬영해 놓고 기록도 더 해야 할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마 옆을 서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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