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민주정부들은 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실패했나?

이태경 2024. 2.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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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배근 건국대 교수가 쓴 <화폐권력과 민주주의>

[이태경 기자]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쓴 <화폐권력과 민주주의>.
ⓒ 책표지
 
건국대 최배근 교수가 '대한민국 경제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부제가 붙은 <화폐권력과 민주주의>를 최근 출간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근본모순과 대면한다는 의미이고, 그 근본모순을 극복할 단서를 얻는다는 뜻이다.

민주정부는 왜 경제적 양극화 해소에 실패했는가?

참여형 지식인의 전범이라 할 최 교수는 대학에서 현실과 유리된 채 고담준론만 일삼는 사람이 아니다. 최 교수는 끊임없이 역사와 대화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에 지식인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참전한다. 말과 글이라는 무기 말이다.

최 교수는 통화, 재정, 환율, 금융, 무역, 산업, 노동, 부동산 등의 경제 전 부면을 일관된 관점으로 꿰며 알기 쉬운 말과 글로 시민들에게 경제현상의 이면을 폭로해왔다. 최 교수는 민주정부들의 연이은 집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심화된 경제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초래해 많은 유권자들이 자멸적 투표행위를 해 온 과거를 복기하며 그 근본원인을 규명해왔다.

최 교수는 경제적 양극화의 근본원인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적 생산을 통해 만들어낸 사회적 생산물 중 마땅히 사회 구성원 모두가 누려야 할 '사회몫'을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이라는 형식으로 정치(민주정부)가 배분하지 못하고, 기재부 등의 관료·은행 등의 금융자본·토건재벌·언론사 등의 부동산카르텔에게 약탈당한 결과로 진단한다. 물론 부동산카르텔을 공고하게 만든 배경에는 인민과 사회의 이익에 복무해야 할 금융이 공공성을 완전히 상실한 탓이 컸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는 수다한 업적과 빛나는 성취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양극화(부동산 자산양극화, 노동 간의 양극화 노동과 자영업자 간의 양극화)해소에 완전히 실패했고 시장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데에도 그닥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공간을 정치적 양극화가 빠르게 차지했고 민주정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형편 없는 정부가 들어서 경제적 양극화를 훨씬 심화시키고 미래 성장동력마저 꺼뜨리고 있는 참혹한 지옥이 펼쳐지는 중이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된 까닭

최 교수의 <화폐권력과 민주주의>는 그가 그간 줄기차게 해 왔던 사회적, 지적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대륙에 위치한 프랑스 등의 강국에 비해 여러 면에서 열위했던 영국이 해가 지지지 않는 제국으로 도약한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화폐권력과 민주주의>에 따르면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산업혁명 전에 있었던 민주주의의 확산과 사회혁신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영국이 산업혁명을 가장 먼저 시작해 세계 최강대국이 된 것만 알지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선 정작 과문하다.

<화폐권력과 민주주의>는 영국이 다른 모든 나라에 앞서 금 대신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불환화폐(신용화폐)와 인수한 주식 범위 안에서만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회사를 제도적으로 안착시키고 보편화시킨 것이 산업혁명을 견인했다고 설명한다. 금 등에 결박돼 있던 화폐량이 정부가 가치를 보증하는 신용화폐로 진화하면서 화폐의 발행량과 유통속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거기에 책임을 제한시켜준 유한책임회사가 결합되면서 영국의 경제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경제력이 일종의 벤처투자라 할 산업혁명을 가능케했고 산업혁명은 다시 무적함대로 상징되는 영국의 군사력을 세계 각지에 투사할 수 있는 원천이 됐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국이 불환화폐와 유한책임회사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도화시키는 데 성공하도록 견인한 힘이 바로 마그나 카르타 이래 유구하게 진행된 영국 민주주의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설립목표가 '공공선과 인민의 이익 촉진'으로 설정된 까닭도 신용화폐의 보증을 국민 전체가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가 영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영국의 사례는 정치와 경제, 민주주의와 시장의 공진화 내지 병행발전이 국운을 좌우함을 증명한다. 

민주화 이후 기재부와 부동산카르텔에 포획당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시장의 공진화의 성공사례인 영국과 달리 대한민국은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시장 간의 공진화 내지 병행발전은 고사하고 민주주의가 시장에 완전히 지배당하는 형국이 지속되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경제는 성장률의 경향적 저하, 가계부채의 폭발적 증가, 경제적 양극화(자본과 노동 간 양극화, 산업 간 양극화, 기업 간 양극화, 부동산 자산 양극화, 노동 간 소득 양극화, 노동과 자영업자 간의 소득 양극화 등)의 심화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화폐권력과 민주주의>는 또 하나의 정부로 군림 중인 검찰을 능가하는 권한과 업역을 자랑하는 기재부 모피아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착취하고 파괴 중인지를 부동산카르텔공화국이라는 열쇳말과 재정준칙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석연히 논증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재부 모피아의 전횡과 부동산카르텔의 공고화가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경제가 몰락 중인 원인들의 수원이기 때문이다.

최 교수가 보기에 부동산카르텔과 재정준칙 혹은 재정건정성은 대한민국 구성원 전체가 생산에 기여한 사회몫을 합법적으로 약탈하는 특권과두동맹의 물적 토대이자 이데올로기인데, 부동산카르텔공화국이 더 공고해지고 재정준칙이 강화되면 시민들은 시장에 내몰려 시장에서 지금보다 더 착취당하거나 수탈 당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심화된 경제적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양극화를 수반하고 정치적 양극화는 나쁜 정부의 출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결국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구원은 없는 것인가? 당연히 있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 최배근 교수는 <화폐권력과 민주주의>에 한국경제의 출구를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보유세, 소득세, 법인세 등을 제원으로 하는 사회소득, 1인당 신용1등급을 적용해 1천만 원 한도로 대부해주는 사회금융이 그 출구의 구체적 내용이다.

최 교수는 사회소득과 사회금융을 통해 과도한 가계부채가 완화될 것이고, 내수가 활성화될 것이며, 건강한 소득재분배가 일어날 것이고, 경제적 양극화가 완화될 것이며, 부동산카르텔과 기재부모피아의 특권이 해체될 것이고, 스타트업 창업 등의 경제적 활력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화폐권력과 민주주의>에는 한국경제의 출구로 한국형 양적완화와 기본주택,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수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교육혁명 등도 제시하고 있다.

분명한 건 최배근 교수가 한국경제의 출구로 제안하고 있는 모든 정책들이 정치를 통해 관철되고 구현된다는 점이다. 아니 오직 정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한민국이 왜 지금과 같이 혐오와 증오와 적대로 가득한 세상이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들, 왜 민주정부 다음에 반동정부가 들어서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 어째서 민주정부 시기에 경제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지 의아한 사람들, 대한민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들, 정치와 경제 사이의 관계를 탐문하는 사람들,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이 궁금한 사람들, 대한민국에 과연 출구가 있는지 절망하는 사람들, 끝으로 자본과 권력의 노예가 아니라 주권자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최배근 교수의 <화폐권력과 민주주의>를 반드시 숙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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