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2시간 통곡했다…'반려동물 천도재' 그 법당 풍경
설날을 엿새 앞둔 지난 4일 경북 영천시 청통면 천룡정사. 검은색 세단 한 대가 절 앞마당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이윽고 50대 부부가 차에서 내렸고, 남편은 뒷좌석에서 10㎏들이 쌀 포대도 꺼내 짊어졌다.
부부는 절 한쪽에 세워진 법당으로 향했다. 60㎡ 규모인 이곳은 언뜻 보기에 천도재를 지내는 평범한 법당처럼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쪽 벽면에 마련된 영단 위에 개와 고양이 사진 수십장이 열을 맞춰 빼곡히 붙어 있었다. 천장에는 반려동물 이름이 적힌 초록색 영가등(윤회등)도 수십 개가 매달린 모습이었다.
영단 위엔 사료·간식에 장난감까지
이곳은 주인 곁을 떠난 반려동물 명복을 전문으로 비는 ‘축생법당’이었다. 영천 팔공산 천룡정사는 2019년 5월 경내에 전국 최초로 축생법당을 조성했다. 천룡정사 주지 지덕 스님은 “동물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기존 법당에서 반려동물 천도재를 봉행했는데, 거부감을 보이는 신도가 있어 반려동물 전용 천도 법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천룡정사에 따르면 반려동물 천도재를 올리기 위해 서울·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축생법당을 찾는다. 왕복 8시간이 소요되는 서울 지역에서도 반려견을 위해 일주일 간격으로 7번 제사를 지내는 7재를 모두 참석한 견주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만 반려동물 25마리의 천도재를 올렸다.
서울·경기서 먼 길 찾아와 천도재
이날 천룡정사를 찾은 부부도 서울에서 찾았다고 했다. 이 부부는 “최근 먹이를 주며 키우던 길고양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안타까운 마음에 천도재를 지내러 왔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10년간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낸 뒤 이곳에서 천도재를 지냈다”며 “장례식을 지낸 뒤에도 반려견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힘들었는데 천도재를 지내니 반려견이 좋은 곳으로 떠났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고 말했다.
지덕 스님은 “오랜 세월 더불어 살던 반려동물이 갑자기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그 아픔이 상상외로 크다”며 “특히 가족이 한데 모이는 명절이 되면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져 ‘펫 로스 증후군(반려동물 상실로 인한 우울감)’이 더욱 커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펫 로스 증후군’ 앓는 이들이 찾아
그는 “반려동물 천도재를 하며 임신 8개월 몸으로 무려 2시간을 통곡하고 간 여성, 한국을 자주 찾지 못해 3년 치 선금을 주고 제사를 지내달라고 한 재일교포 등 사연이 많다”며 “아끼던 반려동물을 보내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영천=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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