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가위 난동' 주민센터, 그가 오자 '갑질 민원인' 사라졌다[르포]
“실례합니다. 팩스 좀 보낼 수 있을까요?”
지난 5일 오후 3시30분쯤 부산시 금정구 서3동 주민센터에 들어선 70대 남성이 민원 응대 공무원에게 A4 용지를 들이밀며 이같이 말했다. 지켜보던 보안요원 임한별(33)씨가 곧장 남성을 맞아 팩스기로 안내했다. 임씨가 직접 기계를 가동해 팩스 발송을 도와주자 이 남성은 “고맙다”고 했다.
‘쪽가위 난동’ 센터에 보안요원 배치된 까닭
서3동은 기초생활보장대상자 등 이른바 ‘수급자’ 주민 비율이 12.7%로 높은 지역이다. 하루 100여명의 민원인이 센터를 찾는다. 수급 관련 민원을 해결하려는 민원인이 많다 보니 수급 산정과 탈락 등을 놓고 고성이 오가거나 시비 붙는 일도 잦다. 특별한 용건 없이 센터에 찾아와 자신의 범죄 경력 등을 과시하며 공무원을 위협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3월엔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60대 남성 A씨가 쪽가위를 들고 동장실에 난입하는 일도 있었다. 전과 등이 적힌 종이 서류를 내밀며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과시한 A씨는 “선글라스가 없어졌다. 센터에 도둑놈이 있으니 찾아내야 한다”고 소란을 피웠고, 쪽가위를 들고 10분가량 공무원을 협박하다가 경찰에 제지당했다.
이에 금정구는 서3동 주민센터에 보안요원을 배치했다. 지난해 8월부터 보안요원으로 일한 임씨는 외부 경호 업체에 소속돼 관련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다. 키 178㎝에 체격도 건장하다. 그는 “일할 때 방검복과 가스총·보디캠·경광봉 등을 착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원인들을 위압적으로 대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들어주거나, 한글을 잘 모르는 민원인이면 서류 작성을 돕는다.
이경숙 서3동 행정민원팀장 “응대 과정에서 민원인들이 보안요원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지한다. 이를 통해 시비ㆍ소란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며 “보안요원 응대 행위 자체를 반기는 민원인도 많다”고 설명했다.
“우리 민원인들이 달라졌어요” 현장 호응
보안요원이 배치된 후 분위기는 크게 바뀌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쪽가위를 든 A씨와 대치했던 정종환 주무관은 “수급 관련 문제로, 혹은 괜한 시비 끝에 목소리를 높이는 민원인이 줄었다”며 “혹시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정복 차림의 보안요원이 다가와 설득하면 일단 진정한다”고 했다. 석 달쯤 전엔 괜한 시비를 걸던 민원인이 보안요원에게 제지당하자 밖으로 나가 센터 벽에 음료병을 던지고 돌아갔다고 한다.
공무원 대상 금정구 조사에선 ‘고질적이거나 특이 민원 방문 감소’ ‘민원인 만족도 향상’ 등이 보안요원 배치 효과로 꼽혔다. 금정구는 3769만원을 들여 지난해 8월부터 서3동과 남산동(수급자 비율 9.8%) 등 두 곳 주민센터에 보안요원을 1명씩 배치했다. 이들은 올해 말까지 근무한다. 최병기 전국공무원노조 금정구지부장은 “이른바 ‘고질·특이 민원’이 보안요원이 없는 다른 주민센터로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보안요원 추가 배치를 건의했고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폭언ㆍ폭행 50% 급증… 보안요원 배치 속속
행정안전부 집계 상 공무원에 대한 민원인의 폭언ㆍ폭행ㆍ성희롱 등 위법 행위는 2018년 3만4484건에서 2021년 5만1883건으로 4년 새 50% 급증했다.
다른 지자체도 보안요원을 쓰고 있다. 부산 중구는 지난해 9월 기간제 직원 3명을 채용해 9개 동에 45일씩 순환 배치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는 외부 전문업체 직원을 채용하고 인원은 4명으로 늘린다. 사상구도 모라3동과 괘법동 안전요원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관악구가 지난해 10월부터 대학동에 ‘보안 안전관’ 1명을 배치했다. 경기 용인시는 2018년 9월 모든 읍ㆍ면ㆍ동ㆍ구청사에 보안요원을 배치했으며, 부천ㆍ하남시와 인천 연수구, 충남 아산시 등 지자체도 주요 민원부서에 안전요원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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