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회' 반드시 온다... 이것 하나만 기억한다면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 설입니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 정을 나누어도 모자랄 시간이지만, 올해는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경기는 어렵고 들려오는 뉴스도 팍팍한 소식 뿐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아 있을 필요는 없겠죠? 안팎으로 지친 당신에게 단비가 될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양형석 기자]
현역 시절 10시즌 연속 득점왕과 6번의 챔프전 우승, 6번의 챔프전 MVP에 빛나는 마이클 조던은 이견의 여지가 없는 농구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선수(GOAT, Greatest Of All Time)다. 하지만 현역 시절 조던의 필드골 성공률은 고작(?) 49.7%에 불과했다. 농구팬들에게는 '던지면 다 들어갈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농구황제조차 실제로는 둘 중 하나의 슛은 림을 외면했다는 뜻이다. 조던에 대한 환상을 가진 농구팬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런 기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농구에서는 슛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공격기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격을 시도한 쪽에서 들어가지 않은 공을 잡아내면 좀 더 쉬운 두 번째 슛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수비하는 쪽에서 공을 잡으면 반격기회가 찾아온다. 이처럼 농구에서 림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을 다시 잡는 행위를 '리바운드'라고 한다. 농구에서는 '리바운드를 제압하는 자가 경기를 제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바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리바운드>는 우디네 극동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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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으로 전국대회 준우승 달성한 '기적의 농구팀'
고교시절 전국대회 MVP에 선정될 정도로 촉망 받았던 유망주 강양현(안재홍 분)은 선수로 대성하지 못하고 프로 2군을 전전하다 은퇴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양현은 모교 부산 중앙고의 코치로 발탁됐다. 하지만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자신이 다니던 시절과 달리 존폐위기에 몰려 있었고 양현은 슬럼프에 빠진 기범(이신영 분)과 부상으로 꿈을 접은 규혁(정진운 분), 운동능력만 좋은 순규(김택 분) 등을 모아 오합지졸로 팀을 꾸렸다.
리바운드 : 실수와 실패를 만회하려 다시 기회를 얻는 것.
실패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
그렇게 양현은 흩어졌던 선수들을 모아 다시 팀을 꾸리고 출전정지를 당한 6개월의 시간 동안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맹훈련을 단행했다. 그렇게 새해가 되고 두 명의 신입생이 합류한 부산 중앙고는 협회장기 예선에서 전승을 거두며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전 슈팅가드 정진욱(안지호 분)이 쇄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가뜩이나 6명 밖에 없는 선수단에서 교체 선수가 아무도 없는 팀이 된 것이다.
교체선수 없이 5명만으로 협회장기 본선에 나선 부산 중앙고는 농구 명문학교들을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리고 안양고를 상대한 4강전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지만 고교 입학 전까지 공식경기 출전 경험이 전혀 없었던 1학년 허재윤(김민 분)이 연속 3점슛을 터트리면서 경기 분위기를 가져왔다(만화 <슬램덩크>에서 해남대 부속고의 홍익현이나 북산고의 권준호를 연상케 하는 스토리였다).
하지만 부산 중앙고의 기적은 결승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결승에서 고교농구 최강 용산고를 만난 부산 중앙고는 후반 2명의 선수가 퇴장 당하면서 3명으로 경기를 치르는 고전 끝에 63-89로 완패했다. 하지만 양현은 전반을 끝내고 녹초가 된 선수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걸 절대 포기하지 마라. 명심해라. 농구는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고 외치며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한 희망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선수들에게 강조했다.
▲ <리바운드>에서 강양현 코치를 연기했던 안재홍은 <마스크걸>,<LTNS>에 이어 이병헌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에 출연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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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운드>는 2017년 <기억의 밤>을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서 건재를 보여줬던 장항준 감독이 6년 만에 선보인 신작이었다. <범죄도시> 시리즈를 제작하며 일약 스타 제작자로 떠오른 장원석PD를 비롯해 배우 하정우가 제작에 참여하면서 <수리남>의 각본을 썼던 권성휘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여기에 '장르물의 대가'로 불리는 김은희 작가가 남편을 돕기 위해 공동각본으로 이름을 올리며 관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2023년 4월 5일에 개봉한 <리바운드>의 흥행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 달 먼저 개봉해 장기흥행에 들어간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과 일주일 후에 개봉한 <존 윅 4> 사이에 낀 <리바운드>는 전국69만 관객으로 손익분기점(약 160만)을 넘기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힘들게 극장을 지키던 <리바운드>는 4월 26일 박서준, 아이유 주연의 <드림>이 개봉하면서 약 3주 만에 극장에서 사실상 철수했다.
낮은 흥행성적이 말해주듯 <리바운드>를 관람한 관객은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리바운드>를 관람한 관객들 중 이 영화에 대해 나쁘게 평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리바운드>는 오합지졸이던 팀이 실패를 경험한 후 착실히 성장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며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청춘 스포츠물'의 공식을 충실히 지키는 영화다. 크게 과하지 않은 코미디 장면들 역시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부분.
무엇보다 <리바운드>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성장이 눈부셨다. 이미 <응답하라1988>의 김정봉과 <멜로가 체질>의 손범수 역으로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알렸던 안재홍은 2023년 8월 넷플릭스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마스크걸의 광팬 주오남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안재홍은 올해도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 LTNS >에서 명문대 출신 택시기사 사무엘을 연기하며 신선한 매력을 선사했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꽃미남 북한군 박광범 역으로 주목 받았던 이신영은 <리바운드>에 이어 2023년 <낭만닥터 김사부 3>에서 일반외과 전공의 장동화 역으로 눈길을 끌었다. 현재는 <세작, 매혹된 자들>에서 병조판서의 아들 김명하를 연기하고 있다. <리바운드>에서 '성장의 아이콘' 허재윤을 연기했던 김민도 2023년 모바일 드라마 <하이쿠키>에서 국내 최고 자사고에서 성적에 관심 없는 문제아 곽민준 역을 맡아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 장항준 감독은 <리바운드> 흥행실패에도 여전히 유쾌한 이미지를 잃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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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준 감독은 <리바운드>의 흥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크게 실망하며 주변에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때 함께 일하던 한 작가가 장항준 감독에게 다가가 "감독님, 외람되지만 그럼 이제 '눈물 자국 생긴 말티즈'인가요?"라고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장항준 감독의 별명이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다). 장항준 감독은 그 순간 '웃음이 빵 터지면서' 한편으로는 영화의 흥행실패로 우울했던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기에 살면서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그것을 느끼는 크기 또한 모두 다르다. 누군가는 작은 실패에도 큰 절망과 좌절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큰 실패도 금방 떨치고 일어나 다음 기회로 만들 발판으로 삼는다. 실패를 극복할 용기를 내 빨리 회복하는 사람을 농구용어로 바꿔 표현하면 '리바운드 감각이 뛰어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농구에서 리바운드를 잡으려는 의지가 뛰어난 선수는 감독과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 NBA에는 데니스 로드맨처럼 오직 '리바운드' 하나로 30대 후반까지 활약했던 선수도 있었다. 이를 인생에 대입해 보면 리바운드 능력은 곧 실패를 극복하고 다음 기회를 잡으려 하는 희망적인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즐거운 명절에도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요즘, 영화 <리바운드>는 기회와 희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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