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빠르고 우리는 지쳤다" 뉴욕 엄마들도 두 손 든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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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영 기자]
"엄마, 엄마! 빨리 나 사진 좀 찍어 주세요! 나 Klem Family를 만났어요! "
팬데믹 기간에 걸려 취소된 수학여행을 대신해 가족 여행을 떠났었다. 작년 봄, 워싱턴 D.C.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돌아보는데 딸아이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급히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처음 보는 가족이라 사진만 찍어주고 뻘쭘하게 서 있는데, 딸아이와 그 가족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
나중에 어떻게 아는 가족인지 물어보니... 이런, 자기가 보는 유튜브 채널의 유명한 유튜버 가족이란다. 인디애나 주의 유튜버 가족과 뉴욕에서 온 우리 가족이 워싱턴 D.C.에서 우연히 만나다니, 작은 세상이다. 아니, 확장된 더 큰 세상이 된 걸까?
디지털 웰빙 점검해보니
1월 초, 뉴욕타임스지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스마트폰 대신 플립폰으로 한 달 살기를 해 본 힐(K. Hill)이라는 기자의 경험담이었다. 기자는 이를 '플립폰 디톡스'라 불렀다. 미국인의 일일 평균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4~5시간에 달한단다.
우리 가족은 어떨까. 나는 한 개의 SNS 앱을 주로 사용한다. 나머지 소소하게 사용하는 앱은 아이들의 학교와 연결돼 있어 계정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집에 TV나 영상플랫폼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하루 2시간 정도 미디어 시간이 정해져 있다. 우리 가족은 중독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안드로이드폰에는 '디지털 웰빙'이라는 기능이 있다. 여기서 하루, 한 주, 한 달간의 사용량과 시간대 별 사용 앱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주말, 자신 있게 아이들을 불렀다. 잔소리를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아이들과 함께 앉아 다 같이 동시에 '디지털 웰빙' 페이지를 열었다. 그런데 웬걸, 예상을 훌쩍 넘는 하루 사용 시간에 깜짝 놀랐다.
가장 부끄러웠던 사람은 나였다. 인터넷과 채팅 앱, 지도 앱은 그렇다 치고 내가 주로 사용하는 앱 2위가 SNS라니. 일상을 자주 올리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을 줄 몰랐다. 자기 전에 꼭 한 번씩은 보고 있는 나의 힐링 영상, 아기 판다 '푸-루-후(푸바오, 루바오, 후이바오)' 때문인가? 아이가 말한다.
"한 번이 아니지 엄마. 정직해져 보세요. 릴스를 계속 넘기면서 그 애들 영상 열 개도 넘게 보고 잘 걸? "
맞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비슷한 영상을 한참 보고 있게 된다. 그러고 보니 SNS는 일상을 지인들과 소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대세인 짧은 영상, 가족들과 얽힌 다채로운 그룹들, 심지어 지역 뉴스도 SNS로 보고 있으니 종합하면 말 그대로 나의 일상 전체를 관장하는 거대한 플랫폼인 셈이다.
믿었던 아이들에게도 배신감(?)을 느꼈다. 하루 사용이 평균 3시간이 넘었고, 주로 사용하는 앱 탑 3중에도 SNS 앱이 있었다. 주말이라 잠깐 방심했더니 유튜브만 두 시간 이상 본 녀석도 있다. 그 사람 많던 박물관에서 유튜버 가족을 바로 알아볼 만했다.
문제는 중독
나는 연말에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했었다. 사고 처리를 하고 병원을 다니며 새삼 각 기관의 디지털화 추세에 놀랐다. 며칠 전 아침에도 병원 문자를 받고 링크를 따라 접속해 MRI를 받기 전 관련 서류 기입과 파일 업로드를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끝내고 전자사인까지 마쳤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이었다.
앞서 언급한 '플립폰으로 한 달 살기'(뉴욕타임스지) 힐 기자도 전기차 충전, 구글맵 없이 길을 찾는 것, 은행 업무, 작업 인증 등 스마트폰이 없으니 꽤 많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 미 상원 청문회 출석한 소셜미디어 CEO들 (워싱턴 AP=연합뉴스) 지난 1월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 주요 소셜미디어 최고경영자(CEO)들이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왼쪽부터 제이슨 시트론 디스코드 CEO, 에번 스피걸 스냅챗 CEO, 추 쇼 우즈 틱톡 CEO, 린다 야카리노 엑스(X·옛 트위터)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
ⓒ 워싱턴 AP=연합뉴스 |
지난 1월 31일 페이스북-메타 등 주요 소셜미디어 빅 테크 기업가가 참석한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이번에는 뭔가 변화가 있으려나 기대했지만, 매번 그렇듯 기업인들 사과와 관련 법안의 필요성 정도만 언급됐다. 실망이었다.
이들이 법적인 책임이나 보상을 피하고 두루뭉술한 해법만 내놓을 수 있는 데는 미국 '통신품위법 230조' 영향이 크다.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의 부작용으로 소비자가 해를 입을 경우, 인터넷 사업자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게 법의 요지이다.
이로 인해 '기절 챌린지'로 사망한 사건 유가족의 소송, 이번 청문회에서 집중 추궁된 '아동 성착취 영상물 피해' 가족에 대한 보상이 좌절됐다. 1월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미국 몬태나 주 틱톡 사용 금지 법안 또한 그렇다. 주 정부에서 주민 전체 틱톡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통신품위법 탓에 연방법원서 기각이 되어 예정됐던 1월 시행이 무산되었다.
혹시 학교에서 틱톡 챌린지가 문제된 적은 없는지 십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작은 학교라 그런지 '학교 화장실 비누통 훔쳐가기', '타일, 울타리 부수기' 같은 절도/파손 챌린지(Devious Licks)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이를 상대로 한 가벼운 장난이나 다음 사람을 지목해 연속 챌린지를 완성하는 놀이는 가끔 있다고 한다.
이미 다수의 사망자를 내면서 위험성이 알려진 알레르기 약 다량 복용 챌린지(Benadryl Challenge), 목조르기 기절 챌린지(black out Challenge), 친구의 양쪽 발을 쳐서 쓰러뜨리기(Skull break Challenge) 등은 학교에서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단다.
감기약에 치킨 담가 먹기(Viral Challenge), 절벽이나 달리는 보트에서 물로 뛰어내리기, 밑창 없는 신발 신고 다니기(Barefoot Shoes)가 젊은 층에서 유행이라고 큰아이가 귀띔해 준다. 과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한국 거북목을 뜻하는 'Text Neck', 금붕어보다 집중력이 낮다는 뜻의 집중력 시간 저하(Attention Span)도 심각한 문제다. 아이들의 소아과 주치의도, 최근 자세가 좋지 않아 PT(Physical Therapy) 처방을 받는 아이들이 꽤 늘었다고 걱정했다.
▲ 베어푸트 첼린지 위에서 보면 정상적으로 신을 신은 것 같지만, 밑창을 잘라내고 맨발로 가게를 걸어다니고 있다. 이런 엉뚱하고 부상의 위험이 있는 챌린지들이 반복 유행을 한다. |
ⓒ 유튜브 영상 켑쳐 |
각 주와 상원의 대응
기업에 면죄부 준 것이나 다름없는 '통신품위법'은 여전하지만, 정부기관의 반격도 힘을 받고 있다.
작년 4월 국회 상원에서는 '13세 미만 아동 소셜미디어 앱 접속 원천 금지 법안'을 초당적으로 발의했고, 7월에는 미 전역 200여 개 교육청이 메타, 틱톡, 스냅챗,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시작했다.
뉴욕을 포함한 33개 주 법무장관들 역시 인스타그램과 모기업 메타에 연방 소송을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어린이-청소년 정신건강에 큰 타격을 주었다며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뉴욕주 법무장관의 인터뷰도 있었다(CNN, 2023년 10월 24일 보도 참조).
우리 동네는 조금 보수적인 분위기지만, 뉴욕 주가 추진 중인 'SAFE(아동의 중독성 게시물 착취 방지)'와 '아동 데이터 보호법'에 대해서는 부모들 관심과 지지가 큰 편이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빠르고, 우리는 바쁘고 지쳤다."
'중독'에 관한 공개 부모교육을 다녀온 아이 친구의 엄마가 해준 말이다. SNS와의 싸움에서 이길 부모가 있을까. 뉴욕 부모들이 왜 '개인 자유'보다 규제를 선택하는지 알겠다. '지쳤다'는 그녀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2월 즈음부터 미국 부모들은 여름방학 동안 자녀들이 참여할 캠프를 예약하려고 바쁘게 움직인다. 최근 내 눈엔 '10대의 스마트폰 중독 관리 캠프' 광고들이 띄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특이한 성격의 캠프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알고 난 지금은 달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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