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의견" 속내 숨긴 '커플팰리스' 제작진의 전략
[김민준 기자]
'연애예능'의 시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어제 <나는 솔로>(혹은 다른 연애 예능) 봤어?'로 인사를 대신하고, 그런 연애 예능들로부터 '도파민'을 찾아 나서며, 때로는 사람을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형태만 달리 하고 있을 뿐, 오늘날 예능에서 '연애'라는 키워드는 떼려야 뗄 수가 없다.
▲ Mnet 연애예능 <커플 팰리스> 포스터. |
ⓒ 엠넷 |
'조건'이 중요한 시대의 자화상?
지난 1월 말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Mnet <커플팰리스> 역시 그 수많은 연애 예능 중 하나로 등장했다. '싱글 남녀 100인의 대규모 웨딩 프로젝트'를 콘셉트로 한다. '연애와 결혼의 핵심은 타이밍'이라는 멘트와 함께 '스피드 트레인'이 시작되는데, 결혼의 조건과 스펙, 외모가 공개되면서 50명의 여성 출연자는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형태다.
그렇게 실루엣만 비치는 남성들은 '포기할 수 없는 결혼 조건' 두 가지를 각각 공개하는데, '결혼 후 살림할 여자', '엄마처럼 챙겨 줄 연상의 여자', '제사 6번을 지낼 수 있는 여자' 등의 조건을 내건 남자는 득표수가 곧바로 떨어진다. 연봉과 직업이 공개된 이후에는 득표수가 요동친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택은 '픽'된 남성들이 직접 나서서 하게 된다. 그렇게 득표수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스피드트레인이 계속되면서 선택도 지속한다.
대부분의 연애 예능이 그러하듯, 외적인 조건에서 통과된 뒤에 더 심층적인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1:1 데이트 형식이 이 방송에도 존재한다. 설렘이 동반된 대화조차 기본적인 조건이 맞아야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씁쓸한 콘셉트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트레인이 반복되면서 점차 선택받지 못한 이들만이 남는다.
이런 '연애 서바이벌'을 보고 있노라면 심경이 복잡해진다. 이 방송은 자신들이 예능화, 자본화된 연애 시장에 탑승하고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홈페이지에 나온, 이 방송을 설명하는 한 문장은 이렇다.
"초고속 고효율로 완벽한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있는 곳".
방영 전 진행되었던 온라인 제작발표회에서 이 방송을 기획한 이선영 CP는 "우리는 '연프(연애 프로그램)'이 아닌 '결프(결혼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방송은 그저 속물성을 드러낼 뿐?
또 하나 흥미로운 지점은 이 방송에 참여한 '커플 매니저'들이 결혼정보회사 근무 경력이 있거나 결혼 컨설팅을 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커플 팰리스>가 '연프'가 아니라 '결프'라는 기획자의 말은 정말로 사실인 셈이다. 더 많은 커플을 결혼에 '골인'시켰다는 것을 시장 경쟁력으로 삼는 업계인 만큼, '초고속 고효율'을 추구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거짓은 아니다.
그러니까 앞서 논란이 되는 발언들과 별개로, 연애 예능의 흥행 앞에서 늘 드는 의문이 이번에도 들 수밖에 없다. 누구나 연애건 결혼이건 최소한의 선이나 조건이 있는 법이고, 그게 맞는 사람과 만남이 성사되고 그 만남이 이어지는 법이다. 문제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걸 맞춰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과정이 결국 연애고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수많은 연애 예능들은 조건을 보는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요즘 사람들의 속물성'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첫 인상이 안 좋았는데 연봉이 수억 원이고 직업도 전문직이라면 한 번쯤은 이 사람한테 관심이 갈 법도 하다.
그 사람이 좀 더 궁금해지기도 한다. 연애예능 밖 우리네 사랑의 모습도 사실 그러지 않나? 그런데 그런 감정 자체가 '결혼과 연애가 힘들어진 시대에 조건을 더 속물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마인드'로 인식되게끔 연애 예능이 판을 까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커플 팰리스> 역시 출연자들의 제시 조건에 대해 '개인의 의견입니다'라는 자막을 통해 제작진은 딱히 여기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조건을 더 까다롭게 보게 만드는 판이 깔렸고, 출연자들의 발언과 행동들은 그런 취지에 맞게 잘 편집이 됐을 뿐이다.
요즘 연애, 요즘 결혼이 실제로 그 정도로 속물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커플 팰리스> 속 연애와 결혼은 속물적이긴 한 것 같다. 본인들이 기획한 판 위에서 출연자들이 조금 더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 많은 서바이벌 예능들이, 그리고 그런 포맷을 차용한 연애 예능들이 화제성을 담보하는 방식이다. <커플 팰리스> 역시 그런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3회 예고편에서는 트레인 위에 여성 출연자들이 올라간다. 과연 입장이 바뀐 상태에서 남성 출연자들은 어떤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출연자들이 속물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어떤 장치를 방송은 두게 될까? 누가 매칭돼서 결혼까지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없이 많은 연애 예능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커플 팰리스>만의 전략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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