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 패러디도 '희극지왕' 주성치가 하면 다르다

양형석 2024. 2. 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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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주성치의 연출 데뷔작 < 007 북경특급 >

[양형석 기자]

지난 1991년 <플래툰>과 <메이저리그> 등을 통해 미남배우로 이름을 알린 찰리 신 주연의 코미디 영화 <못 말리는 비행사>가 개봉했다. <못 말리는 비행사>는 1986년에 개봉했던 고 토니 스콧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을 패러디한 영화로 미군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오히려 <탑건>보다 많은 26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다. 찰리 신은 1993년에도 <람보>를 패러디한 <못 말리는 람보>에 출연했다.

<못 말리는> 시리즈처럼 과거에 제작된 유명한 영화나 대형 영화사에서 만든 시리즈 영화들의 세부요소를 의도적으로 따라 해 새롭게 만드는 영화를 '패러디 영화'라고 한다. 패러디 영화는 주로 코미디 장르에 집중돼 있고 원작영화의 클리셰를 비틀거나 원작의 명장면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웃음을 선사한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2년 장규성 감독에 의해 최초의 패러디 영화 <재밌는 영화>가 제작·개봉한 적이 있다.

워낙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한 1990년대 홍콩에서도 많은 패러디영화들이 만들어졌다. 특히 '희극지왕' 주성치는 <홍콩 마스크>,<홍콩 레옹> 등 원제 앞에 '홍콩'만 붙인 노골적인 패러디 영화를 많이 만들곤 했다. 하지만 1994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주성치의 패러디 영화 중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으로 팬들 사이에서 명성이 높다. 주성치가 처음으로 연출에 참여했던 영화이기도 한 < 007 북경특급 >이다. 
 
 <007>을 패러디한 <007 북경특급>은 주성치 영화들 중에서 초보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입문용 영화로 꼽힌다.
ⓒ 골든 하베스트
 
1990년대 중반 전성기 보낸 여성배우

1971년 홍콩에서 태어나 중국 광둥성에서 유아기를 보낸 원영의는 여느 선후배 여성배우들과 마찬가지로 홍콩 연예계의 등용문 미스홍콩 선발대회(1990년)에 출전한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1991년 드라마를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한 원영의는 1992년 배우 겸 감독 증지위가 연출하고 유덕화와 임청하, 장민이 주연을 맡은 <절대쌍교>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신선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여러 장르의 영화에 출연하며 경력을 쌓던 원영의는 1994년 자신의 첫 번째 대표작을 만났다. 원영의가 흠모하던 스타를 만나기 위해 남장을 하면서 가수로 데뷔한다는 내용을 가진 진가신 감독의 <금지옥엽>이었다. 원영의는 <금지옥엽>을 통해 1995년 홍콩 금상장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신인 티를 벗고 스타배우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원영의 역시 1990년대 중반 많은 홍콩배우들이 한 번씩 빠졌던 '다작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1994년에만 무려 15편의 영화에 출연한 원영의는 1995년에도 12편에 출연하며 엄청난 다작행보를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부분은 원영의의 다작행보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 장국영과 재회했던 서극 감독의 요리영화 <금옥만당>과 홍콩영화 역대 최대규모의 제작비(약200억 원)가 투입됐던 <성룡의 썬더볼트>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중에는 주성치가 처음으로 연출에 참여한 < 007 북경특급 >도 있었다.

원영의는 < 007북경특급 >에서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악의 편에 섰지만 007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기는 허술하지만 매력적인 스파이 이향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 007 북경특급 >은 1990년대 중반 주성치의 컬트적인(?) 인기 때문에 국내에선 개봉조차 하지 못했지만 적지 않은 남성관객들이 이 영화를 통해 원영의에게 '입덕'하게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만큼 원영의의 귀여운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라는 뜻이다.

1990년대 후반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던 원영의는 홍콩영화의 몰락과 함께 자연스럽게 활동이 뜸해졌다. 하지만 원영의는 <무간도4:문도>,<엽문4:종극일전> 등에 출연하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갔고 2015년에는 드라마 <황제의 여인: 절강위성>에 출연하며 시청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원영의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영화 <원 모어 찬스>에서 '영원한 따거' 주윤발과 연기호흡을 맞추며 오랜만에 관객들을 만났다. 

패러디부터 코미디, 액션까지 다 있다
 
 007이 자랑스럽게 소개했던 비밀무기들은 아쉽게도 실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못했다.
ⓒ 골든 하베스트
 
< 007 북경특급 >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본 영화는 < 007 >을 전혀 모방하지 않았음"이라는 자막을 깔아놓고 노골적으로 007 패러디를 시작한다. < 007 북경특급 >은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공룡화석을 이송 도중 무장단체에게 갈취 당하고 이를 찾으러 온 특수요원까지 강철갑옷의 사나이에게 즉사 당하자 당국에서 무림고수의 후예 007을 파견한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 007 >이나 <미션 임파서블> 같은 첩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홍콩 최고의 코미디배우로 군림하면서도 1994년작 <파괴지왕>과 <구품지마관>까지 한 번도 연출에 참여하지 않았던 주성치는 1994년 < 007 북경특급 >을 공동 연출하면서 처음으로 연출에 이름을 올렸다. 

< 007 북경특급 >은 기본적으로 < 007 >의 패러디 영화지만 주성치가 출연하고 공동연출로 참여한 영화답게 코미디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다빈치 박사(나가영 분)가 만든 기상천외한 발명품들은 주성치 팬들의 기호(?)를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태양열로 작동해 빛이 없으면 절대 켜지지 않는 플래시와 전화기 모양의 면도기, 면도기 모양의 헤어 드라이어, 장시간 편안한 자세로 적을 감시하기에 용이한 특수의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 007 북경특급 >은 런닝타임 내내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한 코미디 영화지만 영화 중간중간 진지하고 멋진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장면이 영화 중반 백화점에서 007이 아이의 아버지를 살해한 강도집단을 응징하는 장면이다. 007은 아이의 아버지를 총으로 쏜 강도무리 중 한 명을 돼지식칼로 단칼에 베어 버리고 엘리베이터로 도망간 일행들에게 비도 10개를 날려 한 발도 빠짐 없이 정확히 명중시킨다.

주성치와 가장 호흡이 잘 맞았던 감독
 
 잔잔한 드라마 장르에 강했던 원영의는 <007 북경특급>을 통해 진한 코미디 장르에 도전했다.
ⓒ 골든 하베스트
 
주성치와 함께 < 007 북경특급 >을 공동 연출한 이력지 감독은 주성치와 가장 호흡이 잘 맞는 동료 중 한 명이다. TV에서 먼저 경력을 쌓다가 <개세호협>이라는 TV드라마를 통해 주성치를 만난 이력지 감독은 1991년 주성치 주연의 <신격대도>를 연출하며 본격적으로 주성치와 콤비(?)를 이루기 시작했다. 이후 <당백호점추향>과 <파괴지왕>을 만들었고 < 007 북경특급 >을 공동 연출하며 주성치와의 협업을 이어갔다. 

< 007 북경특급 > 이후 <식신>과 <희극지왕> 같은 주성치의 대표작들을 함께 연출한 이력지 감독은 <식신>,<홍콩 레옹>,<파괴지왕> 등에서는 조·단역으로 출연하면서 깨알 같은 연기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이력지 감독은 < 007 북경특급 >에서도 사형장에서 30년간 익힌 무공술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다가 대전차 유탄발사기에 맞고 허무하게 사망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중국의 가수 겸 배우 나가영은 1993년 성룡 주연의 <중안조>에 출연하면서 배우활동을 시작해 70대가 된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주성치와는 <서유기> 시리즈를 시작으로 <소림축구>까지 여러 작품을 함께 했는데 < 007 북경특급 >에서는 007의 각종 비밀무기를 만들어주는 다빈치 박사를 연기했다. 다빈치 박사는 마지막 전투에서 황금총에 왼손을 관통 당하면서 손을 절단하지만 후임사령관이 돼 007에게 새로운 임무를 하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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