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완전정복](23)"K-배터리, 브리지 기술 없으면 계곡에 빠져 죽는다" 이상영 연세대 이차전지센터장
편집자주 - 지금은 배터리 시대입니다. 휴대폰·노트북·전기자동차 등 거의 모든 곳에 배터리가 있습니다. [배터리 완전정복]은 배터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 학생, 배터리 산업과 관련 기업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들에게 배터리의 기본과 생태계, 기업 정보, 산업 흐름과 전망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자꾸 차세대 배터리 기술에만 매달리면 중간 계곡에서 빠져 죽을 수 있어요."
지난 2일 연세대에서 만난 이상영 화공생명공학과 교수(이차전지연구센터장)는 차세대 배터리 연구가 중요하다면서도 한국 배터리 학계와 기업들이 거기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꿈의 배터리'라고 거론되는 전고체, 리튬황 등은 말 그대로 꿈의 배터리라는 것. 이것들이 이차전지 시장에서 '도깨비 방망이'가 될 수는 없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언제 양산할 수 있을지 모르는 차세대 배터리만 믿고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기술들이 소홀히 했다간 치열하게 전개되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후막 기술, 건식 코팅, 실리콘 음극재 등을 대표적인 '브리지(bridge·가교) 기술'로 거론했다.
이 교수는 또한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이 중국과 물량 경쟁으로 승부를 겨뤄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중국은 이미 생산 규모에서 한국의 수십 배에 달한다. 물량보다는 마진을 많이 남길 수 있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의 배터리 기업들이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벤츠나 BMW와 같은 고급 이미지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한 중국의 '배터리 인해전술'에 맞서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을 소개 개발에 활용해 연구 속도를 높일 것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영 교수는 서울대에서 공업화학과 학사, 카이스트에서 화학공학과 석·박사를 취득하고 1997년 LG화학에 입사했다. 2008년까지 LG화학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국내 초기 이차전지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 LG화학 배터리연구소 재직 시절 분리막에 세라믹을 코팅해 안전성을 강화한 'SRS((Safety Reinforced Separator) 개발을 주도했다. 이 기술은 현재 대부분의 전기차 배터리에 적용돼 있다.
이 교수는 이후 유니스트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에서 이차전지 계약학과 주임 교수를 겸직하고 있으며 이차전지연구센터장으로 LG에너지솔루션, SK온, 포스코 등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과 활발하게 산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상영 교수를 만나 이차전지와 관련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그의 견해를 들어봤다. 다음은 이상영 교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후막 전극 기술로 에너지 밀도 한계 극복할 수 있어"-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내 기업들은 그동안 LFP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하이니켈(high-nickel) 배터리가 한번 충전에 300~400㎞ 주행할 때 LFP는 200㎞밖에 못 간다. 주행거리 확보를 위해 국내 기업이 하이니켈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주력한 것은 당연했다. LFP가 갑자기 주목받은 것은 2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유럽의 자동차 기업들의 열 폭주 전이(TP·Thermal Propagation) 평가에서 하이니켈 배터리가 통과하지 못했다. 그 대안으로 LFP가 주목받았다. 두 번째는 테슬라가 저가 경쟁을 불붙이면서다. 지금은 캐즘(Chasm)의 시기다. 기술력보다는 보편성이 중요해진 시기가 됐다. LFP는 기술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져서 주목받고 있다. 산업적으로 그 사이클에 온 것이다. 국내 학계와 기업들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LFP에서도 곧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LFP도 기술적으로 많이 개선됐다고 하던데.
▲LFP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아무리 성능을 올려도 하이니켈의 60~70% 정도밖에 안 된다. 활물질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런데 LFP에 한 가지 기술이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소재만 얘기했는데 극판 기술을 통해 에너지 밀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NCM·LFP 배터리=리튬이온 배터리를 양극 활물질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는 용어. NCM은 니켈, 코발트, 망간을 사용하며 리튬인산철은 인산과 철을 주로 사용한다. NCM은 3가지 성분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삼원계 배터리라고도 한다. NCM 배터리는 다시 조성 비율에 따라 523, 622, 811, 9반반 등으로 나뉜다. 니켈의 비중이 80% 이상인 NCM811 이상부터 하이니켈(high nickel) NCM으로 칭한다. NCM 53, NCM 522는 미드 니켈로 분류한다.
-극판 기술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에너지 밀도를 올리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첫 번째 활물질을 바꾸는 것이다. NCM이나 LFP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활물질을 두껍게 쌓는 것이다. 이것을 후막 전극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후막 기술 도입이 어려웠다.
-후막 전극을 쉽게 설명하자면.
▲쉽게 얘기하면 기존 전지에서 양극, 음극, 분리막이 10장씩 쌓여 있었다면 이것을 5장으로 줄이고 그만큼 활물질을 더 두껍게 쌓는 기술이다. 전체 부피를 그대로 두고 극판 두께만큼 활물질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용량을 키울 수 있다. LFP든 NCM이든 마찬가지다. 그동안에는 양극 활물질 조성을 바꾸기만 해도 에너지 용량을 쉽게 끌어올렸다. 이제 양극 기술은 9반반(니켈 코발트 망간을 각각 9, 1/2, 1/2씩 혼합하는 것)까지 가서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LFP도 에너지 밀도를 끌어 올려야 하는 숙제가 있다. 후막 기술을 도입하면 LFP도 NCM523, NCM622 수준까지 용량을 늘릴 수 있다.
-후막 전극 기술은 언제쯤 상용화될 수 있나?
▲파우더(활물질에 들어가는 분말 형태의 소재)가 아니라 극판 기술이 필요하다. 바인더(활물질과 도전재가 집전체에 잘 붙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접착 물질)와 도전재(활물질의 전자 전도도를 높여주기 위해 보충해주는 물질)의 싸움이다. 바인더는 1991년 소니가 처음 리튬이온 배터리를 상용화한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기존 PVDF((Poly vinylidene fluoride) 바인더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를 포함해 여러 곳에서 현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실제 기업에서 양산할 수 있을 때까지는 3~5년 정도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 전망은.
▲저희도 차세대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지만 양산이라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도깨비 방망이’를 찾는다. 왜 전고체 배터리를 ‘꿈의 배터리’라고 하겠는가. 정말 꿈이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개발하는 사람들은 꿈만 좇아서는 안 된다.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브리지 기술 없이 차세대에만 매달리면 중간에 계곡에 빠져 죽는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브리지 기술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후막 기술과 함께 건식 코팅 전극, 실리콘 음극재 등이 있다. 건식 전극이란 활물질을 용매에 섞어 슬러리로 만드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 집전체에 도포하는 기술을 말한다. 건조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용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테슬라가 4680 원통형 배터리에 건식 코팅을 적용할 계획이다. 건식 전극은 후막을 위한 기반 기술이기도 하다.
-음극재로서 실리콘과 리튬 메탈을 비교하자면.
▲차세대 음극재로 주목을 받았던 것이 리튬 메탈이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리튬 메탈도 ‘도깨비 방망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리튬 메탈 음극재는 실험실에서는 좋은 결과들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기업에서 양산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리튬 메탈은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고 본다. 대신 실리콘은 음극 소재로 가능성이 크다.
-실리콘도 스웰링(swelling) 이슈가 있는데.
▲어렵지만 리튬 메탈보다는 상업화가 유리하다. 기업마다 다르겠지만 함량 비율을 꽤 많이 올리고 있다고 들었다. 실리콘 음극재는 에너지 밀도를 크게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응용 분야)을 개척할 수 있다. 드론을 예로 들 수 있다. 드론은 한 번에 오래 날아야 하는 대신 충·방전 횟수에 대한 요구가 크지 않다. 이런 분야에서 실리콘 음극재를 먼저 상용화한 후 차츰차츰 안전성을 강화하면서 응용 분야를 확대할 수 있다. 한꺼번에 모든 니즈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차세대 배터리, 도깨비 방망이 아니다"
-전고체 vs 리튬황, 어떤 게 먼저 상용화될까.
▲단언하기 어렵다. 기업이 선택하기에 달렸다. 출시 여부는 기술적 진보보다 비즈니스적인 판단에 좌우될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리튬황 배터리가 조금 더 앞서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전고체 배터리를 먼저 내놓을 것 같다. 단 진정한 의미의 전고체 배터리는 아닐 수 있다. 앞으로 5년 내에 나오는 전고체 배터리는 전해액이 약간은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이상영 교수는 전고체 배터리를 컵과 구슬에 비유했다. 기존에 리튬이온 배터리는 컵 속에 구슬(활물질)을 넣고 물(전해액)을 넣는 것이라면 전고체는 물 대신 모래를 뿌리는 방식이다. 물을 넣으면 구슬이 골고루 적셔지지만 모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전기화학적 반응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또 전해액을 넣으면 충·방전 과정 중에 구슬이 커졌다 작아졌다 해도 전해액과 접촉이 유지되지만 모래를 넣으면 균열이 생긴다. 이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는 양산을 하더라도 수율이 크게 떨어진다. 이 교수는 양산성을 높이기 위해 당분간은 전고체 배터리에도 약간의 전해액이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다.
-중국 CATL이 발표한 반고체는 어떤 것인가.
▲반고체 배터리는 일종의 마케팅 용어라고 보면 된다. 기술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니 그렇게 작명을 한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전해액에 고분자, 산화물계 등 여러 물질을 혼합하고 있다. 뭐라 정의하기 어려우니 ‘반고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발표한 반고체 배터리에도 전해액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
-나트륨이온 배터리 전망은 어떻게 보나.
▲나트륨(소듐)이온 배터리는 예전에 우리도 연구하다 그만뒀던 것이다. 그런데 리튬 가격이 폭등하니까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리튬 가격이 다시 폭락하니까 주춤해졌다. 리튬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면 LFP로도 저가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 결국 리튬 가격에 달려있다고 본다. 앞으로 리튬 가격이 다시 천정부지로 치솟을지 모르니 나트륨이온 배터리 기술 개발은 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은 아니다.
-차세대 배터리는 너무 먼 얘기 같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을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만 계속해서는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기 어렵다. 차세대 배터리를 연구하다 나온 기술을 리튬이온 배터리에 접목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면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도 퀀텀 점프가 일어날 수 있다. 차세대 배터리는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차세대 전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2~3년 안에 양산 안 되면 안 돼” 이런 식으로 말하면 곤란하다.
"K-배터리, 벤츠·BMW같은 기업 돼야"
-중국 기업들이 한국을 많이 따라잡은 것 같다.
▲한국 배터리 셀 기업들이 초기에 중국 소재 기업들을 많이 키워줬다. 빨리 제품을 만들어야 하니까 중국 소재 기업과 손잡았다. 그런데 그게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지금은 거꾸로 종속이 됐다. 한국이 키운 중국 소재 기업들이 중국 배터리 기업에도 납품하고 있다. 연구 인력도 크게 차이가 난다. 우리는 연구 인력도 부족하고 주 52시간 근무시간도 지켜야 한다. 우리가 1명이 할 걸 중국은 100명이 달라붙어서 연구한다. 중국에 가서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연구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과 어떻게 경쟁해야 하나
▲이제 물량으로 승부해서는 안 된다. 생산량으로는 중국을 이길 수 없다. 우리나라 전지 기업들이 BMW나 벤츠 같은 회사가 됐으면 좋겠다. 적당한 규모로 많은 마진을 남길 수 있는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LFP도 마진이 맞는다면 게임을 해야 한다. 많이 안 팔더라도 테크놀로지에서 주도해야 한다.
-중국 기업들도 연구개발을 많이 하지 않나.
▲그러니까 이제부터 굉장히 복잡한 퍼즐 게임이 펼쳐지는 거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보면 다 기라성 같은 선수들이 뛰고 있다. 상대 팀의 전술도 잘 알고 있다. 그중에서도 1등 하는 팀이 나온다. 이차전지 시장도 이제 프리미어 리그가 시작됐다. 한국 배터리 기업 경영진이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이미 30분 전에 CATL이 똑같은 발표를 하고 갔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한다. 정말 어려운 게임을 하고 있다. 상대방을 뛰어넘는 새로운 것을 내놔야 이길 수 있다.
-중국 기술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생산 규모는 우리보다 몇 배 앞서고 있다. 제품의 품질이나 안정성은 그동안 2% 부족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많이 쫓아온 것 같다. 별로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하고 기술은 비슷한데 가격은 좀 싸다는 평가를 받는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중국이 잠시 주춤하고 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우리가 많이 앞서가야 한다.
-소재 개발에 AI를 활용하기도 하던데.
▲AI는 멋진 기술이다. AI와 로봇을 이용해 실험한다면 소재 개발 기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 우리도 반드시 AI를 이용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이 우리보다 많은 인력으로 주말까지 연구한다면 우리는 AI를 활용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최근 정부가 이차전지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대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아직도 반도체에 비하면 턱도 없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중국 칭화대에 방문했더니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학과 1위는 AI이고 2위가 이차전지라고 하더라. 그만큼 이차전지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연구 과제가 중복되는 경우도 있다. 컨트롤 타워가 있어 교통정리를 해주면 좋겠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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