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황금 쇼핑’에 골몰하는 속내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보유자산 다각화’ 내걸고 美 국채 내던지고 황금 구매에 ‘올인’
인플레이션·위안화가치 약세 막고 미·중 갈등 심화도 작용한 듯
부동산·주식시장 침체로 갈 곳 잃은 개인 투자자도 구매대열에
중국 대륙이 ‘금 사재기’에 여념이 없다. 미국과의 패권 다툼이 심화하면서 중국 정부가 미 국채를 대량 내다파는 대신 황금 매입을 늘린 데다 부동산·주식시장이 시난고난(병이 심하지는 않으면서 오래 앓는 모양)하는 바람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중국의 개인 투자자들도 앞다퉈 ‘안전자산’으로 알려진 금 매입에 나선 까닭이다.
중국이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황금을 매집(買集)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지난 1일 보도했다. 닛케이는 “미국과의 첨예한 갈등과 경제상황이 불안한 중국이 미 국채를 대규모 매각하고 금 매입을 30%나 늘렸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ChinaDaily·中國日報)에 따르면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해 전 세계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225t 규모의 금을 매입했다. 글로벌 전체 거래량의 21.6%로 중국 정부가 통계를 공개한 197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로써 중국은 전 세계 황금 보유량의 4.5%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금 보유국으로 발돋움했다. 중국의 전체 황금 보유량은 2235t까지 늘어나 남미와 아프리카, 인도의 보유량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적어도 매달 10억 달러(약 1조 3290억원)가량을 금 구매에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국이 공개적으로 황금을 구매하고 있을뿐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금을 대량 생산하고 있는 만큼 실제 황금 보유량은 공식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황금협회(CGA)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황금 생산량은 519t에 이른다.
중국 정부가 ‘보유자산 다각화’(?)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미 국채를 내던지고 금 매집에 나서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전년보다 10% 줄어든 7820억 달러(약 1038조원)로 집계됐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2월 24일 직후보다 무려 2300억 달러나 감소한 것이다.
더욱이 패권 다툼에 따른 미·중 갈등 심화와 미 부채가 불어난 2022년 이후 중국은 미 국채 매각량을 대폭 늘리고 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3조 2380억 달러 규모다. 전년보다 0.4% 증가했다. 그러나 금과 미 국채 비율이 크게 바뀌었다. 2020년 12월 말 기준 금 보유액은 1.9%였지만 2023년 12월 2.8%로 상승했다. 반면 미 국채 보유액은 같은 기간 24.8%에서 19.6%로 떨어졌다.
중국이 황금을 사들이고 미 국채를 내다파는 것은 인플레이션(물가상승)과 위안화 가치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인하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증가에 따라 국제 금값은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에 비해 미 국채는 수익률이 떨어졌으며, 미국의 재정적자와 부채증가로 인해 신용도가 악화될 우려가 여전히 남아 있다.
금은 국제 준비통화 역할을 강화한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 중인 중국 정부는 황금 보유량을 늘림으로써 위안화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높이고 국제금융 시스템에 영향력을 더 행사할 수 있다. 중동 석유생산국에 위안화로 유가를 결정·결제하도록 요청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으로 황금은 좋은 투자처다. 미국과의 무역전쟁과 대만, 홍콩, 남중국해 등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로부터 중국의 자산을 보호하고 미국의 제재나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개인 투자자들도 ‘금 사재기’에 가세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 지속과 고꾸라진 증시에 실망한 ‘큰손’들을 중심으로 "황금 만한 게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금 매수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평소에도 결혼 및 기타 선물용으로 금과 보석을 선호하지만 현 경제상황이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고 부동산·주식시장의 침체가 계속되자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투매하고 황금을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지난해 금소비량은 1089.69t로 전년보다 8.78% 늘어났다.
실제로 중국 상하이(上海)·선전(深圳) 증시의 시가총액 상위 300종목으로 구성된 CSI300 지수만 해도 5년 새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투자자들은 증시와 부동산 시장 혼란의 피난처로 황금을 선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콜린 해밀턴 BMO캐피털마켓 애널리스트는 "중국 투자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쌓아둔 막대한 저축금을 어디에 넣어둘지 고민하는 사이 금은 중국 포트폴리오(투자전략)에서 필수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중국의 ‘골드러시’는 국제 금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금은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만큼 시장의 불안감을 틈타 가격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국제 금가격은 코로나가19 한창이던 2020년 8월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20022년 10월엔 1600달러선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러다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 테러단체 하마스 간 전쟁 발발 등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가격이 급등했다.
지난 1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2078.5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1년도 안 된 기간에 14.2%나 올랐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에 따른 위태로운 중동 정세에 미국의 긴축이 곧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감 등이 맞물린 데다 중국발 금 구매 열기가 가격상승을 부추겼다. 영국 횡금거래 업체 불리온볼트는 "세계 최대 금 소비국인 중국의 금 수요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 경기가 침체의 수렁에서 못 벗어나면서 당분간 중국의 골드러시가 이어질 전망이다. 미·중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중국의 황금 사재기 및 미 국채 매각은 올들어서도 지속돼 세계 금 시장과 국제금융 질서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만큼 국제 금 가격은 앞으로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금값 상승의 원동력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통화정책 피봇(전환)이 될 전망이다. 월가는 연준이 올 상반기 중 금리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준금리 예측모델인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 Watch)툴에 따르면 연준이 오는 3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16.0%이고 5월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61.7%에 달했다.
악재보다 호재가 많으니 국제 금값이 역대 최고가를 갈아치울 것이라는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게이지는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로이온스당 3000달러를 목표가로 제시하기도 했다. 마크 뉴턴 펀드스트래트 기술분석가는 지정학적 리스크 등 기술적 요소를 거론하며 금값이 2500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 용어 설명
국제 금 가격의 단위는 온스(Ounce)가 아닌 '트로이온스‘(Troy Ounce)를 사용한다. 1트로이온스는 31.1034768g이다. 통상적으로 온스가 무게를 나타낼 경우 1온스는 28.349523g이다. 트로이온스가 온스보다 9.7% 더 무겁다. 액체·곡물 등은 온스로 측정하는 반면 금·은·플래티넘(백금) 등과 같은 귀금속은 트로이온스로 재고 있다.
물론 표준단위인 그램(g) 단위로 금값을 발표하는 게 바람하지만 미국 뉴욕과 시카고, 영국 런던 등 금 선물·현물 거래소에서는 여전히 트로이온스 단위로 금을 거래한다. 미터법을 쓰는 우리나라도 금을 매매할 때 ‘돈’을 사용하는 관행이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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