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人사이드]"보이지 않게 된 어머니들께" 사진가 데뷔한 장애아 어머니의 조언

전진영 2024. 2. 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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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미사토씨 이야기
매일 특수학교 대기실 6시간…우울감에 적응장애 겪기도
사진 찍으며 진솔한 이야기 담아 화제

아이는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행복이라고 하죠. 그러나 육아와 커리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장애아동을 키우는 부모라면 더욱 그렇죠. 일본에서는 장애아동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치부되는 모든 어머니에게'라는 사진첩을 발매해 화제가 됐습니다. 24시간 아이를 지켜보고, 케어하고, 학교에 데려다줬다 아이를 기다렸다 데려와야 하는 와중에 본인은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으로만 존재했다는 것이죠.

이에 "어머니는 좀 더 자유로워도 괜찮다"는 말로 다른 부모들에게 힘을 줬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오늘은 사진가로 최근 데뷔한 야마모토 미사토씨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야마모토 미사토씨가 사진집에 실은 사진. 오른쪽은 차남 미즈키.(사진출처=NHK)

43세 야마모토 미사토씨는 중학생부터 대학생 자녀 4명을 둔 어머니입니다. 첫째 아이를 낳고는 아이를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고 수입 잡화를 취급하는 기업에서 근무했었는데요. 일이 그녀에게 오히려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동기부여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 미즈키가 태어난 이후 생활이 바뀌어버리죠. 장애를 안고 태어나 15분에 한 번 가래 흡입, 인공호흡기와 같은 의료적 케어가 필요하고, 24시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남편은 출장이 잦은 업종이라 일을 그대로 하게 두고, 결국 야마모토씨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 케어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밤낮 상관없이 가래를 뽑고 해야 하기 때문에 잠도 못 자는 나날이 반복됐는데요. 이에 "왜 나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를 특수학교에 보내면서 의문이 점점 커졌는데요. 특수학교 입학 조건에 일부 의료적 케어를 학교 간호사가 담당할 수 없으니, 학부모가 동행하라는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교실이나 대기실 구석에 앉아 항상 시간이 지나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는데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할 일이 없으니 "뭐라도 도울까요"라고 물으면 "필요할 때 말고 엄마는 신경을 쓰지 말고 계셔야 한다. 아이들의 자립을 위해서"라는 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뜻을 충분히 알지만, 대기실에서 매일 6시간을 앉아만 있어야 하는 일에 허무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내가 이 대기실에 앉으려고 학교를 나오고 일을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나는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했다고 합니다. 나도 사실은 장애아동을 돌보는 것이 힘들다고, 장애아동의 어머니가 고민을 털어놓기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를 돌보느라 밖에 나가 이야기할 곳도 없었죠. 결국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채 적응장애 진단을 받게 됩니다.

특수학교 교실 한 켠에 앉아서 대기 중인 야마모토씨.(사진출처=NHK)

아이를 정말 사랑하고,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힘든 날들은 계속됐는데요. 이때 야마모토씨가 의지할 곳은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키우고 있는 고양이, 미즈키와의 일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댓글을 확인하면, 어딘가 편해지는 기분이었다는데요. 이에 취미인 사진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생각,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을 이용해 사진을 찍기 시작하죠.

그는 셀프 타이머 기능을 이용해 투명 인간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 그리고 학교 복도에 있는 물건들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해 한장 한장 찍어나갑니다. 직접 글도 쓰게 되죠. "학교 복도에서 지금 보이는 것은 슬리퍼 한 켤레뿐입니다. 교내 대기를 '없는 사람처럼 일관하는 교육방식'으로 멋지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저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부르기로 했습니다"라고도 쓰고.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것은 젊어지고 싶어서라거나, 세련되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아닙니다. 그냥 이 생활이 시작되면서 엄청나게 늘어난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서입니다."라고도 적었습니다.

사진기로 촬영 중인 야마모토씨.(사진출처=NHK)

그러면서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어머니는 신경을 끄고 계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경험을 적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어머니에게 바친다"라는 게시글도 올려 화제가 됐는데요. 작품이 SNS에서 공유되고 출판사 눈에 띄면서 지난해 12월 화보로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제목은 '투명인간, Invisible mom'인데요.

이를 통해 많은 학부모로부터 공감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가노현 요시무라 사야카씨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가운데 수많은 마음속 갈등이 생긴다"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왔지만 힘들다, 고통스럽다는 이야기도 포함해 말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야마모토씨의 사진전 기획에 참여했습니다.

전시회장을 방문한 40대 여성은 NHK 인터뷰에서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요원으로 대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답답했다. 야마모토씨의 작품으로 나의 상황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는데요. 유명 작가 야마자키 나오코라씨도 전시회장을 찾아 "내 존재는 내 것일 텐데 어느새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이 되는 현상은 많은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다"며 "엄마는 변하지 않아도 된다. 변해야 하는 것은 사회나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은 우리"라고 말했습니다.

야마모토씨가 출간한 사진집.(사진출처=NHK)

야마모토씨는 "여러 사람이 내 작품을 알게 되고, 이제 야마모토씨라고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투명 인간에서 조금씩 탈출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아이의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어머니들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사진집이 마음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본보기가 됐으면 한다"며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태어나든 어머니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는 분명 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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