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미국 잡고 펄펄 나는 ‘K웹툰’…AI 시대에도 통할까

전성필 2024. 2. 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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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라인 망가'(왼쪽)와 카카오 '픽코마' 로고. 각사 제공

웹툰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싹을 티운 산업이다.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국내 양대 포털 생태계에 만화라는 콘텐츠가 올라타면서 이용자 접근성을 높였다. 다양한 소재의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이용 연령대를 넓히는 등 진입장벽도 대거 낮췄다. 웹툰 이용자가 늘자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규모로 거대한 시장이 형성됐다. 현재는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주요 산업으로서 ‘K-웹툰’이 자리를 잡았다. 10일 시장조사업체인 마켓그로스리포트에 따르면 2022년 세계 웹툰 시장 규모는 39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빅테크들이 웹툰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서 국내 기업 위주로 돌아가던 산업이 도전에 직면했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웹툰 산업에 침투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생성형 AI가 양산한 낮은 품질의 웹툰이 범람하면서 시장 가치 자체가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종주국 일본·미국 잡고 ‘날개’
국산 웹툰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는 전 세계 만화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일본 시장을 선제적으로 장악한 전략이 주효했다. 네이버(라인망가)와 카카오(픽코마)는 일본에 온라인 만화 시장 자체가 미미하다는 점을 노리고 시장을 개척해나갔다.

일본은 전 세계적으로 ‘일본 망가(만화)’가 하나의 문화적 장르로 통용될 정도로 만화 시장 규모 자체가 크다. 하지만 만화책 등 출판물 위주로 산업 생태계가 돌아갔고, 디지털화의 속도는 더뎠다. 웹툰은 모바일이나 웹 스크롤에 최적화한 디지털 만화를 의미하는데,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운드와 텍스트를 동시에 활용해 기존 만화보다 풍부한 경험을 제공한다. 일반적인 만화와 다른 경험을 준다는 점은 온라인이 익숙지 않은 일본인들이 관심을 갖기 용이했다.

네이버는 라인망가를 통해 2013년 일본에 진출했다. ‘라인’이라는 일본 1위 메신저 지위를 활용해 시장을 선점했다. 이후 2016년 픽코마가 일본으로 진출했다. 픽코마는 현지 수요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로 승부를 봤다. ‘이태원 클라쓰’, ‘나혼자만 레벨업’ 등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로 승부를 봤다. 또 일본 내 이용자들이 유료 결제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 매출을 올렸다. 특히 픽코마는 일본 이용자들이 익숙한 기존 단행본·권 단위의 만화에서 벗어나 세로형의 화 단위로 연재하는 웹툰 감상 환경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그 결과 2020년 일본 웹툰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에는 연간 거래액 1000억엔을 달성하면서 일본 시장을 장악했다.

미국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한 전략도 K-웹툰이 콘텐츠 산업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은 콘텐츠가 세계 각국으로 퍼지는 ‘확산 시작점’으로 여겨진다. 네이버웹툰은 2014년 미국으로 첫 진출 했다. 2020년에는 아예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다. 아마추어 창작 플랫폼 캔버스를 영어 서비스로 내놓고 12만명이 넘는 작가들이 작품을 등록하게 만들며 생태계를 넓혔다. 미국의 주요 콘텐츠 기업 DC코믹스와 제휴해 이용자를 끌어오기도 했다. 2022년 2분기 기준 네이버웹툰의 북미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MAU)는 1250만명에 달한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2년 북미 지역에 타파스엔터를 출범시키고 웹툰·웹소설 플랫폼 타파스를 출시해 매출액을 올리는 중이다. ‘현지화’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한국의 기존 웹툰과 웹소설을 현지화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올해 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북미 플랫폼 타파스 일 거래액은 2억원을 넘겼다. 지난해 대비 연초 일 거래액 규모가 40% 이상 성장한 수치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북미에서 연 1000억원의 거래액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웹툰에 도전장 내민 빅테크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웹툰이 차지하는 무게감이 커지면서 도전장을 내미는 빅테크도 나타나고 있다. 아마존과 애플이 대표적으로 일본을 무대로 웹툰 시장 점유율 넓히기에 들어갔다. 아마존은 일본에서 총 1억엔(약 9억원)을 내걸고 공모전을 통해 작품 확보에 나섰다. 아마존은 한국 웹툰 제작사로부터 웹툰 콘텐츠를 공급받아 일본에서 유통해왔다. 그러나 자체 공모전으로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애플 역시 지난해 4월 일본에서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자책 플랫폼 애플북스에 ‘세로로 읽는 만화’ 페이지를 신설하고 콘텐츠를 늘리는 추세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도 지난달부터 웹툰 서비스를 시작했다. 만화 앱을 출시하고 국내 웹툰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을 차용했다. 이른바 ‘기다리면 무료로 풀리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이 방식은 픽코마가 유료 콘텐츠를 일정 시간이 지나면 무료로 풀리게끔 해서 이용자들을 오랫동안 플랫폼에 머무르도록 유도한 전략 중 하나다. 만화 제작사와 손잡고 라쿠텐 오리지널 웹툰도 선보였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빅테크들의 공세가 거세지면 글로벌 웹툰 시장의 무게추가 기울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규모 자본을 통해 콘텐츠 공급 시장을 장악할 경우 국내 플랫폼의 경쟁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거대한 자본을 투입해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을 약 4년 만에 장악한 것처럼 웹툰도 비슷한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AI 시대도 웹툰 경쟁력 위협
최근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웹툰 산업에 침투하면서 품질 저하로 인한 시장 가치 하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생성형 AI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웹툰을 손쉽게 생산해내면서 이용자들의 만족도를 낮출 거라는 전망이다. AI가 창작하는 콘텐츠는 인간의 감정이나 가치관, 윤리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고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웹툰을 무분별하게 양산해낼 수 있다. 웹툰에 대한 대중 반발을 일으키거나 차별적인 내용으로 인한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일부에서는 AI를 적극적으로 유통 확산에 활용하기도 한다. 서비스 고도화에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선 것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AI 브랜드 헬릭스를 지난해 만들고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된 시점에 최적화된 작품을 추천해주는 기능을 제공 중이다. 웹툰 업계 관계자는 “정부나 기업 차원에서 AI를 창작 활동에 활용하는 데 대한 명확한 규제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K-웹툰의 품질과 독창성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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