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장애가 있는 가족과 명절 잘 보내는 법

박지니 2024. 2. 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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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믿어주는 것... '회복'이 아니라 상대를 돌보려는 마음이 변화를 만든다

거식증, 폭식증 같은 하위 질환명으로 더 잘 알려진 섭식장애(Eating Disorders)는 현상으로서의 증상만 놓고 보면 수 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뿌리 깊은, 인간적인 질환이다. 지난 5년간(2018년~2022년) 섭식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은 총 5만여명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숨은 환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잠수함토끼콜렉티브’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모임으로, 지난 2023년 2월 말 국내에서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주최했다. 올해도 두 번째 행사(2/28~3/5)를 준비 중이다. 이번 연재기사를 통해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하고 준비해 온 과정과 고민을 펼쳐 보이고,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들과 가족 그리고 치료자의 글을 통해 지금-여기에서의 섭식장애의 진실을 밝히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기자말>

[박지니]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과 그 가족이 명절을 무사히 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 한국보다 훨씬 앞서 1980~1990년대부터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개최 중인 외국에서는, 추수감사절 무렵 'Eating Disorder Holiday Survival Tips' 같은 글들이 많이 발행된다. 그러나 그 글들은 내겐 익숙한, 예를 들어 '폭식 충동이 들 때 열 손가락에 매니큐어 칠하기' 같은 다소 현실성 떨어지는 류의 조언이 대부분이었다. 

'매니큐어 칠하기'라는 조언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20여 년 전 스물몇 살의 나는 내 하루를 허무하게 잠식해 버리는 섭식장애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책을 찾고 시도해봤다. 아마도 번역서였을 어떤 책에는 폭식과 구토 충동에 행동 반응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팁을 나열하고 있었다. 거기엔 물 마시기, 산책하기, 마음 챙김 명상하기 같은 조언과 함께 '열 손가락에 정성껏 매니큐어 칠하기'도 끼어 있었다. 

그때까지 매니큐어를 한 번도 칠해 본 적 없는 나는 그날 우연히 본 할인 매대에서 색색의 매니큐어를 다섯 개쯤 샀고, 어느 날 저녁 그중에서도 흰색 매니큐어를 골라 손톱 위에 바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매니큐어 붓이 두세 번 닿자마자 서툰 붓질과 어색한 색깔이 곧장 기분을 더 망쳐버리기만 했고, 순진했던 시도는 개봉도 못 한 매니큐어만 여러 개 남은, 우스꽝스러운 실패로 마무리됐다.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라는 조언은 양손을 한동안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충동적 행동을 지연시키라는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까? 아주 오래전 섭식장애 인터넷 카페에서 읽었던 한탄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는 먹고 토하는 일에 진절머리가 나서 남은 음식을 몽땅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신 먹지 않으려고 살충제까지 뿌렸단다. 그럼에도 결국 그는 그 음식을 꺼내 먹고, 또 토한다.

딸의 식사에 집착하지 않은 어머니
 
 지난 5일 서울 중곡제일시장의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솔직히 나는 명절을 홀로 보낸 지 여러 해가 됐다. 명절음식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린시절 받았던 기대가 무안하게 나이를 먹도록 남들처럼 '성공'하질 못하는 나를 친척들 앞에 내보이느니 피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였다. 

왜 그래야 하는지 알 수 없는데 계속 하는 명절의 그 모든 부당한 인습들, 거기에 깔린 해묵어 악취 나는 권력 관계, 여성들의 끝없는 음식준비와 가사 노동 등으로부터 깨끗이 벗어나려면, 아예 이민이라도 간 자식인 양 '이 집 큰애는 바빠서 명절에 못 내려온다'는 인식을 심어놓는 것이 깔끔하긴 하다(그러나 그게 가능하려면 주거독립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딸이고 섭식장애와 고투하고 있으나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가족이 당신의 회복 과정을 지지해 주고 있어 집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혹은 더 이상 가족 없는 사람처럼 혼자 지내고 싶지 않아서 명절을 가족과 보내기로 용기를 낸 사람이라면, 내가 겪었던 것처럼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경험을 적어 본다.

1955년생 내 어머니 함 여사에 내가 감사한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내 식생활과 관련해서는 더 감사하다. 어머니는 딸인 내가 한창 여위고 아팠을 때도 일부러 고열량을 섭취하도록 집착하지는 않으셨다.

상담센터에서의 식사치료 때나 이런저런 경위로 십 대 친구들과 그들의 어머니를 종종 접할 때마다, 최근 문화의 대중적 정보들에 많이 노출된 어머니들이 아이가 섭취하는 음식의 정량적 부분(얼마나 많이 먹는지 아닌지)에 사뭇 예민하게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곤 했다.

아이가 줄어든 체중을 회복하려면 이 정도는 먹어줘야 하는데, 꾀를 부려 저칼로리 음식만 조금씩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조바심과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면 어머니는 일부러 고열량 음식만 만들어 아이 앞에 바치고 아이는 점점 더 몸을 움츠리며 반항하는, 섭식장애 최악의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

먹을 수 있는 걸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어머니는 지금도 필자가 좋아하는 채소 요리들을 정성껏 마련해 주신다.
ⓒ 박지니
 
내가 함 여사에게 놀랐던 순간은, 내가 오이소박이나 나물 같은 음식을 즐겨 찾아 먹을 때 그걸 순수히 같이 기뻐하셨던 것도 그랬지만, 어느 날 속이 뒤집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탈진해 누워만 있을 때 어머니는 따뜻한 미음과 몽고간장 한 종지를 쟁반에 받쳐 침대에 가져다주셨을 때였다. 어머니는 식사마다 칼로리 계산 따윈 하지 않으셨고, 신선한 재료로 정성껏 마련한 음식이 아픈 몸을 보듬어 살릴 수 있으리라 진심으로 믿으시는 것 같았다.

즉 어머니는 나를 살찌우기 위해, 병원에서 지시한 '회복'을 달성하기 위해, '애를 굶겼다'고 남들에게 비난 받지 않기 위해 나를 먹이고자 한 게 아니라 나를 돌보는 마음으로 내게 양분을 제공하신 거였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못 꾸미는 어머니가 고맙고도 안쓰러웠고, 어머니의 순전한 사랑이 사랑스러웠다(그날 맛본 몽고간장의 맛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머니에게 이게 왜 '몽고' 간장이냐고 물었으나 나도 모르겠다는 답만 들었던 것도 기억난다).

십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어머니가 쓴 책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2019)>에는 툰베리가 더 어렸던 시절 자폐증으로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각한 거식증 증상을 보였을 때, 가족이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지 설명이 등장한다. 부모는 아이가 유일하게 씹고 소화시킬 수 있는, 부드러운 감자요리인 뇨끼 몇 조각을 아이가 다 먹을 때까지 식탁을 떠나지 않고 기다린다. 그 인내와 희망과 좌절의 고투를, 그 싸움이 결국 필요하지 않게 될 때까지, 묵묵히 지속한다. 

핵심은 '믿음'인 것 같다. 간혹 섭식장애 증상과 힘싸움을 해야 하더라도, 줄다리기 줄을 아이 편에서 당겨야 한다. 부모는 아이와 한팀이어야 한다. 섭식장애 문제는 아이와 부모가 애초의 관계 맺음을 '회복(reparation)'할 수 있는, 애착과 믿음을 재건할 수 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함 여사의 현명함은, 당신이 내게 진정 바라는 게 무조건 많이 먹는 게 아니라 적당한 양을 먹고 잘 소화시키고 편안해지는 것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어머니는 먹을 양을 정해 주셨다. 먹고 부담스러워지면 안 되니 적게 먹어 보고 또 먹으라고 하거나, 대충 먹으려는 내게 핀잔을 주면서 그릇에 예쁘게 담아 직접 차려 주시기도 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사실상 가축 여물 먹이는 것보다 못하게 대할 때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당신 딸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게 싫으셨던 거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다른 음식을 먹어 보라고 내게 안 권하거나, 한 테이블에 같이 앉아 먹자고 운조차 안 띄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초대는 강압적이지 않았고 조심스럽고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정도였다. 내가 뚱한 표정으로 대뜸 "아니!" 하고 놀리듯 답하면 "치" 하고 삐친 표정을 지으며 바로 단념하시곤 했다.

당사자에게 편안한 공간과 분위기 만들어주기

만약 친지가 모인 식탁에서 누구나 모든 차림을 일률적으로 먹어야 하는 분위기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땐 당사자가 따로 먹을 수 있게, 혹은 먼저 먹거나 나중에 먹도록 상황을 조정해 줄 수 있다. "얘네는 나중에 따로 먹으면 돼요. 먼저 드세요"라고, 가부장제 여성의 밥상에서의 위치를 역이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서로의 식성이나 식사량에 무던한, 편안한 이들끼리의 조촐한 식탁이라면 아이가 용기를 내어 식탁에 합류해 보게끔 유도하는 것도 좋은 시도다. 

자신에게 그나마 안전한 편에 속하는 음식만 먹는 아이도 명절상에 올라온 다른 음식에 눈이 갈 수 있다. "동태 전 하나 먹어볼래?" "갈비찜 되게 맛있게 됐는데 먹어볼래? 요만큼만." 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보는 것도 해볼 만하다.

아이가 먹을 의향은 있지만 겁을 낸다면, 아주 조금만 먹을 양을 정성껏 새 그릇에 덜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미 스스로를 믿을 수 없게 된 아이를 대신해 한도를 정해주는 것이다. 열에 여덟 아이는 거절하겠지만, 그에 상처받아서는 안 된다(아이는 공포를 거절한 것일 뿐 엄마를 거절한 게 아니란 사실을 기억하자).

설령 아이가 몰래 음식을 먹어 치우고 먹은 걸 토해 버렸대도, 그 모든 상황이 아이에 대한 질타로 이어져선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단편 <고통>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작가의 경험에 기초한 작품이다. 여자의 남편은 정치범으로 나치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독일 패전 직후 거의 주검 같은 상태로 수용소에서 구출된다. 말 그대로 뼈만 앙상해진 그는 오랜만에 본 케이크를 바로 먹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은 먹으면 안 된다'는 아내 말을 듣고는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다(갑자기 먹으면 소화기관에 무리가 간다는 의사의 권고 탓이었다).

소설에는 안 나오지만, 만약 남자가 몰래 음식을 찾아 꾸역꾸역 삼키고 결국은 - 그게 위장 문제 때문이든, 살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든 - 구토해 버리고 말았다면, 그는 '지금 네가 벌여 놓은 꼴을 보라'라고 가족 앞에서 수모를 당했을까?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섭식장애와 싸우는 이들은 너무도 자주 그런 수모를 당하곤 한다. 가족들도 아마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이에게 가족이 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배려는, 그가 편안히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적극적으로, 창의적으로 같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건 어떤 경우라도 해당될 수 있는 얘기겠지만, 특히 집단성이 개인성에 우세해지는 대한민국의 명절에는 더욱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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