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정이 고플 때, 우리는 한인교회에 간다

양민경 2024. 2. 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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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김씨네 편의점’…해외 콘텐츠 속 한인교회 모습은
'성난 주인공' 주인공 대니(오른쪽 두 번째)가 동생(오른쪽 첫 번째)과 한인교회 농구팀에서 활약하는 모습. 성난 사람들 넷플릭스 공식 트레일러 캡처

“상한 마음에 쓰러진 자/ 죄의 무게에 억눌린 자/… 삶의 끝에서 무너진 자/ 생명의 샘에 목마른 자/ 오 주께 나오라/ 두 팔로 우릴 안으시네/ 우리 죄 용서하셨네.”

미국 찬양팀 엘리베이션 워십의 찬양곡 ‘오 주께 나오라’(O Come to the Altar)의 가사 일부입니다. 지난달 ‘TV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미국 에미상에서 8관왕을 휩쓴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에도 이 찬양이 나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한국계 미국인 ‘대니 조’(스티븐 연)는 한인교회에서 회중과 함께 이 가사를 따라 부르다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합니다. 그러자 교회 입구에서 쭈뼛대던 대니를 환영한 교회 목사가 다가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 형제와 함께 해 주십시오. 당신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소서.”

'성난 주인공' 주인공 대니가 보복운전에 분노하는 모습. 성난 사람들 넷플릭스 공식 트레일러 캡처

드라마에서 교회는 이민자 2세가 미국 사회에서 겪는 좌절감과 분노, 부담감과 공포를 쏟아내는 치유의 공간으로 등장합니다. 동시에 동포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공간, 부모와 자녀 세대 간 인식 차가 선명히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성난 사람들’의 감독인 이성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스티븐 연과 나는 한인교회를 다니며 컸기에 대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그곳에서 찬양을 부르게 했다”며 “교회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은 곳이다. 실제 모습 그대로를 (작품에) 담으려 애썼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작품에서 한국계 미국인의 유년 시절과 추억이 담긴 공간으로 한인교회가 소개되는 이유지요.

120년이 넘는 해외 이민사 가운데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온 한인교회.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인교회는 여타 해외 콘텐츠에서 어떻게 소개됐을까요.

캐나다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서 주인공인 엄마(왼쪽)와 딸이 교회에서 '멋진 한국인 기독교인 남자친구' 주제로 대화하는 모습. CBC 트레일러 캡처

고향의 정이 고플 땐…한인교회로
한인교회는 이민 1세대에게 향수(鄕首)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입니다. 비슷한 외모에 같은 언어를 쓰는 이들이 모여 예배 후 한식을 먹으며 서로의 안부를 나눕니다. 특히 교인들이 예배 후 함께 나누는 식사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민자의 향수를 달래는 한편 한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NYT) 역시 독특한 한인교회 식사 문화에 주목했습니다. 해당 보도는 한인교회의 점심을 “수십년 간 한인 이민자가 미국에 정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민 1세대를 주축으로 계속 번창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지난해 4월 미국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T)에 ‘성난 사람들’ 감상평을 남긴 아시아계미국인기독교협동조합 회장인 레이먼드 장은 한인교회 식사에 대해 이렇게 추억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예배 후 제공되는 도넛이 매우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밥과 김치, 콩나물이나 뭇국을 먹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한인교회는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한인들의 노력이 스며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캐나다 국영방송 CBC에서 방영한 시트콤 ‘김씨네 편의점’에서 주인공 중 한 명인 김씨 부인은 한인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여성으로 나옵니다. 그의 바람은 같이 사는 딸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한인 남성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딸은 ‘멋지면서도 기독교인이며 한국인인 남자는 한인교회에 없다’고 항변하지만 김씨 부인의 요구는 변함이 없습니다. 한국과 교회를 향한 애정과 고국에 대한 애국심의 발로로 동포 간 결혼을 권하는 김씨 부인의 모습에선 이민자 가정의 세대 차이도 엿보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철수 리' 스틸컷. 국민일보DB

동포 사회의 구심점
한인교회는 동포 사회에서 불거진 문제의 해결소 역할도 감당했습니다. 지난해 10월 국내에 개봉한 영화 ‘프리 철수 리’에서 한인교회들이 펼친 ‘이철수 구명운동’이 대표적입니다.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을 선고받은 한인 이민자 이철수의 구명운동은 한인교회로 시작해 재미 아시아계 전반으로 확장됩니다. 국내에서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미국교회여성연합회, 미국감리교연합회와 소통하며 같은 동포 이철수의 재심을 위해 목소리를 냈습니다. 10년간의 옥살이 끝에 이씨의 석방이 결정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한인들은 애국가를 부르며 기뻐합니다.

이문우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가 지난해 서울 중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철수 석방을 호소하며 작성했던 진정서 등을 보여주고 있다. 국민일보DB

당시 구명 활동에 참여한 이문우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총무가 지난해 9월 영화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말이 가슴을 울립니다. “외국인 자녀가 학교에서 따돌림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이들이 한국에서 철수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온기를 실천해달라.”

설 연휴 기간 한인교회 속 한민족의 이야기가 담긴 이들 작품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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