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세리처럼 물 들어갔다 부상...法 “골프장이 1500만원 배상”

오삼권 2024. 2. 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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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공이 해저드 인근에 떨어진 경우 선수가 직접 물에 들어가 공을 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8년 7월 7일 제53회 US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박세리가 보여준 '맨발 투혼'이다.[출처 뉴스1]


골프 라운딩 중 워터 해저드인 개울에 들어갔다가 다친 손님에게 골프장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40대 여성 A씨는 지난 2019년 6월의 어느 주말 아침, 충청북도의 한 골프장을 찾았다. 산 중턱 능선과 골짜기에 자리 잡은 컨트리클럽으로, 코스 도중 인공폭포와 계단식 호수가 이곳저곳에 배치된 곳이었다. A씨가 선택한 코스 1번 홀은 왼편에 호수에서부터 흘러온 개울이 세로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A씨는 개울 오른쪽 그린에 공을 올려놓기 위해 티샷을 휘둘렀다. 그런데 A씨가 친 공은 개울을 넘어 왼편으로 날아갔다.

사고가 벌어진 골프장의 1번홀. 개울 오른편에서 친 공이 왼편으로 날아가자 개울을 건너려다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골프장 홈페이지 캡쳐]


캐디는 A씨에게 개울을 건너가 공을 치라고 했다. 1번 홀 설계상 개울 자체는 해저드(장애물)지만, 개울 왼편은 해저드나 오비(아웃바운즈·코스 밖)가 아니었다. 개울을 건널 수 있는 조그만 나무 다리가 있었으나, 당시엔 더운 날씨에 무성하게 자란 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A씨가 개울을 건너려고 신발을 벗고 물에 맨발을 디딛는 순간 바닥의 돌에 미끄러져 발목을 심하게 다쳤다.

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29단독 김병휘 판사는 “골프장의 설치·보존상의 하자와 캐디의 불완전한 안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골프장이 A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개울 주변에 통행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경고문이 없었다”는 점과 “나무다리는 크기가 작고 낮을 뿐 아니라 길게 자란 풀들로 그 식별이 쉽지 않았고 나무다리가 있다는 안내문도 없었다”는 점이 주효했다.

서울중앙지법 전경 [출처 연합뉴스]

캐디는 A씨에게 나무다리로 건너라고 말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판사는 “캐디가 다리를 이용하도록 안내했다면 카트를 다리 근처에 정차해 고객을 내리게 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 캐디는 그 지점을 지나쳐 카트를 세웠다”며 “(A씨가 나무다리로 건너라고 들었다면) 굳이 위험성이 있는 개울을 직접 건너야 할 사정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신 골프장의 책임을 손해의 20%로 제한했다. A씨가 “미끄러질 위험이 있는 곳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건넜다”고 본 것이다. 금액으로는 위자료 200만원까지 더해 총 1500만원을 인정했다. A씨는 억대 연봉을 받는 전문투자상담직이었기 때문에 사고로 인한 수입 감소(5년간 노동능력을 90%만 쓸 수 있다고 가정) 금액이 상대적으로 컸고, 이미 쓴 병원비와 앞으로 받아야 하는 흉터 치료비 등을 고려에 넣었다. 골프장 측은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통상 골프장을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소송은 남이 친 공에 맞아 부상을 입어 제기하는데, 라운딩 도중 개울에 빠져 다친 경우에도 골프장 책임이 인정된 건 드문 사례다. 홍푸른 변호사(디센트 법률사무소)는 “캐디의 잘못과 골프장의 시설관리상 잘못이 인정된 사건으로, 만약 A씨가 캐디의 조언에 따르지 않고 건넌 경우라면 손해배상금은 인정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안전에 관해서는 골프장과 캐디의 안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말했다.

오삼권 기자 oh.sam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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