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앞 풀린 대기업 돈 9조, 中企 "받은게 없다"…현장 온도차, 왜
건축물 전기설비 시공업을 하는 A씨는 원청업체인 롯데건설·HDC현대산업개발·한국전력 등으로부터 설 연휴(9~12일)를 앞두고 공사대금 일부를 계약 기간보다 일찍 받았다. 대기업의 명절 협력사 대금 조기 지급 결정에 따른 것인데, A씨 회사 내에선 1년에 두 번(설·추석)씩 들어오는 정기 보너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A씨는 “보통 공사 완료 45~60일 뒤 수금하는 계약을 하는데, 이 기간 명절이 끼면 일부 금액은 조기 지급을 받게 된다”며 “받을 돈을 하루라도 빨리 받으면 기분 좋은 게 당연하다. 돈 나갈 곳은 늘 많기 때문에 요긴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건설 경기가 안 좋아서 일거리를 주는 대기업도 사정이 어려운 걸 아는데 그래도 중소업체를 챙겨주니 나로선 고마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플라스틱 용기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사정이 다르다. B씨의 회사는 이번 명절에도 조기 지급 명목으로 원청업체에서 받은 돈이 없다. 그는 “우리처럼 2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까지 혜택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했다. B씨 회사는 대기업과 직접 거래를 하지 않고 협력업체에서 추가 일거리를 받는 2차 협력업체다. 대기업에서 조기 지급된 현금이 후순위 업체로 갈 수록 줄어 소규모 회사들은 조기 지급 체감도가 낮다는 뜻이다. B씨는 “대기업은 보는 눈이 많아 명절 조기 지급에 적극적인 것 같은데, 중견·중소 협력업체는 이미지 관리에 큰 관심이 없거나 당장 융통할 돈도 부족해선지 우리한테 조기 지급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회사에 비해 소외감도 느끼고 직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대기업이 조기 지급하는 납품 대금에 대한 현장의 온도차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삼성·SK·현대차·포스코·롯데 등 17개 그룹사는 올해 설 명절 전 납품 대금으로 지난해(7조3000억원)보다 26% 증가한 9조2000억원을 조기 집행했다. 대기업 명절 조기 지급액은 해마다 느는 추세지만 협력 업체들의 실제 체감도는 A·B씨 사례처럼 엇갈린다.
"중견사 인센티브도 고민 필요"
하지만 중견·중소기업까지 조기 지급에 동참 시킬만한 유인책이 마땅찮다는 게 문제다. 대금 조기 지급 등 협력업체와의 상생 노력 사례는 정부의 동반성장지수 평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된다. 동반성장 평가에서 최우수 또는 우수 등급을 받으면 공정거래위원회 직권조사 1~2년 면제, 조달청 공공입찰 가점 부여 등의 혜택을 얻게 된다.그러나 대기업에 주로 납품하는 협력업체들에는 이 같은 인센티브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박주성 아주대 경영대학원 특임교수(회계)는 “대기업에서 조기 지급 받은 돈 전액을 그대로 하위 협력사에 지급하는 중견·중소기업도 상당히 많은데,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며 “대금 조기 지급이 산업 전반에 확산하려면 섬세하게 정책을 고민해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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