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사람들이 한 해를 시작하는 방식 [앤디의 어반스케치 이야기]

오창환 2024. 2. 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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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굿 맞이 제주 여행 2편] 탐라국 입춘굿

[오창환 기자]

 관덕정에서 바라본 탐라국 입춘굿 전경. 오른쪽에 낭쉐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자청비 상이 보인다.
ⓒ 오창환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가 동문 시장 바로 앞이라 걸어서 입춘굿 행사장인 관덕정으로 갔다.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다. 날은 흐리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관덕정 안에서 하늘에 있는 1만 8천 신들을 굿판에 모시는 <초감제>가 진행 중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에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제주도지사를 비롯해서 제주도의 주요 인사들도 참여를 한다. 진행과정이나 굿의 서사도 흥미로왔지만 나는 특히 심방의 사설이 재미있었다. 
초감제를 보는 관객도 상당히 많았다. 나는 스케치를 하기 위해 맨 앞에 자리를 잡았는데, 누군가 가방을 툭 던져놓고 기어 오다시피 해서 내 옆에 앉는다. 슬쩍 보니 꼬부랑 할망이다.

"아이고 힘들게 오시네요."
"그려 그래도 입춘굿은 내가 꼭 봐야제."
"심방님 사설이 재미있네요."
"에이, 그런데 이번에는 여자들만 나와서 틀렸어. 남자가 춤을 춰야 멋있는데."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얼굴 잘생기고, 소리 좋고 춤도 잘 춰서 제주 할망들 사이에 아이돌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시던 김윤수 심방(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2대 예능보유자)께서 2022년 갑자기 별세하시는 바람에 여자 심방들이 초감제를 맡아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왼쪽 사진은 <초감제>이고 오른쪽 사진은 <자청비 놀이>다.
ⓒ 오창환
 
초감제의 마지막은 제주큰굿 보존회에서 <자청비 놀이>를 진행한다. 자청비는 제주 신화에 나오는 농사의 신이다. 올해는 특별히 자청비의 청으로 옥황상제께서 코로나로 힘들었던 제주도민을 위로하기 위해 생명꽃과 번성꽃을 내어 주어주었다고 한다. 앞의 프로그램은 무용적 요소가 강하다면 자청비 놀이는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그리고 제주의 각 단체가 참여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소리꾼들, 농악대들, 그리고 제주 각지의 어린이집들에 나와서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선보인다. 점심때부터는 입춘굿의 전통에 따라 1000원 입춘 국수를 파는데 천 원만 내면 맛있는 국수를 한 그릇 먹을 수 있다.

 
 왼쪽 사진이 나무로 만든 소 낭쉐다. 이중섭의 소가 연상된다. 오른 쪽 사진은 낭쉐몰이가 진행 중인 모습.
ⓒ 오창환
 
오후에는 '낭쉐몰이'를 한다. 낭쉐란 나무 소를 뜻하는데 그 해 난 나무를 이용해서 얼기설기 소 모양을 만든 것이다. 낭쉐는 상당히 예술적으로 보이는데 어찌 보면 이중섭이 즐겨 그린 소와도 닮았다.

옛날 옛적 탐라국 왕이 나무 소로 밭갈이하는 의례를 통해 한해의 풍년과 도민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이 낭쉐몰이의 유래다. 지금은 제주도지사가 그 역할을 맡고 있고 낭쉐몰이가 끝나면 도지사님이 입춘덕담을 한다. 낭쉐몰이를 끝낸 낭쉐는 제주목관아에 전시한다.

그러고 보니 도지사님은 입춘굿 시작부터 계속 주역으로 참여한다. 보통 지자체에서 하는 민속 행사를 보면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의 형식적인 행사라는 느낌이 강한데 반해, 제주도 입춘굿을  보면서 느낀 점은 모든 참여자들이 입춘굿에 참으로 진심이라는 것이다. 제주 입춘굿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 진심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뒤로 입춘 탈굿놀이가 진행되는데, 1900년대 초에 맥이 끊긴 전통 탈놀이를 제주 두루나눔에서 발굴 복원하였다. 탈은 사진 자료를 갖고 복원하였고, 여러 이야기는 각 지방의 탈놀이를 제주의 상황에 맞춰서 재연한 것이다. 탈이나 복장 그리고 내용이 재미있었다. 이 공연이 왜 인기를 끄는 지를 알거 같다.

이후에도 재미있는 민속놀이가 이어지고 체험 부스도 많이 있었다.
 
 왼쪽 사진은 입춘탈굿놀이의 영감각시마당. 오른쪽 사진은 관덕정에서 행사를 그리는 장면.
ⓒ 오창환
  
 입춘탈굿놀이. 영감각시마당.
ⓒ 오창환
 
공연이 모두 끝나고 제주 두루나눔의 뒤풀이에 갔다. 힘든 공연을 한 후에 긴장을 풀고 대화를 하고 음주가무를 하는 그런 자리다. 우리나라 탈춤 운동의 대부이신 채희완 선생님과 청주, 통영, 부산에서도 이 공연을 축하해 주러 왔다. 나도 대부분 처음 만난 분들이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자연스럽다.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어제는 비가 와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비가 안 와서 다행이네요."
"1999년부터 공연을 했으니까 오래되었지요. 오래 하다 보니까 별일 다 있어요. 어떨 때는 눈이 많이 내려서 눈을 치우고 공연한 적도 있어요."

"자청비 놀이를 진행한 서순실 심방을 보면 다른 놀이에도 계속 나와서 거의 하루 종일 공연을 한 같은데 정말 체력이 보통이 아니시네요."
"심방은 정말 대단해요. 옛날에는 어디 멀리서 굿이 있으면 그 전날 밤부터  걸어서  갔다고 해요. 돌아올 때도 그 많은 장비를 이고 지고 걸어와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춤패와 하는 뒤풀이에 재미있다. 사설이 있고 소리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진짜 공연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음력으로 설날이 새해가 되는 날이지만, 절기상으로는 24 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올해는 입춘굿에 참여했으니 제주도 사람들도, 우리나라도 모두 잘되고, 나에게도 복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 입춘굿 맞이 제주 여행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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