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엔 병어 먹을 결심...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 <편집자말>
[이광표 기자]
"냄비 바닥에 도톰하게 자른 감자를 깔고 그 위에 편으로 썬 마늘을 얹어줍니다. 감자와 마늘 위에 고춧가루를 고루고루 뿌려주세요. 멸치·다시마 국물과 맛간장을 섞은 후 매실엑기스를 넣어줍니다. 미리 만들어 둔 조림장을 붓고 감자가 반 정도 익을 때까지 끓여줍니다. 거기에 썰어둔 양파를 얹고 그 위에 손질한 병어를 얹어줍니다. 그 위에 붉은 고추를 얹어줍니다. 그다음 남겨둔 조림장을 모두 부은 후 뚜껑을 열고 조림장을 끼얹어가며 졸여주세요."
이 레시피를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병어 감자조림의 맛과 향이 그대로 전해져온다. 이 조림을 병어의 고장에서 직접 먹어본다면… 신안군 지도(智島)는 자타공인 병어의 고장이다.
국내에서 병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신안, 그중에서도 병어 유통의 중심지가 지도다. 지도읍 삼거리는 핵심 번화가. 삼거리 바로 옆에 신안젓갈타운이 있고 그 맞은편에 지도 전통시장(오일장)이 있다. 젓갈타운을 지나 증도 쪽으로 좀 더 들어가면 송도항과 송도수산물유통센터가 나온다.
회, 조림, 찜, 구이, 국… 팔방미인 여름 병어
▲ 신안군 지도읍 신안갯벌타운에 있는 병어 조형물. 이곳에서 매년 6월 ‘섬 병어축제’가 열린다. |
ⓒ 이광표 |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병어를 넓적한 생선이라고 해서 편어(扁魚)라고 불렀다.
"큰 놈은 2척 정도다. 머리가 작고 목이 움츠려 있으며, 꼬리는 짧고 등은 볼록하고 배는 튀어나왔다.…입은 지극히 작다. 색은 청백이고 맛은 달다. 뼈가 물러서 회, 구이, 국에 좋다. 흑산에도 간혹 있다."
싱싱한 병어를 보면 금방이라도 팔딱 튀어오를 듯 살이 탱탱하다. 그러니 맛도 좋을 수밖에. 병어는 비린내가 거의 없고 은은하게 달다. 비리지 않아 생선을 잘 먹지 않는 사람도 쉽게 정을 붙일 수 있다. 또한 뼈가 연하여 최고의 횟감으로 친다. 살도 연하고 맛이 담백하다. 회, 조림, 구이, 튀김, 국 등등 조리법도 다양해 반찬으로서의 활용도도 높다.
▲ "6월 병어맛을 모르고 어찌 여름을 나겠는가"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
ⓒ 구영식 |
병어철인 6월, 지도의 신안젓갈타운에서 '섬 병어축제'가 열린다. 2023년엔 6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열렸다. 올해에는 아직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6월 중순에 열릴 것 같다.
▲ 2023년 섬 병어축제에서 열렸던 깜짝 경매. 누구든지 즉석 병어 경매에 참가할 수 있다. |
ⓒ 신안군 |
신안 병어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지도읍사무소 수산팀 김성종 주무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신안 병어는 청정 갯벌과 깨끗한 물의 영향을 받아 맛이 좋고 미네랄 등 영양이 풍부합니다. 특히 신안 앞바다의 빠른 물살 덕에 병어의 활동량이 많아지고 그 덕분에 살이 꽉 차고 탄력이 좋지요."
하지만 병어 어획량은 계속 줄고 있다. 그 와중에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 중국 상인들의 대량 매입으로 인해 국내 공급량이 부쩍 줄었다. 그런데도 맛이 좋아 인기가 높으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근 20여 년 사이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생선이 병어라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안 병어의 인기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 신안 앞바다에서 잡은 병어. 청정갯벌과 빠른 물살 덕분에 신안 병어는 살이 튼실하고 맛이 좋으며 영양도 많다. |
ⓒ 신안군 |
병어와 비슷한 생선으로 덕대가 있다. 일부 소매상에서는 병어가 덕대보다 3~5배 비싸게 팔린다. 그런데 막상 생선 판매상인조차도 병어와 덕대를 정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외모가 너무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국립수산과학원이 병어와 덕대의 간단한 구별 방법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병어와 덕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의 길이와 모양. 병어의 뒷지느러미가 더 길고 그 깊이가 커 낫 모양(L자형)을 띠고 있다.
▲ 지도 송도항의 수협위판장에서 판매되는 새우젓. |
ⓒ 신안군 |
신안갯벌타운에서 차로 5~10분 정도 거리에 송도항이 있다. 송도항 입구에 또 다른 병어 조형물이 서 있고 그것을 지나면 수협위판장과 수산물유통센터가 나온다. 송도 수협위판장은 겉보기엔 작아 보이지만 경매가 활발하고 전국 위판액 5위를 자랑할 정도로 물량이 많다. 민어 병어 등이 가장 많지만 새우젓 위판도 적지 않다고 한다.
김성종 주무관은 "강화도 새우젓도 이곳에서 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국 새우젓 위판의 75%를 차지한다"며 "송도항은 국가 어항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수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3월이 되면 경매가 활발해진다. 주로 오전에 경매가 이뤄지는데, 시간을 잘 맞춰 방문하면 생동감 넘치는 경매 현장을 구경할 수 있다.
갯벌과 농게와 거북섬
신안젓갈타운 앞 바닷가는 드넓은 갯벌이다. '세계유산 신안갯벌 습지보호지역'이라는 표석이 눈에 들어온다. 신안군은 이 일대를 갯벌도립공원으로 지정해 보존・관리하고 있다. 신안군의 갯벌도립공원은 모두 144㎢이고 이 가운데 지도의 갯벌은 21㎢이다.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신안 갯벌과 거북섬. 섬 병어축제가 열리는 젓갈타운 바로 앞이다. |
ⓒ 이광표 |
▲ 신안젓갈타운 앞 갯벌에는 농게 조형물이 여럿 세워져 있다. 농게 수컷은 양쪽 집게발의 크기가 다르다. |
ⓒ 이광표 |
거북섬은 섬 모양이 거북을 닮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거북섬 해안엔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한 바퀴를 돌아도 250m에 불과해 산책하기에 부담이 없다. 다리를 지나 거북섬 뒤쪽으로 돌아가면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소나무 틈새로 보이는 갯벌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 지도의 내양리 녹색농촌체험마을에 조성된 유채꽃 단지. 이곳에선 매년 4월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
ⓒ 신안군 |
▲ 조선의 마지막 향교인 지도향교. 1897년 건립되었다. |
ⓒ 신안군 |
지도에서 유채꽃 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매년 4월 말 지도읍 내양리 녹색농촌체험마을에서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신안군은 이 녹색마을에 100만 평 규모로 유채꽃 단지를 조성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유채꽃밭이다. 그런데 이곳은 단순한 꽃밭 아니다. 유채를 녹비(綠肥)로 활용함으로써 일반 비료의 사용량을 줄이고 이를 통해 유기농 쌀을 생산해 친환경 농업을 내실있게 실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지도읍 삼거리에서 신안젓갈타운 반대쪽으로 가면 지도초등학교 옆 한적한 곳에 지도향교가 있다. 지도향교는 1897년 생겼다. 조선 정부는 그 전 해에 지도군을 새로 설치했는데 1군 1향교 원칙에 따라 지도향교를 세운 것이다. 시기적으로 조선시대의 마지막 향교에 해당한다.
광복 직후에 명륜당을 다시 짓고 1960년대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수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고 교육을 수행하는 공교육기관이었지만 지금은 매년 봄・가을 성현들에게 제사(석전제)만 올리고 있다. 지도읍 삼거리 바로 옆에는 지도전통시장이 있다. 평소에는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3일과 8일에 오일장이 열린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김준, 《바다 인문학》, 인물과사상사, 2022 권혁준, 〈가을철 밥상 위 대표 물고기 병어와 덕대〉, 《Map: Marine and people》 2018 Fall, 국립생물자원관, 2018 정약전, 《자산어보》, 정명현 옮김, 서해문집, 2016 조선아, 〈20년간 몸값 가장 많이 오른 생선은 뭘까〉, 《비즈넷 타임스》 146호, 피앤플러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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