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OK·월급 100%’ 차별 없는 남성 육아휴직이 필요해[K인구전략]

이현주 2024. 2. 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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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써보니 “중요한 순간 함께 하는 행복 느껴”
승진 연한 제외 없고 월급·상여금 보장에 부담 덜어
눈치 주는 문화·낮은 소득대체율은 여전히 한계

편집자주 - 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 "남성 의무 육아휴직 한 달은 그 자체가 주는 의미보다 회사의 전반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바꿔놨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6개월간 육아휴직을 내고 가족들과 제주살이를 다녀온 전민석씨(44·남)의 말이다. 롯데e커머스 재무팀장인 전씨는 육아휴직을 쓰고도 근속연수 손해 없이 승진 연한에 맞춰 심사를 받았고, 복귀 후 팀장으로 승진했다.

# "막상 먼저 쓰겠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대표와 상사의 적극적인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2022년 9월 아이가 태어난 후 아내의 육아휴직에 이어 출산휴가 겸 육아휴직을 6개월 쓴 서보영씨(33·남)는 "회사에서 휴직 기간 월급 전체를 보장해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서씨가 다니고 있는 한국페링제약은 남녀 구분 없이 26주간 월급 100%를 보장하는 육아휴직을 제공한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은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당사자의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줘 기업 생산성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일·가정 양립 제도 확립과 함께 남성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김현민 기자 kimhyun81@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지난 5일 발표한 '남성 육아휴직 사용 활성화 및 제도 유연성 확보'에 따르면 남성의 돌봄 참여는 자녀와의 유대감 및 친밀성을 증대시키고, 휴직 종료 이후에도 자녀 돌봄을 지속시키는 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허 조사관은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는 자녀 돌봄을 분담함으로써 여성의 노동시장 조기 복귀를 돕고, 자녀돌봄을 위한 여성 근로자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불가피한 선택(파트타임 근로, 짧은 통근 거리 위주로 직업 선택 한계)을 해소하는 데에도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이 도입된 지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남성 육아휴직 사용은 대기업 등의 일부 근로자만이 쓰는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9년 21.2%에서 2022년 28.9%로 증가하고 있지만, 절반 이상이 300인 이상 대기업에 다니는 남성 근로자였다.

아빠 돌봄 참여, 휴직 후 육아에도 긍정적 영향

육아휴직을 다녀온 남성들은 회사 내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분위기와 함께 월급에 준하는 소득을 받았던 점이 육아휴직 사용의 주요 요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4년 사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김유성씨(37·남)는 출산휴가를 총 3개월 사용했다. 2020년 12월 첫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두 달을, 지난해 6월 둘째 아이와 함께 한 달을 썼다. 아직 한 달을 더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두 아이가 크고 나면 쓸 예정이다. 법적으로 배우자 출산휴가는 10일이지만, 김씨가 몸담고 있는 레고코리아는 부양육자의 경우 8주까지 월급의 100%를 보장한 출산휴가를 쓰도록 보장했다. 김씨는 출산휴가 기간 아내를 위한 맞춤 보양식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는 첫 아이의 배냇짓(태어난 지 3개월 이내 기간만 보이는 웃음)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도 소중한 추억이라고 전했다. 그는 "출산휴가 중이 아니었다면 보지 못했을 순간이었을 것"이라면서 "아이의 성장에서 중요한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뜻깊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강서구에서 진광일 씨가 출근에 앞서 두 자녀를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정성역씨(43·남)는 초등학교를 입학하는 아들의 입학 시기와 맞물려 2주간 유급으로 다녀올 수 있는 ‘자녀 입학 돌봄 휴가’를 썼다. CJ제일제당에 근무하는 정씨는 “매번 아내가 보여주는 동영상으로만 아들이 수영하는 영상을 봤었는데 당시 여행을 통해 아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유급휴가였기에 부담이 없었던 정씨는 “덕분에 저도 재충전하고, 가족들과 선물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잘 쉬고 왔냐" 직장 내 분위기 개선해야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지 못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압축된다. 직장 내 눈치 주는 분위기와 낮은 소득대체율이다. 1년간 육아휴직을 다녀온 한 남성은 최근 간담회에서 "1년간 다녀온 뒤 '잘 쉬고 왔냐'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직장인의 익명 애플리케이션(앱)인 '블라인드'에는 육아에 대한 고민이 깊다면서도 유연근무제나 육아휴직을 사용했을 때 '불이익을 볼까 봐 무섭다'며 회사 분위기 등을 묻는 글이 이어진다.

소득대체율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육아휴직 첫 달 급여는 통상임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국내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평균 통상임금액 대비 첫 달 육아휴직 급여 평균 수급액으로 계산한 육아휴직 소득대체율은 최근 5년간 매년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다. 2020년 48.8%에서, 2021년 47.6%로, 2022년 46.5%로, 지난해 다시 41.8%로 떨어졌다. 기업 규모별로는 지난해 대기업이 38.1%까지 낮아졌다. 중소기업 역시 45.5%에 그쳤다.

남성 육아휴직은 경영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일·가정 친화적인 제도 수립을 통해 직원들의 만족감이 높아지면 일에 능률이 올라 중장기적으로 기업 전반의 생산성이 높아질 수 있어서다. 2019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육아휴직자 경험 실태 조사’에 따르면 남성 응답자의 81%가 ‘생산성 및 업무 집중도가 좋아졌다’고 답했다.

롯데호텔 헤드매니저 김민영씨(34·여)는 육아휴직을 2년 6개월 다녀왔으며 같은 회사에 다니는 남편도 육아휴직을 계획 중이다. 김씨는 “회사의 가장 좋은 점을 뽑자면 이런 (가족 친화적) 제도라고 많이들 얘기한다”면서 “이게 회사에 대한 로열티로도 이어진다. 열심히 일해서 오래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까 일을 더 잘하려 한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는 남성 관리자 직급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쓴다. 네이버 스마트플레이스 서비스 개발1팀 리더인 김병관씨(36·남)는 지난해 갓 태어난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1년 반, 출산휴가와 리프레시 휴가 등을 약 3개월 사용했다. 김씨는 “네이버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남성도 육아휴직을 사용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전했다. 이런 결과로 네이버는 지난해 인력 개발, 경제적 성과, 기업 이미지, 조직 내 성평등 문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고용주’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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