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는 다 사납다? 이 글 읽으면 생각 달라질 걸요
반려견 훈련사로서 가장 큰 깨달음은 훈련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있었습니다. 보호자와 반려견, 가까이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진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기자말>
[최민혁 기자]
"저기 훈련사님... 진돗개도 혹시 교육을 받아주시나요? 개가 좀 사나워요."
한 보호자님이 위축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네? 당연하죠. 어떤 게 고민이실까요?"
내 대답을 들은 보호자님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사정은 이랬다. 교육을 받고 싶어 여러 훈련사분들께 연락을 했는데, 연락 받은 대부분이 자기들은 진돗개 교육은 하지 않는다며 단호히 거절했다는 얘기다. 눈물의 의미가 그제서야 이해됐다.
시간이 지나 이 가정의 교육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보호자가 다른 진돗개 모임에 나를 소개해주면서 이후 다양한 진돗개 가정을 많이 만나게 됐다. 그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다양한 반려견 동반 시설에서 '진돗개는 사나운 개'라며 출입을 거절하거나 제한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거였다.
1980~90년 시대에서 멈춘 듯, 시골에서는 아직도 많은 진돗개들이 목에 녹슨 목줄을 한 채로 잔반처리용 밥을 먹는다. 평생 산책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진돗개는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전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천연기념물 견종이자 한국의 국견으로 꼽히는 데도 말이다.
내 어릴 적 외가는 진돗개의 섬, 진도에 있었다. 자주 드나든 덕에 어릴 적부터 진돗개 매력을 알 수 있었지만, 개들의 비참한 삶도 함께 알게 됐다. '국견'과 '천연기념물' 단어마저도 돈벌이에 동원됐을 정도로 진돗개들은 오랫동안 인간에게 이용당해왔다. 전문가가 된 지금에야 진돗개들 이야기를 제대로 해 보고자 한다.
▲ 공기 같았던 진돗개들 외가 진도에서 만난 진돗개들은 교감도 잘되고, 만나면 늘 편안했다. 이런 개들을 사람들은 돈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
ⓒ 최민혁 |
"이 개는 투견 종자여. 일반 진돗개랑은 차원이 달러."
어릴 때 동네에서 빨간 해병대 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던 아저씨는 마주치는 이들에게 항상 자기 개를 자랑하곤 했다. 무시무시한 쇠사슬 줄을 차고 다니던, 어깨가 떡 벌어진 황구. 그 개는 늘 화가 난 듯 씩씩거리는 모습이었고, 사람들은 무서워서 홍해 갈라지듯 그 개를 피했었다.
진도 섬에 살던 개는 1937년, 일본의 모리 다메조 교수에 의해 진돗개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등재된다. 그저 '진도에 사는 개'였던 진돗개들이 '견종'이 된 순간이었다(옛 <경성일보> 1937.2.25 보도 참조) 이때 보고서엔 '진돗개는 다재다능한 개'라고 쓰여 있었다. 대부분 진돗개는 그저 마을에서 평온하게 살던 개들이었지만, 그중 싸움을 잘하는 개들이 사람들 눈에 띄게 되었다. 그렇게 진돗개 중 일부는 투견이 됐다.
▲ 한국에서도 투견 대회가 열렸던 적이 있었다. 1983년 2월 19일 <동아일보>에 실린 '투견챔피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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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남짓한 시간에 이 개들의 숫자는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번졌다. 세련되고 싸움까지 잘하는 이 개들이 '진돗개'라는 이름으로 팔렸다고 알려져있다. 이미 혼혈인데 다시 또 혼혈이 되면서 구분조차 어렵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투견이 불법화되면서 이 개들이 일반인 가정에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오로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투견용으로 번식되고 사육된 이 개들은, 사소한 것에도 폭발할 수 있을 만큼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별다른 조치도 없이 불안한 성정을 지닌 채 일반 가정과 보호자들에 그대로 떠맡겨졌다.
하필 이 즈음 개장수에게 잡혀간 진돗개가 수백km를 걸어 옛 주인을 찾아왔다는 백구 이야기가 전설처럼 회자됐고, 감동한 많은 이들이 진돗개를 찾기 시작했다. 88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진행된 '진돗개 퍼레이드'도 여기 기름을 부었다.
이에 진돗개 농장 운영인들은 있는 힘을 다해 진돗개를 번식시켜 분양하기 시작한다. 섬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개들은 묶이고 갇힌 채 번식 기계로 전락했다. 진도 동네에선 진돗개를 분양해 건물을 올렸다는 얘기도 돌았다고 하니, 번식된 개체 수는 정말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인간은 돈을 얻었을지 몰라도 진돗개들은 자유를 잃게 된 슬픈 사건이었다.
▲ 겨울 어느날 진돗개 진돗개들은 내게 많은 추억을 줬다. 그들에 대한 보답은 그들의 이야기를 알리는것이 아닐까. |
ⓒ 최민혁 |
한 번은 지방으로 진돗개 교육을 간 적이 있다. 지나가는 어르신이 "뭐 훈련하는 거냐" 묻기에 대답했더니 "교육은 외국 애완견 종자에나 하는 거지, 진돗개 같은 개를 뭣하러 혀?"하며 볼멘소리를 늘어놓으셨다. 진돗개는 교육이 소용 없다는 편견이 작동한 것이다.
실제 만나보면, 아파트에서 사는 진돗개 보호자들은 "그런 개를 집 안에서 키워요?"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자주 듣는단다. 여기엔 진돗개는 교육을 해도 바뀔 수 없는 개, 늘상 사나운 개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깔려있다. 하지만 막상 진돗개들 교육을 해보면, 교육 내용을 잘 이해할 뿐 아니라 잘 따라오기까지 한다.
성인이 된 후로 계속 반려견 훈련사로 일하다 보니 문제행동을 하는 진돗개들을 자주 만나곤 한다. 일부 훈련사들이 '진돗개는 훈련이 어려울 것', '사나울 것'이라며 상담조차 거부하는 이유 또한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직업 특성상 문제 행동이 있는 개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해당 견종의 특정 이미지가 쉽게 왜곡될 수 있다.
나는 '진돗개가 무조건 좋다'고 옹호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진돗개는 무조건 사나우며,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낙인 찍을 일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들도 교육받으면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 날 때부터 외향성인 친구들도 많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본 진돗개들은 사회성 좋고 교감이 잘 되는 개가 많았다.
더구나 진돗개는 한국적 정서를 잘 아는, 오랜 시간 대한민국 땅에서 같이 살아온 종이다. 한국 땅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쟁, 가난과 아픔의 역사를 한국인과 같이해왔다는 뜻이다. 그러니 적어도 이들에 덧씌워진 편견과 색안경은 이제 벗겨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글로 진돗개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조금은 줄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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