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기 싫어, 엄마 60만원만"...안티에이징 빠진 초딩 소녀들 [세계 한잔]

박소영 2024. 2. 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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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사전 > 세계 한잔

[세계 한잔]은 우리 삶과 맞닿은 세계 곳곳의 뉴스를 에스프레소 한잔처럼, 진하게 우려내 한잔에 담는 중앙일보 국제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미국 유명 방송인이자 사업가인 킴 카다시안의 큰 딸 노스 웨스트가 지난 2022년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스킨케어를 하고 있는 모습을 올렸다. 사진 kimandnorth 틱톡 캡처

영국의 8세 소녀 세이디는 요즘 피부관리에 열중하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 틱톡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기초화장품을 여러 개 사서 매일 얼굴에 바르고 있다. 개당 최고 60파운드(약 10만원)에 달하는 화장품인데, 엄마를 졸라 구입했다.

엄마 루시는 지난달 말 BBC방송에 “학교 친구들 대부분이 이 스킨케어 화장품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사주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껴 어쩔 수 없이 사줬다”고 밝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너무 가렵고 빨개져 화장품 사용을 중단했다. 기미 완화와 주름 제거에 도움되는 알파하이드록시산(AHA), 베타하이드록시산(BHA), 레티놀 등이 함유된 이 화장품은 피부 노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30대 이상을 위한 제품이다. 나이 어린 세이디의 피부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소아피부과 전문의 테스 맥퍼슨은 BBC에 “최근 어린이 사이에 유행하는 스킨케어 화장품 상당수가 나이든 성인에게 적합한 노화 방지 제품으로, 아이들이 쓰면 습진·알레르기 등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피부과 전문의 브룩 제피는 “11세 여자아이가 레티놀 성분의 화장품을 써 눈 주위에 발진이 생겼는데, 계속 사용하다가 너무 심해져 치료에 한 달이 걸렸다”고 전했다.


노화 예방 화장품에 빠진 8~12세

지난 2021년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 쇼핑몰에 있는 세포라 매장 모습. 세포라는 프랑스의 화장품 유통사로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이 운영하고 있는 세계 1위 뷰티 편집숍이다. AP=연합뉴스

최근 몇달 새 영국·미국·캐나다 등에 8~12세의 ‘세포라 키즈(Sephora Kids)’ 사이에서 노화방지 화장품을 사용하는 게 유행이다. 세포라 키즈는 세계 최대 뷰티숍인 세포라에서 화장품 쇼핑을 즐기는 10대 소녀를 뜻하는 소셜미디어(SNS) 용어다. 틱톡에서 ‘세포라키즈’ 해시태그(#) 누적 조회수가 3억회를 훌쩍 넘었다고 캐나다 CBC방송이 전했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주로 립스틱·아이섀도 등 색조 화장품을 즐겨 찾던 세포라 키즈의 관심이 최근 노화 방지용 기초 화장품으로 옮겨갔다. 미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의 지난해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10대 9200명을 조사한 결과, 스킨케어 제품 관련 지출이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USA투데이는 “아이들이 스킨케어에 이처럼 집착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세포라에서 일하는 한 점원은 틱톡에 “열 살 아이가 성인용 스킨케어 화장품 900달러(약 120만원)어치를 사려다 엄마에게 혼나 500달러(약 67만원)어치만 샀다”고 했다.

미국 유명 방송인 킴 카다시안(왼쪽)과 그의 큰 딸 노스 웨스트가 지난해 샤넬백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_north__west 인스타그램 캡처

이를 두고 CBC는 2조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유명 방송인 킴 카다시안의 딸 노스 웨스트가 지난 2022년 틱톡에 성인들이 주로 쓰는 스킨·마스크팩 등 스킨케어 제품을 사용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당시 웨스트는 9세였다. 웨스트는 엄마로부터 미니 람보르기니(수퍼카), 샤넬·루이뷔통(패션 명품) 등을 선물 받았고, 어린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다.

이후 아이들이 성인용 스킨케어 화장품을 몇 개씩 사용하는 인플루언서 영상을 즐겨 찾아보게 됐다. 인플루언서들의 주름 없는 피부를 보면서 이런 화장품을 써야 피부가 좋아진다고 인식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영국의 피부과 전문의 안잘리 마토는 데일리메일에 "요즘 10대들은 조기 노화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피부과 전문의 엠마 웨지워스도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피부를 인플루언서와 과도하게 비교하면서 정신 건강까지 해치고 있다"고 걱정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에게 필요한 피부관리용품은 순한 세면용품, 가벼운 보습제, 자외선 차단제뿐이라고 지적했다.


"노화 두려워" 20대는 보톡스 열풍

지난 2009년 6월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병원에서 한 여성이 보톡스를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안티에이징(노화 방지)’ 열풍은 20대에서도 뜨겁다. CNN은 지난달 20대 사이에서 얼굴 주름을 펴주는 보톡스 주사를 맞는 게 유행이라고 전했다. 뉴욕포스트는 “틱톡에 ‘#안티에이징’ 영상의 총 조회수가 79억회에 달하고, ‘#보톡스’는 102억회, ‘#주름’은 24억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면서 “20대 여성들이 노화가 싫어 30대가 되는 걸 두려워하는 영상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성형외과학회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보톡스 등 주름 개선 주사를 맞은 20~29세는 삼년전에 비해 71% 증가했다. 미국 성형외과협회 회장 스티븐 윌리엄스 박사는 “예방 차원으로 주름없는 얼굴 부위에 맞는 ‘베이비 보톡스’ 시술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베이비 보톡스란 특정 근육이 아닌 진피층에 소량의 보톡스를 침투시켜 잔주름의 형성을 방지하는 시술이다. 1회당 최대 1000달러(약 133만원)로 비싸지만 20대 사이에서 노화 예방 시술로 인기가 높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노화 예방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경고했다. 윌리엄스 박사는 “보톡스 주사는 일반적으로 안전하지만, 장기간 주사를 맞으면 근육의 크기가 줄어들고 쇠약해지는 위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피부과 전문의 셰린 이드리스는 “수십 년 동안 3~4개월마다 보톡스를 맞으면 젊은 나이에 얼굴 근육이 점점 얇아지고 느슨해질 수 있다”면서 “노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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