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새해'가 멀게만 느껴지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 설입니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 정을 나누어도 모자랄 시간이지만, 올해는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경기는 어렵고 들려오는 뉴스도 팍팍한 소식 뿐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아 있을 필요는 없겠죠? 안팎으로 지친 당신에게 단비가 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조영준 기자]
새해가 된 지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첫날의 떠오르는 해를 보며 품었던 계획과 목표, 희망 같은 단어들이 여전히 마음속에, 우리 곁에 견고히 서 있는지 모르겠다. 끊임없이 들려오는 분쟁과 갈등의 소식과 기후위기나 경제 문제와 같은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에 파묻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 가져볼 뿐이다.
전통적으로 큰 명절 중 하나인 설날과 그 연휴가 신정으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은 그래서 조금 위안이 된다. 개개인의 작은 희망과 소망이라도 다시 한번 다잡고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쩐지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준비했다. 꿈과 관계, 그리고 내일의 작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 세 편이다. 아직 아무런 계획과 목표가 없었던 사람도, 세우기는 했으나 벌써 그 심지를 잃어버리고 만 사람도 모두 함께 올해를 채워나갈 다짐을 다시 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까지 놓치고 있었다면, 아래의 작품들과 함께 희망찬 설 연휴를 보내길 바란다.
<코다>
감독 : 션 헤이더
출연 : 에밀리아 존스, 트로이 코처, 에우헤니오 데르베스
▲ 영화 <코다>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지난 2022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눈길을 끈 장면이 하나 있다. 남우조연상의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윤여정 배우의 모습이다. 그녀는 수상 소감을 발표하기 위해 청중 앞에 선 영화 <코다>의 배우 트로이 코처의 트로피를 대신 들고 그의 곁을 지켰다. 극 중 농인 아버지 역을 맡았던 수상자 트로이가 실제 청각장애자로 수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같은 해 오스카 작품상까지 수상했다.
영화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과 기회로 가득한 세상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주인공 루비(에밀리아 존스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뛰어난 재능이지만 자신의 꿈을 향하면 고립되고 마는 가족을 바로 곁에 두고 망설이게 된다. 그 경계에서 성장해 가는 소녀의 모습은 마음을 울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 작품의 타이틀인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말이다. 극 중 루비 역을 맡은 배우 에밀리아 존스를 제외한 가족 배역의 연기자 모두는 실제 농인이다. 이러한 선택에 대해 션 헤이더 감독은 자신이 농인 문화의 외부인이기에 그것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 농인 문화에 깊게 몰입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걸음을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그런 영화를 사려 깊은 마음으로 대하고자 했던 감독의 태도까지. 이 영화를 만나고 나면 우리 자신의 삶을 대하는 모습과 함께 내일을 다시 한번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
감독 : 카나자와 토모키
출연 : 반카 이치로, 하라다 코노스케, 쿠사나기 츠요시
▲ 영화 <1986년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스틸컷 |
ⓒ 와이드 릴리즈(주) |
영화와 드라마, 매년 많은 작품과 콘텐츠를 접하게 되지만 해가 지나도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새로운 이야기들이 그 자리 위에 다시 덧씌워지고 머물기 때문이다. 영화 < 1986 그 여름, 그리고 고등어통조림 >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 작은 이야기 하나가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이 영화는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한 여름날의 추억이 남겨져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히사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인 1986년을 배경으로 두 소년이 함께 떠나는 모험과 여정의 순간들이다. 로드 무비 형식을 통해 이들의 우정과 성장을 담아내고 있는 이 작품에서 여름의 절정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이나 화려한 시절의 거센 기운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천진난만하면서도 미숙한 시절의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우정과 오해, 화해와 나아감의 지점에 놓이게 되는, 여름의 초입 혹은 끝자락의 모습을 닮은 순수하고도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그동안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지나온 시간 속에 이런 기억 하나 정도 안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삶은 충분히 행복하고 또 충만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귀하다. 극 중 두 소년의 모습처럼 오래 만날 수 없어도, 또 이제 더 이상 마주할 수 없어도 그렇게 연결된 채로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며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잊혀진 순간이나 지금 모습을 감춘 이야기도 때때로 힘이 되고 희망이 된다.
< 3일의 휴가 >
감독 : 육상효
출연 : 김해숙, 신민아
▲ 영화 <3일의 휴가> 스틸컷 |
ⓒ (주)쇼박스 |
죽은 지 3년째 되던 날, 복자(김해숙 분)는 3일의 휴가를 받아 이승으로 내려온다. 미국 유명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딸 진주(신민아 분)를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문제는 딸이 머물고 있는 미국 땅에 도착할 것이라 생각했던 복자가 자신이 죽기 전에 머물던 김천 고향집으로 보내지게 되면서 시작된다. 진주는 자신이 떠난 고향집에서 자신이 생전에 만들어줬던 음식들로 사주에도 없을 백반집 장사를 하고 있다. 엄마는 그런 딸의 모습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영화 < 3일의 휴가 >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보편적인 사랑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이 활용하는 것은 단일한 방향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존재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딸과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접촉은 할 수 없다는 설정이다. 각자의 외로움을 서로 바라보도록 설정한 이 이야기 위에서 가족이라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우리가 가진 지금의 거리가 무책임과 외면이 아니라 나름의 노력과 인내로 인한 것임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무해하며 온기로만 가득 찬 3일의 이야기다. 명절만 되면 무거워지는 가족이라는 이름과 각자의 사연이 녹진하게 눌어붙은 관계에 대한 해답이 이 영화 속에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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