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간 딸기고추장, 韓국빈만찬 쓰인 씨간장…K전통장 선봉 누구?[신기방기 사업모델]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단어가 키토, 즉 ‘무탄무당(탄수화물, 당 제로)’ 섭취 방식이다. 지난 1월 말 대학로 소재 맛집 ‘순대실록’에서 세계 최초로 키토 순대를 개발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가봤다. 육경희 희스토리푸드(순대실록) 대표는 “이경재 한의사의 권유로 메뉴 개발에 돌입했다”며 “찹쌀 대신 닭고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찰기는 잡았는데 순대 특유의 맛을 구현하려니 결국 좋은 장을 쓸 수밖에 없어 협업한 곳이 있다”고 운을 뗐다. 바로 대한민국 전통식품명인 제35호(진장 제조 가공)로 지정된 기순도(75) 명인이다. 전남 담양의 창평 고씨(제주 고씨 일파) 양진재(養眞齋) 문중 10대 종부로 전통장 제조에 일생을 바친 이다. 지난해 전통장 문화 전수를 위해 기순도 발효학교(발효 마스터 과정)를 열자 육 대표가 수업을 들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육 대표는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기순도’ 브랜드와 협업했다는 점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충분한 데다, 건강에도 좋은 K푸드 신제품이라 일본 진출 등 해외 시장에 충분히 도전장을 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희스토리푸드는 이미 일본 큐텐재팬에 입점, 일본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키토 순대를 현지에서 제조, 제품군을 좀 더 넓히겠다는 복안이다.
‘기순도’ 브랜드가 해외에서 얼마나 유명하기에 국내 유명 외식 업체가 ‘업혀 가기(?)’ 전략을 쓸까.
기순도 명인의 장(醬)은 한국은 물론 미국 대통령 입맛도 사로잡았다. 2017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기 명인이 계승하고 있는 370년 된 씨간장으로 만든 양념갈비가 청와대 만찬에 쓰여 화제가 됐다. 백악관에도 입성했다. 미국 워싱턴 소재 미쉐린 원스타 레스토랑 ‘레버리(reverie)’의 조니 스페로 셰프가 기순도 딸기고추장을 활용, 백악관 만찬 때 선보이면서 유명해졌다.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니 K푸드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이를 취급하는 현지 유통 채널도 다양해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건 한국 식품 판매점에서 다루는 제품들은 대량 생산되는 공장형 장류였다. 중국산 저가 제품도 많았다. 반면 전통 방식을 통해 제조된 ‘한식간장’ ‘한식된장’으로 분류되는 장들은 외국인이 한국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경로인 한국 식품점들에서조차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2018년부터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 한국의 장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했다. 정부 행사에 초대를 받아 BTS 공연 행사장에 VIP실을 대관해 프랑스 식품계의 유력 인사, 인지도 있는 프랑스 셰프를 초청, 한국의 장과 김치 등의 식자재를 이용해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BTS 공연을 보며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했던 이벤트에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여세를 몰아 세느강의 바토뮤슈 선상에서의 홍보, SIAL 박람회 참가 등을 진행했고, 이런 노력이 서서히 유럽 미식가, 식품업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9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봉마르쉐 백화점 입점에 성공했다. 이후 갤러리 라파예트, 베아슈베 백화점 등 현지 대형 유통 채널을 뚫게 되면서 유럽은 물론 미국 등 세계 곳곳서 입점 요청이 들어왔다.
Q. 미국에선 특히 딸기고추장이 인기라는데.
전통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사례다. 물론 전통장 개발하며 지금도 다양한 장을 만들어보고 있다. 그런데 해외에선 어떤 장을 선호하는지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러다 기순도 명인 명성을 듣고 해외에서 많은 외국인 셰프, 업계 관계자가 방문하면서 조금씩 그들의 니즈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도 해외를 나가 직접 현지인들과 접촉해보니 맛, 향, 조리법 등에 따라 각 나라별 선호도가 약간씩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딸기고추장은 빵에 발라 먹기에도 좋고 다양한 샐러드와도 궁합이 잘 맞아 미국 셰프들이 선호했다. 한식 세계화라는 건 결국 이런 변주를 통해 고도화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호불호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장을 세계인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한다. K푸드가 각광받으며 해외 박람회를 참가하다 보면 스스럼 없이 시식하는 외국인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K푸드 저변 확대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벤트가 있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소재 캐롤(Carroll)초에서 한식 행사에 초대받아 갔을 때다. 한 아이가 미리 기순도 명인을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발표했는데 상당히 준비를 많이 했고 한식의 이해도도 높아 놀랐다. 아이들에게 간장으로 만든 김밥과 김부각 그리고, 딸기고추장, 전통 음료인 식혜와 식혜를 고아 만든 쌀조청 떡에 찍어 먹게 했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한식을 미국 일상식 속 일부로 녹여들게만 한다면 산업 측면에서도 큰 성과가 나올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Q. 해외 진출 전략은 어떻게 짰나.
무엇보다 체험이 중요하기에 가급적 많은 해외 유명 셰프와 소통하고 있다. 이미 해외 유명 셰프가 먼저 공부하고자 한국을 찾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기순도 명인의 장고를 방문해 ‘콩, 죽염, 물’, 이 세 가지의 단순한 재료로 어떻게 복합적인 맛을 낼 수 있는지 놀라워 한다. 대부분 인플루언서기도 한 이들은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려 다른 외국인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고 새로운 메뉴에 대한 기대감을 준다. 육식을 자주 하는 외국인들에게 비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이미 완성한 우리 한식에 기본 소소가 장인 것처럼, 외국인도 비건 위주의 음식을 만드는 데 발효장을 쓰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래서 이들 셰프에게 숙성된 후 장을 보내고 그 장으로 각국 셰프들만의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 레시피를 다시 받고 있다. 이미 11개 나라에서 다녀가 11개 나라의 음식을 한국의 장으로 조리한 레시피가 지금 이 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이 우리 장을 소개하는 한식의 첨병 역할을 해주고 있다. 덕분에 세계 미식의 흐름이 한국으로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오랜 숙성의 시간과 자연 발효’가 새로운 미식의 기준이 돼가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지난해 10월부터 기순도 발효학교를 개설했다. 8주간 매주 토요일 16강과 발효 밥상 체험을 통해 여러 가지 전통장을 담드는 방법과 장을 활용한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SNS를 통해 모집하는데 재밌는 건 미국과 호주에서 특히 수강 문의가 많다는 점이다. 발효학교가 세계 미식의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장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계획은.
기순도 명인은 “한식에 장(醬·JANG)을 빼고는 한식이라 할 수 없다” 고 강조한다. 세계인이 한식과 장을 커피와 빵처럼 즐기는 날이 오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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