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년 김일혁 "K팝 보러 탈북하기도…北정권 붕괴 시간 문제" [인터뷰]
"남한 탈북민 대부분 북한 가족들과 연락"
'탈북청년' 김일혁(29)씨는 16살 때인 2011년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넘어 탈북했다. 아버지가 몰래 핸드폰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4년간 노동 단련대에 끌려갔다 온 지 1년여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아버지가 잡혀가자 북한 보위부가 몰려와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은 물론, 자전거까지 다 뺏어갔다. 굶진 않았지만 노란 '깡내밥(강냉이밥)'을 주식으로 먹었다. 물에 불리지 않으면, 모래알을 씹는 느낌이라 소화도 안 됐다.
김씨는 어린 시절 북한에 살 때만 해도 정권을 철통같이 믿었다고 한다. 북한 인공위성인 광명성 발사 성공 소식을 뉴스로 접했을 때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CD를 통해 외부 문화를 접하고, 실제 한국으로 넘어와 실상을 확인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북한 청년들이 외부 문화를 접할수록 더 탈북을 꿈꾸게 될 것이라며,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꼬집었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은 김씨는 중국의 강제 북송 문제에 진심이다. 북송된 탈북민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4시 서울 노원구의 한 카페에서 김씨를 만났다. 한국 정착 13년차가 됐지만, 그의 모든 관심사는 여전히 북한에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8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공식 회의에서 "북한 주민에게는 인권도 없다"고 고발해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던 인물이다. 최근까지도 해외 언론에 북한 관련 기고문을 보내며 강제 북송, 북한 인권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로 입국한 탈북민은 196명인데, 이 중 절반 정도가 20·30대다. 청년 탈북민이 늘어나는 이유가 뭘까.
▲북한 청년들이 외부 정보를 많이 접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청년들이 외부 정보를 접하면서 '북한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닫고, 북한 밖에서 더 좋은 삶을 살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북한에 살아봤지만, 외부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면 쉽게 나오지 못한다.
-북한에 있을 때 외부 정보를 어떻게 접하게 됐나.
▲제가 살던 곳은 함경북도 샛별군으로, 중국 접경 지역이었다. 중국과 30분 거리다. 그렇다 보니 중국과 몰래 무역하던 사람이 많았다. 외부 정보가 쉽게 들어온다. 함경도가 탈북민이 제일 많은데 그 영향도 있다. 옛날에는 비디오 테이프로 드라마를 봤고, CD로도 봤다. 지금은 USB로 본다고 한다. USB는 작으니까 들여오기가 더 쉽다. 북한도 점점 외부 정보를 접하기 수월해지는 것 같다.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도 봤나.
▲맨 처음 CD로 봤던 한국 드라마는 '굳세어라 금순아(2005)'였다. 재밌게 봤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진짜일까 하고 의심하기도 했다. 음악도 많이 들었다. 바위섬이나 남행열차, 사랑의 미로 등이 기억난다. 그땐 북한 노래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보니 한국 음악이더라.
-지금은 더 많이 볼 것 같다.
▲훨씬 더 많이 퍼졌을 것이다. 제가 탈북할 때가 2011년 7월이었다. 시내에 나가면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500만명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단다. 최근 핸드폰은 영상통화도 된다. 지금 한국에 탈북민이 3만4000명 정도 와 있는데, 대부분이 북한 가족들과 연락한다. 그러면서 외부의 정보도 많이 유입된다.
-'엘리트' 탈북민도 많이 늘었다.
▲엘리트라고 하면 평양에 살거나, 지방에 살더라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도 졸업한 사람이다. 그런 집안 부모 중에는 자식을 북한에서 키우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보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자식이 실종되거나 사망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해서 한국 등 외국으로 보내기도 한다. 북한은 그게 가능하다.
-탈북 동기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식량 부족'보다 '북한 체제가 싫어서'란 답변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북한 체제가 3대 세습으로 오면서 '백두혈통'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특히 외부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은 이게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고 김정은 정권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아예 외부의 문화를 접하지 못한 사람이면 체제에 대한 반감을 가지기 어려운데, 한 번이라도 접하게 되면 그 체제에 대한 의문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더 접하도록 해 주민 스스로 정권에 반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방법밖에 없다. 당장 북한과 전쟁을 할 수도 없고, 제재해도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지원한다. 북한에 외부 정보를 계속 넣으면 체제가 흔들리고 나중에는 무너질 것이다. 지금은 북한 주민들이 훨씬 더 많이 한국 드라마나 K팝, 연예인을 접한다. 여성 지인 중에는 실제 K팝을 보고 싶어서 탈북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문화가 굉장히 무섭다.
-그래서 북한이 반동사상 문화 배격법을 만들고 강하게 처벌, 봉쇄하는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봉쇄한다고 다 막아지진 않는다. 아무리 집을 꽁꽁 싸매도 어딘가에선 산소가 들어온다. 북한이 처벌을 강하게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외부 문화를 접하는 사람은 많다. 이를 막기 위해서 강한 처벌을 동반하는 공포 정치를 하고 있고, 그런 분위기를 또 한 편으로는 부드럽게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아내, 여동생, 딸까지 동반하는 것 같다.
-최근 우리 정부는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열린 중국의 '보편적 인권 정례검토'(UPR)에서 처음으로 탈북민 보호와 국제 규정 준수를 중국에 권고했다.
▲굉장히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효과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다. 올해는 11월에 북한에 대한 UPR이 있고, 유엔 북한인권조사 위원회(COI) 보고서 발간 10주년이기도 하다. 북한 인권에 있어서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 저도 북한연구소 소속 국제활동팀인 VNKY(Voices of North Korea Youths: 북한 젊은이들의 목소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외국 언론에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된 기고문을 기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이라크, EU, NK News 등 해외 언론사에 게재가 됐다.
-탈북하려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강제 북송이 가장 큰 두려움일 것 같다.
▲그렇다. 북한에서 두만강을 넘을 때부터 목숨을 건다. 뒤에서 총을 쏘면 죽어야 한다. 겨우 넘어도 중국을 횡단해 라오스를 지나 태국까지 가야 한다. 중국을 빠져나갈 때 버스나 택시를 타기도 하고 산을 넘기도 하는데, 우리는 5일 동안 중국 대륙을 횡단했다. 중간중간 중국 공안들이 검문을 많이 한다. 거기서 잡히면 북송이 된다. 라오스도 공산주의 국가라서 굉장히 위험하다.
대부분 중국에서 걸린다. 중국에 탈북민이 5만~10만명 정도 있다고 한다. 안 잡힌 사람들은 몰래 살고 있다. 신분증을 사거나, 지역을 주기적으로 옮긴다. 하루하루가 불안한 사람들이다. 중국에서 탈북민을 신고하면 보상금을 주기 때문에 신고하는 사람도 많다. 한국까지 오는 탈북민은 굉장히 소수다. 중국 공안에 잡혀서 북송되면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총살당하기도 하고 정치범수용소에 가거나 교화소, 노동단련대에 보내지기도 한다. 제 아버지도 핸드폰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4년 노동단련형을 받고 노동단련대에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서 돌아왔다.
-중국의 강제 북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전 세계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한다. 중국은 세계 1위 강대국이 되길 원한다. 그러려면 국제적 이미지가 좋아야 한다. 중국이 북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나라로 낙인찍혀서 비난받을 정도가 되면, 중국도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지 않는 게 자기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최근 북한의 군사도발이 강해지고 있는데 목적이 뭐라고 보나.
▲북한 사람들은 미사일을 쏘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도 농촌 동원을 갔다가 힘들게 돌아오는데 뉴스에서 광명성 발사가 성공했다고 해 눈물을 흘리면서 봤던 기억이 있다. 북한이 군사도발을 하는 이유는 외부의 관심을 끌고, 내부의 단결을 꾀하기 위해서다. 군사도발을 함으로써 북한 내 주민들에게 국가의 거짓 위상을 과시할 수도 있다.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발을 할 것이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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