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늦으리...설 연휴에 이 전시 놓치지 마라

이은주 2024. 2. 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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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에서 열리는 '구본창의 항해'. 3월 10일까지 볼 수 있다.[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올해 설 연휴에도 문 여는 미술관이 많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설 당일인 10일 서울관만 휴관하고 과천관, 덕수궁관, 그리고 청주관은 9~12일 연휴 내내 정상 개관한다. 서울시립미술관도 서소문관, 남서울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등이 연휴 4일 간 관람객을 맞는다. 대구미술관은 설 당일만 제외하고 남은 연휴 기간 문을 활짝 연다.

특히 지난해 개막한 전시 중 폐막을 앞둔 경우가 많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김구림' 전과 덕수궁관 '장욱진 회고전'은 12일 막 내린다. 과천관 '이신자, 실로 그리다'는 오는 18일, 서울관의 '백년 여행기'는 25일까지다. 이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의 '구본창의 항해'는 3월 10일까지, 대구미술관의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는 3월 17일까지 볼 수 있다. 이번 연휴야말로 굵직한 전시를 챙겨볼 절호의 기회다.


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의 항해'


구본창, 자화상,1972, 젤라틴 실버 프린트, 11x9cm. 친구에게 부탁해 남해 상주 해안가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는 자신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 무제 03, 1989,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 35x35cm. 작가가 수집한 사물을 배치하고 이를 촬영한 필름을 빛에 노출한 뒤 인화해 바랜 듯한 종이 색감을 냈다.[사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덕수궁에서 가까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선 '백자', '비누' 등 사진 연작으로 유명한 구본창(70)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의 첫 공립 미술관 전시이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국내 작가 개인전 중 최대 규모다.

전시는 1968년 제작한 '자화상'부터 최근 '익명자'에 이르기까지 작품 500여 점, 그가 수집해온 자료 600여 점을 망라해 보여준다. 구본창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대기업 회사원으로 일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유학에서 돌아와 몰두해온 실험적인 사진부터 1996년 아버지 죽음을 계기로 자연의 순환을 담은 서정적인 작품으로 작품 세계가 변화한 과정을 볼 수 있다.

구본창, 시간의 그림 05, 1998, 젤라틴 실버 프린트, 73x101.5 ㎝.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구본창, 콘크리트 광화문 01, 2010,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 100x75cm. [사진 서울시립미술관]

특히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큰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떠났던 교토 여행은 그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에 지어진 절 도지(東寺)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대웅전 외벽을 보고 찍은 '시간의 그림' 시리즈가 그곳에서 시작됐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달항아리와 지화(紙花·종이꽃), 금관과 금동관모 등을 소재로 한 작품들 역시 아름다움과 시간의 흔적에 대한 그의 남다른 관심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최초로 선보이는 '콘크리트 광화문'(2010) 연작도 눈 여겨 볼 만하다.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등 아픈 역사로 점철된 역사를 소리 없이 증언하는 묵직한 작품이다. 3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김구림' 전


김구림이 1969년에 직제작, 감독, 편집, 디자인을 맡은 실험영화'1/24초의 의미'.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구림, 빗자리, 오브제에 채색, 1973, 130x90cm. 작가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김구림' 전은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인 김구림(87) 작가의 70년에 걸친 작업을 조명한다. 1950년대부터 다양한 매체, 장르, 주제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길을 걸어온 그의 행보를 확인할 기회다.

전시에선 1960년대 초반 비닐, 불, 천 등을 이용해 제작한 추상 회화부터, 1960년대 말 선보인 일렉트릭 아트, 한국 실험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1/24초의 의미' 등을 폭넓게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작가가 1969년에 직접 제작, 감독, 편집, 디자인을 맡은 '1/24초의 의미'는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삼일고가도로, 세운상가, 고층빌딩, 옥외 광고판 등 당시 빠르게 변화하던 서울 풍경을 보여주며 도시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담아냈다. 이밖에 빗자루, 걸레, 양동이, 전구 등 기성품을 활용해 실제(오브제)와 이미지의 간극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이브 클라인, 쿠사마 야요이 등과 현대미술을 이끄는 세계적인 예술가 20인 명단에 김구림의 이름을 올려 놓은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정연두의 '백년 여행기'


멕시코 한인 이주기를 참신한 기법으로 담아낸 정연두의 '백년 여행기' 중 영상 작품. [뉴시스].
12m 높이의 설치 작품 '날의 벽'.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5일까지 볼 수 있다.[뉴시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갔다면 정연두(54) 작가의 '백년 여행기'도 반드시 봐야 한다. 정연두는 퍼포먼스와 연출 중심의 사진과 영상, 설치 작업으로 국내외 미술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작가다. 작가는 2014년부터 다큐멘터리적 서사와 그에 내재한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번 전시는 멕시코에 사는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관람객들이 누워서 볼 수 있는 대형 영상 설치작품 '백년 여행기'(2023)다. 멕시코 이민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국의 판소리, 일본 전통음악 기다유(분라쿠), 그리고 멕시코의 마리아치 공연을 담은 3채널 영상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1905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에 도착했던 한인들의 이야기를 공연·소리·영상·이미지 등으로 전환해 작품에 몰입하게 하는 특유의 접근법이 신선하다.

두 대의 LED 대형 패널을 통해 한인 후손들의 부모와 자식 세대 간의 관계와 간극을 보여준 '세대 초상'(2023), 12m 높이의 벽면 설치 '날의 벽'(2023)도 눈길을 끈다.


대구미술관, 렘브란트 동판화 120점


'시골집 세 채가 있는 길가 풍경',1650.에칭, 드라이포인트,16.2x20.3㎝ [사진 대구미술관]
렘브란트, 사스키아와 함께 한 자화상. 1636. 가장 유명한 초기 자화상이다.[사진 대구미술관]
대구미술관에선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전시(3월 17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1606~1669)는 유화로 유명하지만, 동판화에서도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했다.

네덜란드의 렘브란트순회재단과 벨기에 판화전문 미술관 뮤지엄 드리드(Museum de Reede)와 대구미술관이 함께 연 이번 전시에선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이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일 정도로 풍경과 인물의 특징을 절묘하게 묘사한 작품들이 하나하나 탄성을 자아낸다.

전시엔 렘브란트의 다양한 초기 판화 자화상과 더불어 아내 사스키아를 모델로 한 작품들, 풍경 판화 중 수작으로 꼽히는 '시골집 3채가 있는 길가 풍경'(1650) 등도 함께 나왔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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