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물어간 한우세트, 택배기사 물어줬다…"비현실적 약관 개정해야" [디케의 눈물 177]
법조계 "배송품, 표준약관 따라 수령자에게 직접 전달해야…대면 없었다면 책임"
"직접 전달 어렵다면 일일이 수령자 연락해 배송장소 특정해야…현실적이지 않아"
"명절 택배수요 폭발적 증가하고 비대면 배송 일상화 현실…기사만 책임? 가혹, 사회적 논의 필요"
설 명절을 앞두고 문앞에 두고 간 한우 선물 세트가 길고양이에 의해 훼손되자 택배기사가 배상책임을 지게 됐다. 법조계에선 택배표준약관에 따라 원칙적으론 수령인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일일이 연락해 배송지를 특정해야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비대면 배송이 일상화되고 명절 택배수요도 폭증한 상황에서 택배기사에게만 책임을 물리는 것은 가혹하다며 현실적으로 표준약관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남 구례군 단독주택에 사는 A씨는 지난 3일 오전 7시 지인으로부터 택배로 선물 받은 20만원 상당의 한우 선물 세트가 훼손된 상태로 마당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A씨의 집 주변에는 길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는데, 길고양이의 소행으로 보였다. 전날 오후 8시 한우 선물 세트가 택배로 도착했는데 택배 기사는 A씨가 집에 있었지만 문자만 발송한 후 선물을 두고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문자를 확인하지 못해 선물이 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A씨는 택배회사에 이 사실을 알리고 배상을 요청했다.
택배회사는 표준 약관을 검토한 결과 최종 배송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배송 기사들이 배상해야 한다고 결론내렸다. 분실이나 훼손 가능성이 있는데도 정해진 위치에 배송하거나 고객에게 직접 전달하지 않는 임의 배송을 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택배회사 측은 "고객이 만약 문 앞이나 특정한 장소를 지정해서 그렇게 배송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면 당연히 택배기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이런 시골은 배송 장소를 고객과 협의해 지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택배 기사가 사고 처리를 해 A씨에게 배상을 해줬다.
김도윤 변호사(법률사무소 율샘)는 "택배표준약관은 건전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마련한 것으로 행정지침의 성격을 갖고 있어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사실상 하나의 법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택배회사는 원칙적으로 받는 사람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는데 만약 받을 사람이 없다면 사업소에 보관하거나 받을 사람과 협의된 장소에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령자와 협의 없이 물건을 놓고 이후 훼손 또는 분실됐다면 이는 기사의 책임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는 수령자와 일일이 연락해 배송장소를 특정하거나,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 사무소에 보관해야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며 "특히 명절에 택배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새벽배송 등이 늘어나며 택배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택배기사들에게만 책임을 물리는 것은 가혹할 수 있다. 조금 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택배기사는 물품을 배송지까지 전달하는 역할일 뿐 계속 보관을 해야 한다는 주의 의무가 크다고 볼 수 없다. 배송지까지 하자 없이 물품을 전달했고 배송완료 문자도 보냈으며 길고양이가 물품을 훼손하리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택배기사에게만 책임을 안기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화됐고 업무량도 늘어난 상황에서 대면 배송을 강제하는 것 보다는 시대와 상황에 맞게 택배표준약관을 실효적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민법에 따라 특정물인도 이외의 채무변제는 채권자의 현주소에서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를 지참채무라고 한다. 명절선물세트는 목적물의 개성이 중시되는 성질의 것이 아닌 종류채권에 해당하므로 채무이행은 민법 지참채무의 방식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택배회사는 판매자의 이행보조인으로 판매자를 대신해 구매자에게 직접 물품을 전달해야 하나 구매자가 '문 앞'과 같이 수령장소를 지정한 경우 해당 장소에 두면 이행이 완료된다"며 "이 사안의 경우 구매자가 집 안에 있었음에도 택배기사가 임의로 물품을 문 앞에 두었다가 훼손된 것이므로 택배기사의 과실이 크다. 구매자가 따로 수령지를 지정하지 않은 이상 최소한 집에 있는지 확인이라도 했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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