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례 올린 신부, 설빔 입은 아이…조선을 사랑한 英여성화가

전수진 2024. 2. 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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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한국의 어린이들.' 한림출판사 제공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엔 '송영달 개인 문고'가 있다. 미국에서 행정학 교수로 이스트캐롤라이나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던 송영달(90) 교수가 기증한 한국 관련 서양 고서(古書) 모음이다. 송 교수는 틈날 때마다 영미권 서점을 다니며 구한말 한반도의 모습이 서술된 영어 서적을 수집했다. 40여 년에 걸친 수집 과정에서 송 교수가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된 인물이 있으니,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라는 영국 화가다. 20세기 초 처음엔 일본에, 다음엔 당시 조선을 방문해 작품활동을 했던 여성 화가다.

그는 20세기 한반도를 금강산부터 한양까지 여행하며 우리네 삶을 화폭에 담아냈다. 조선의 3ㆍ1 운동을 지지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크리스마스 실을 세 차례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를, 송 교수가 발굴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조선의 혼례잔치. 한림출판사 제공


캐나다 소재 키스의 먼 친척 집까지 찾아가 모은 책과 작품들은 송 교수의 손을 거쳐 책으로 거듭났다. 지난달 말 출판된『영국화가 엘리자베스의 올드 코리아』(한림출판사)다. 2020년 펴낸 한국어판에 이어 이번엔 세계 독자를 위해 영어로 출판됐다. 송 교수의 키스에 대한 해석과 설명이 곁들여졌다. 은퇴 후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하는 송 교수를 이메일 등으로 만났다.

엘리자베스 키스를 발굴한 송영달 교수. 본인 제공

Q : 엘리자베스 키스를 발굴한 계기는.
A : "나는 원래 행정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던 사람이지만, 20세기 초 (구한말) 한반도 관련 책을 모으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왔다. 헌책방을 들러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귀중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 서양 고서들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래서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고, 지금도 보관돼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했던 일부 서양인들은 조선의 일본 강제병합은 '피할 수 없었다'거나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견해까지 피력했는데, 키스가 쓴 책을 우연히 보고 한국에 대한 애정에 감명받았다. 키스와의 우연한 만남은 은퇴 후 내 삶을 바꿨다."
송 교수가 한국어로 출판한 키스의 책은 『영국화가 엘리자베스의 올드 코리아』와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두 권이다. 송 교수는 책뿐 아니라 키스 관련 전시회도 주도했는데,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전시를 개최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초상화. 한림출판사 제공
엘리자베스 키스의 사진. 한림출판사 제공

Q : 화가로서 키스에 주목할 점은.
A : "그가 한반도에 처음 온 것은 1919년이고, 이후 40년까지 작품활동을 하면서 한국을 소재로 한 수채화 및 목판화 등을 90여 점 남겼다. 흑백 카메라도 흔치 않던 시절, 우리네 일상을 어느 화가보다도 많이 그렸다. 그의 작품을 보면 사실에 충실한 관찰력과 더불어, 조선인을 대하는 다정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가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예리한 눈과 열린 마음, 따스한 애정에 감사하다."
여성인 키스는 당시 한반도 여성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혼례를 올리고 피곤한 듯 눈을 감은 듯 앉아있는 신부, 강가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선 양반댁 부인 등, 다양한 당시 일상이 화폭에 남아있다. 송 교수는 "키스는 당시의 각계각층,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림을 그렸다"며 "편견 없고 진솔한 그림은 키스가 한반도에 대해 품었던 애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어 "키스는 어딜 가든 그 장소와 상황을 느긋하게 관찰하고, 분위기를 흡수한 뒤에야 그림을 그리곤 했다"며 "그가 활약했던 당시엔 서양 여성이 캔버스를 펴고 그림을 그리려 하면 구경꾼이 몰려 들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이 너무 달라진 것을 그도 볼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신부의 모습. 한림출판사 제공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평양. 한림출판사 제공

Q : 수집 과정이 쉽지 않았을 듯 한데.
A : "미국의 여러 도시를 찾아다닌 건 말할 것도 없고, 키스 가족이 살았던 영국 런던도 방문했다. 그는 9남매 중 한 명이었는데도 자손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유일한 후손도 캐나다로 이사를 했다. 키스 본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개인적 생활의 흔적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송 교수가 특히 아끼는 키스의 작품은 그가 이순신 장군 초상화라고 추정하는 그림이다. 송 교수는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라는 증거가 명시적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지만, 키스가 그린 남성 초상화 중에서 특히나 무인의 풍모가 짙고, 거북선까지 배경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면 맞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그림을 통영시 박물관에 기증했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무인의 초상. 송영달 교수는 이 그림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일 거라고 추정한다. 한림출판사 제공


송 교수의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 "언제일지, 어느 미술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에 보관 중인) 나의 수집품이 한국으로 돌아가 사회의 문화적 유산으로 남는 것이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다." "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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