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도, 택배도 두배…40년 아파트 경비원도 "명절이 겁난다" [르포]
지난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 경비원 송모(73)씨는 허리 높이까지 쌓인 알록달록한 선물세트 상자와 냉동 포장용 스티로폼, 각종 비닐 등 설 선물 박스에서 나온 재활용 쓰레기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종이 상자마다 마저 떼지 않은 테이프가 매달려있고 각기 다른 포장용재와 아이스팩까지 분리할 게 산더미였다. 배달용 플라스틱 용기에 묻은 음식물이 썩으며 나는 냄새로 악취까지 진동했다. 송씨는 이날 아침 일찍부터 동료 한 명과 쓰레기 분리 작업에만 매달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는 “명절 땐 쓰레기가 50%는 더 나오는 데다가 제대로 분리수거를 하지 않아 뒤처리하는 게 골치 아프다”고 한숨을 쉬었다.
기름·비린내 박스·배달용기 산더미…“쓰레기와의 전쟁”
아파트 경비원의 명절 연휴는 쓰레기와의 전쟁으로 시작된다. 주민들이 분리하지 않은 방대한 쓰레기 더미를 일일이 뒤져 재분류하는 작업량이 평소 두 배로 는다. 이날 오후 구로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장에선 사과·배 등 과일을 감싸는 포장재가 스티로폼 더미에 함께 무더기로 버려져 있었다. 망 형태를 포함한 과일용 포장재는 다시 사용할 수 없어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포장용 보자기·부직포도 일반쓰레기에 해당하지만, 종이나 비닐류로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은평구 응암동에서 만난 경비원 이모(77)씨는 “다른 건 몰라도 종이에서 테이프 떼는 건 알면서도 귀찮아서 안 하는 것 아니겠냐”고 토로했다.
연휴 중간엔 배달 음식용 플라스틱 쓰레기가 넘친다. 명절 차례가 줄면서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기보다 시켜먹는 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늘어난 쓰레기 정리는 결국 경비원들의 몫이다. 마포구 공덕동에서 만난 경비원 김모(66)씨는 “가끔은 먹다 남은 음식을 그대로 버리는 사람도 있어서 우리가 치우기도 한다”고 했다.
쓰레기 수거 업체도 비상이다. 보통 아파트와 계약할 때 쓰레기양이나 수거 횟수 등은 따로 명시하지 않아 양이 많으면 여러 차례 오갈 수밖에 없다. 연휴 기간이나 전후엔 하루에 정해진 아파트를 다 돌기 위해 새벽 일찍부터 나선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김모(70)씨는 “보통 수거차가 1차 종이, 2차 비닐·플라스틱을 가져가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양이 많이 나와 이따 한 번 더 온다고 했다”고 말했다.
주차난도 경비 탓…"주민 항의가 더 무서워"
경비원들은 몸이 힘든 건 둘째 문제다. 명절 땐 마음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쓰레기 문제부터 주차나 방문 차량 관리 등 주민 민원도 급증하기 때문이다. 주민으로부터 “빨리 치우라”는 항의를 받으면 몸보다 마음이 멍든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정우성(68)씨는 “아파트 경비원, 건물 관리인 경력만 40년이지만 명절 때는 여전히 긴장된다”고 말했다. “수고한다며 고맙다고 하는 주민도 많지만, 항의가 들어올까 봐 신경이 곤두선다”고 하면서다.
넘치는 선물 택배에 쓰레기를 정리하는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친다. 같은 날 오후 응암동의 아파트에선 경비원이 쓰레기와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택배 기사들이 트럭 가득 싣고 온 물품을 부지런히 옮기고 있었다. 택배기사는 “오늘은 380개를 싣고 왔는데 정확히 평소의 두 배로 1년 중 가장 많다”고 말했다. 60대 경비원 A씨는 “미관상 보기 안 좋으니 빨리 치우라는 항의를 관리 사무실로부터 들었다”며 “심지어 택배가 잘못 배송된 것까지 경비원 탓을 할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외부 방문 차량이 늘면서 생기는 주차난을 경비원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연휴엔 일일이 차량을 확인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많은 아파트가 차단기를 열어둔다. 마포구의 경비원 김모(67)씨는 "방문객이 아닌 사람들이 소란이라도 피우면 우리 잘못이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격일 24시간 근무, 가족도 못 보지만…“일 할 수 있어 감사”
24시간 격일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명절 당일도 초소를 지켜야 한다.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남모(67)씨도 연휴 마지막 날 가족과 만나기로 했다. 남씨는 “우리도 손주 보며 쉬고 싶지만, 자식들한테 손 벌리고 싶지 않다”며 “손녀 세뱃돈을 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정세희·박종서·이아미 기자 jeong.sae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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