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명절 선물과 잔소리
수습 기자 시절 이야기다. 퇴근 준비를 하던 선배 한 명이 선물상자를 쥐여줬다. 견과류 세트였다. 호두와 잣, 아몬드 등이 들어있었다. 그제야 설 연휴 하루 전이란 걸 깨달았다. 당시 입사 6개월도 안 된 수습 기자가 받을 선물은 없었다. 선배는 자신 몫의 선물을 내줬던 것이다. 집에 돌아갔더니 어머니가 환히 웃었다. 대학생티를 갓 벗은 아들이 명절 선물을 받아온 게 대견하다고 했다. 무심한 표정으로 선물을 건네던 선배의 뜻을 뒤늦게 깨달았다.
10년도 더 지난 선물세트가 생각난 건 요즘 중국 소셜미디어 풍경 때문이다. 춘절(음력 설) 연휴를 앞두고 선물 자랑이 한창이다. 어느 회사가 어떤 선물을 줬는지 소개하는 ‘언박싱’ 게시물이 줄지어 올라왔다. 특히 중국 IT기업들은 경쟁하듯 설 선물 패키지에 공을 들였다. 포털사이트 바이두는 여행용 가방, 인터넷보안업체 360은 캠핑용품,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고급 스피커를 담았다. 대부분 ‘용의 해’ 의미를 담아 알록달록한 색상의 선물세트를 기획했다. 자신이 받은 선물 사진을 올리고 다른 회사의 선물은 뭔지 묻는 댓글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 회사 선물만 초라하다”는 한탄도 올라왔다.
그런데, 이런 한탄마저 부러울 사람들이 있다. 선물 자랑도 ‘가진 자들의 경쟁’일 뿐이다. 최근 중국 경제엔 적신호가 켜졌다. 한 축엔 고공행진 중인 청년 실업률이 있다. 관영매체조차 ‘실업대란’이라 표현했다. 지난해 7월 발표된 중국 청년 실업률은 21.3%였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 뒤 국가통계국은 어떤 발표도 없이 침묵했다. 그러다 6개월 만인 지난달 기존보다 3분의 2로 줄어든 통계를 내놨다. 새로운 조사 방식을 적용했다고 한다. 조사 대상을 바꾸며 생긴 착시 현상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부모 용돈으로 생활하는 ‘전업 자녀’를 포함하면 잠재실업자가 1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청년실업률은 정부 발표의 두 배 규모인 40% 전후라는 주장도 있다.
일가친척 마주할 걱정에 한숨만 내쉬는 건 중국 청년뿐만은 아니다. 한 국내 아르바이트 플랫폼이 성인 34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5.6%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취업 관련 과도한 질문과 잔소리(47.5%)’가 1위로 꼽혔다. 다른 조사에선 취준생 4명 중 1명이 ‘고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잔소리만 잔뜩 들을 바엔 혼자 지내는 게 낫다는 뜻이다. 이번 명절엔 질문보단 응원으로 어색함을 깨보는 건 어떨까.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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