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지하화’로 맞붙은 與·野…실현 가능성은? [국회 방청석]
천문학적 예산···재원 마련엔 ‘물음표’
민간 재원 조달 위해 ‘사업성 확보’ 관건
철도 지하화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의 철도 부지와 인근 부지를 함께 개발하는 사업이다. 철도 지하화는 지난 수십 년간 선거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충당할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추진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 여야 공약이 총선을 겨냥한 ‘표(票)퓰리즘’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철도 지하화 공약은 먼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시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월 31일 총선 격전지로 떠오른 경기도 수원시를 방문해 철도 지하화를 공약했다. 경부선 등 지상철도 지하화를 통한 상부 공간과 주변 부지의 통합개발을 통해 미래형 도시 공간으로 재창조하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국민의힘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A·B·C 연장과 D·E·F 신설 계획도 공약했다. 앞서 정부도 지난 1월 25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주요 지상 철도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철도·도로 지하화 사업비 규모가 약 65조2000억원 수준인데, 이 중 50조원이 철도 지하화에 해당한다.
한 위원장은 철도 지하화 총선 공약과 관련해 “오래된 철도, 경부선이 수원의 동서(東西)를 가르고 같은 영역으로 발전해야 할 구간이 분리되고 있다”며 “이런 부분이 해결돼야 지역 전체가 발전한다”고 밝혔다. 재원 방안과 관련해서는 지난 2월 2일 “수원 철도 지하화 같은 건 상당 부분 민자를 유치하는 방식이다. 재원 계획 같은 부분이 충분히 준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고려하는 지하화 구간은 ▲수도권 도시철도(2·3·4·7호선) ▲경인선·경원선·경의선·경의중앙선·경춘선 ▲경부선(평택·천안·대전·대구·부산권 포함) ▲호남선·광주선·전라선 등이다. 공사가 진행 중인 GTX도 지하화 대상이다.
재원 마련 방안과 관련해 이개호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총연장은 약 260.2㎞ 정도 추정되고, 이 중 80%에 지하화가 필요하다. 사업비는 일단 ㎞당 약 4000억원 정도로 추산해 전체 80조원 안팎”이라며 “사업비는 대부분 민자 유치를 통해 하고 현물이 국유 철도기 때문에 국가의 현물 투자를 통해 재원이 투입된다. 별도의 예산 투자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지상 부위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경비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핵심은 ‘돈’이다. 정부와 여야 모두 기존 지상 철도와 역사 부지를 민간 사업자와 함께 개발해 나오는 이익으로 사업비를 전액 충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십조원의 사업비를 모두 개발이익으로 충당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빗발친다.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추진돼온 지하화 사업조차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마련하지 못해 난항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내놓은 재원 마련 대책이 여전히 추상적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또 민자 유치를 하려면, 그만큼의 사업성이 있는지가 담보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는 평가도 적잖다. 업계에 따르면, 여야 모두 공통으로 내건 10㎞ 내외의 경부선 성균관대역~수원역 구간만 해도 최대 4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민간사업자 입장에서 투자 사업으로 발생하는 이익이 수조원 규모의 사업비를 충당할 수 있는 구간에는 관심이 몰리는 반면, 부지 활용의 사업성이 떨어지는 구간은 외면받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현실화한 상황에서 수십조원 규모의 사업비를 대부분 개발 이익으로 충당한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3년 연간 국세 수입 현황(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 수입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1조9000억원 줄었다. 법인세는 23조2000억원 줄었고, 부동산 등 자산 시장 침체에 따라 양도세도 14조7000억원 감소했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공약의 진실성 여부를 따질 때 중요한 지표는 구체적인 시간표가 제시됐는지다. 여야의 지하화 공약에는 그런 시간표가 없다”며 “지키지도 않을 약속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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