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도 휴대폰처럼 싸고 좋아야 팔려… 기업형 농업 이뤄야”
‘한국 농업’에는 관성적으로 ‘위기’라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수십년 전부터 국내 농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경고는 계속되는데 나아진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스마트팜 등 새로운 기술이 농업을 되살릴 거라는 기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농촌 인구는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만 있다.
지난 6일 장태평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장을 서울 중구 농어업위 사무실에서 만나 국내 농업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 물었다. 장 위원장은 경제 정책을 기획·총괄하는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농업정책국장을 거쳐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현재 농업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인가.
“인구 절감 문제가 심각하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읍·면에 전체 인구의 60%가 거주했는데 현재는 18~19%만이 남아있다. 심지어는 얼마 안 되는 농촌 인구마저 고령화가 심한 상황이다. 지금 현재 우리 농촌은 이미 65세 이상의 비율이 50%에 가까워져 있다. 농촌 인구 중 35%가 70세 이상이다.”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흐름을 막는 게 가능한가.
“그 속도라도 늦춰야 한다. 단순히 거주 인구를 늘리려고 하기보다 생활 인구를 늘리는 게 우선이다. 충북 제천의 경우 하루 3시간 이상 그 지역에 체류하는 생활 인구의 통계를 내봤더니 거주 인구의 8.3배로 나왔다. 주민등록에 등재된 인구가 적더라도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오가면 그 지역에 생기가 돌고, 생활편의시설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지역을 구경하니 슈퍼와 주유소가 돌아가지 않겠나.”
-어떤 방식으로 생활 인구를 늘릴 수 있을까.
“‘애그로투어리즘(농업+관광)’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농촌의 풍경과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누구나 주말에 쉴 수 있는 별장을 갖고 싶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어렵지 않나. 러시아·독일 등 여러 국가에선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6~7평 정도 되는 집을 짓고, 원하는 사람은 주말농장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임대를 한다. 농어업위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인구 소멸 문제만 해결된다면 우리나라 농업의 경쟁력은 충분한가.
“세계적으로 보면 농업 생산성 자체도 뒤처져 있는 게 현실이다. 네덜란드 같은 농업 선진국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60%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 특히 밀 같은 경우 우리나라 전체 소비량 중 국내 공급량이 0.7%밖에 안 된다. 나머지 99.3%를 수입하는데 이게 다 국내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다. 농산물도 휴대폰과 똑같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살 때 가격이 싸고 기능이 좋은 제품을 찾듯이, 농산물도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은 것을 찾는다.”
-하지만 국토가 좁은데 규모를 늘리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여러 농가가 모여 같이 농사를 짓는 기업형 농업으로 규모를 늘릴 수 있다. 경북 문경의 늘봄영농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80농가가 모여서 법인을 만들어 합동으로 농사를 지었더니 전체 소득이 전년 10억원에서 25억원으로 늘었다. 그동안은 농가들이 이곳저곳 따로 했었는데 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생산성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한해에 쌀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양파, 감자 등 너댓개 품목을 이모작·삼모작하고, 원자재도 대량으로 구입하면서 비용을 줄였다.”
-‘기업형’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대 기업이 농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스스로 기업을 운영하듯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돼지를 2만마리씩 키우는 곳에서도 기본적인 회계작업을 하지 않는다. 소를 1200만원 들여 애지중지 키워 1000만원에 팔면 500만원을 들여 700만원에 판 사람보다 손해인데, 본인이 손해를 봤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가 하는 사업의 수익성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지 못하면 어떻게 소득을 늘릴 수 있겠나. 농민들도 경영 감각을 키워야 한다.”
-기후위기도 농업을 위협하고 있다.
“최근에 과일 가격이 올라서 난리인데 농민들은 굉장히 좋아한다. 지난해 과일 생산량은 평년보다 고작 5~10% 줄었는데, 가격은 배 가까이 올랐다. 그러니 농가에선 크게 이익을 본 거다. 그런데 반대로, 생산량이 조금 늘었는데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만 해도 배춧값이 비싸져서 ‘금추’라고 했었는데 두 달 뒤에 값이 폭락해서 고랭지 채소들을 다 갈아엎었다. 기후가 변화하면 농가 소득은 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단순 보조금 지원 말고 해결책이 있나.
“물론 어렵지만 이 역시 협동조합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다. 농가들이 모여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인구 고령화 등 많은 문제가 협동조합으로 풀린다. 지금 농촌에 나이가 들어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는 노인분들도 굉장히 많다. 조합에서 인력을 함께 운영하면 유동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잡는 게 가능하다.”
장 위원장은 2008년 농식품부 장관 취임 당시 수출 100억 달러를 목표로 내걸었는데, 그로부터 약 10년 뒤 한국은 그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장 위원장은 한국 농업이 수출 1000억 달러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자동차 등은 전세계에서 손에 꼽힐 만큼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데 농업은 그렇지 못하다”며 “농업 역시 사람 머리로 하는 일이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전략을 짜고 실행하면 농업 발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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