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의 반란, 명절에 양가 대신 여행 간답니다

전미경 2024. 2. 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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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평생 처음 본 언니의 모습, 그 결심이 불러온 나비효과... 다음 달엔 호캉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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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설 연휴를 이틀 앞뒀던 지난해 1월 19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이 인파로 붐비는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번 설연휴 인천공항에 100만 명이 몰린다는 뉴스를 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많은 수치라고 한다. 나는 누구의 눈치도 볼 이유가 없는 솔로임에도 명절엔 집으로 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명절 연휴 공항에 운집하는 여행자들 소식을 접할 때면 관습을 거스르는 용기에 알 수 없는 동경을 했다.     

몇 년째 명절날 집에 가지 않는 솔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집에서 호적판다는 말까지 나왔다면서도 별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참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집에 왜 안 가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가면 잔소리를 한다고 했다, 결혼하라고. 그래서 혼자 여행을 한다고 했다.       

우리 집은 그런 명절 잔소리도 없고, 내가 여행 간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 싱거울 정도인데 명절만 되면 모범생처럼 으레 집으로 향한다. 오로지 내 의지지만, 언젠가는 나도 한번 명절에 반항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늘 생각뿐이다. 중력처럼 고향으로 향하는 길을 역행할 무엇이 내게는 아직 없다.       
     
나를 두 세 번 놀라게 하는 언니의 모습 

책상 위 달력만 보며 명절 일정을 조율 중인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설연휴 때 가족여행을 갈 거라며 제주도 항공권과 숙소를 알아봐 달라는 갑작스러운 부탁이다. 놀랍고 당황스러워서 재차 물었지만 대답은 확고했다. 처음 있는 반란이다. 명절여행이라니. 예약금을 보내라고 하면 마음이 변할까 했지만 언니는 망설임도 없이 거금을 보내와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이런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할 수 없이 항공권을 구매하려 온라인에서 손가락품을 열심히 팔았지만 연휴 일주일 전이라 쉽지 않았다. 항공권이 없으면 포기하겠지 했는데 언니는 행선지를 바꿔 강원도 한 도시를 지목하며 숙소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언니는 그저 어디든 명절 연휴 때 집을 벗어나고픈 사람처럼 보였다. 무조건 숙소를 잡아달라고 부탁 아닌 애원을 했다. 간절하게.           

과거 잠시 여행사에 근무한 적은 있었지만 나 역시 여행을 안 간 지 십 년이 넘었고 국내여행은 거의 다니질 않았으니 잘 모르지만 언니가 처음 한 부탁이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믿기지 않는 명절여행을 택한 충동적인 상황이라 반신반의했지만 인터넷 검색을 하면 숙소쯤이야 어렵지 않으니 그러겠다고 했다. 60 평생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언니의 행동에 그저 어안이 벙벙 놀라울 따름이었다.      
    
언니가 원하는 조건에 맞춰 최저가를 약속하는 숙소 몇 개를 추리고 크로스 체크를 해서 겨우 숙소 하나를 예약했다. 아무리 최저가라지만 연휴라 그런지 평소보다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옵션과 혜택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온라인 예약 시 발생할 수 있는 혹시 모를 변수를 고려해 숙소에 전화했다. 최저가를 찾아 삼만리 투어 하다 눈과 손가락이 힘들었던 꼬박 하루가 걸린 숙소 예약이다. 언니에게 무료 취소 가능한 기간을 알려줬더니 취소할 생각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사람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제주도 한번 안 가본 언니가 이렇게 갑자기 명절 연휴에 충동적인 여행이라니. 실감이 안 나지만 일단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막상 예약은 했지만 슬슬 '현타'가 오는지 언니는 "괜찮을까? 괜찮겠지?"라고 자꾸 내게 물어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언니 잘했어, 이번 결정은 정말 박수 보낼 일이야. 언니만 괜찮으면 괜찮아"라고 진심으로 응원을 보냈다. 짝짝짝 박수를 쳐줬다. 
 
 제주도 한번 안 가본 언니가 이렇게 갑자기 명절 연휴에 충동적인 여행이라니. 진심으로 응원을 보냈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친정과 시댁, 양가를 모두 배제한 언니의 이번 명절여행은 충동을 가장한 형태였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작은 소망이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삶에 얽매여 제대로 된 여행 한번 해본 적 없는 언니다. 여행이라야 고작 친구들 모임, 어쩌다 간 일본여행이 전부라 여행은 늘 꿈만 꾸는 것이었다. 그런 언니가 어떨 땐 안쓰럽기도 했다. 

자발적 '집콕'을 하는 나와는 반대로 언니는 늘 어딘가를 향하고 싶어 했다. 전업 주부들이 그렇듯 우울함이 지배할 때가 있지만 제대로 된 출구가 없었다.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으로 일상을 공유하며 기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언니가 명절여행을 앞두고 예전과 달리 활기가 넘쳤다. 명절여행을 결심한 이유를 따로 묻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행복해야 할 명절이 숨이 턱턱 막힌다면 명절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라져야 하는 것들 중 하나로 명절 증후군을 뽑고 싶다. 짧지 않은 생. 명절연휴를 어떻게 보내던 각자의 선택이지만 행복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언니, 여행 갈 생각 하니까 기분 좋은가 보다"라고 묻자 "그럼!" 언니는 여행 날짜를 기다리는 순간순간이 행복하다고 했다. 행복해하는 언니를 보니 괜히 미안했다. 생각해 보니 언니랑 한 번도 여행을 한 적이 없다. 

언니의 여행 루트를 짜다 보니 나도 여행이 가고 싶어 져서 호텔을 찾아 '호캉스' 예약을 했다. 관광이 아닌 그저 휴식이 필요하다고 한 언니에게도 딱 안성맞춤인 투어다. "언니, 명절 지나고 다음 달엔 나랑 호캉스 갈래? 근데 나랑 가려면 기차 타고 가야 돼"라고 했더니 흔쾌히 언니 왈 "기차도 한번 타보지 뭐" 이런다.

그럼 매달 한 번씩 가자고 했더니 금세 현실로 돌아온다. "어우, 그럼 돈 많이 들 텐데"면서. 내가 "걱정 마, 숙박비는 내가 낼게" 했더니, 알았다고 하며 좋아라 한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닌데. 올해엔 언니와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나씩 해봐야겠다. 다음엔 동생도 데려가봐야겠다. 여행이라는 게 어떤 기념일에만 간다고들 생각하지만, 우리가 가는 그날이 기념일인 것 아닌가. 

이렇게 근 10년 만에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 시동을 걸어본다. 언니의 명절 여행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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