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있게 살고싶다" 여성 MC의 전설 김원희의 고백
[이준목 기자]
"제게 새로운 삶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어준 동생에게 고맙다. 삶을 가치있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그 가치를 내가 나한테 두면 배부르고 뚱뚱한 돼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 가치의 방향을 바꾸니까 오히려 내게도 더 기쁜 것 같다."
아픈 남동생을 위해 사회복지사가 되었다는 김원희의 훈훈한 사연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7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는 배우 겸 방송인 김원희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전했다.
김원희는 시청자들에게는 본업인 배우보다 오히려 '예능 여성 MC'의 상징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동갑내기인 유재석, 보조 MC였던 조세호와 함께 장장 8년여간 장수 예능으로 사랑받은 MBC 토크쇼 <놀러와>를 통해 김원희는 특유의 친근한 입담과 재치를 발휘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놀러와>는 2012년 갑작스럽게 방송국으로 폐지 통보를 받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출연자들은 미처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얻지 못했다. 유재석은 마지막 녹화가 끝나고 귀가하던 엘리베이터에서 폐지 소식을 전달 받았다며 "당황스러웠다. PD님이 그때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김원희 역시 "8, 9년을 함께한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출연진들은 마지막 회식 때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촬영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 바 있다.
2005년 김원희의 '전설의 예능 결혼식'도 화제가 됐다. 당시에는 유명인의 결혼식을 취재진에게 공개하는 관행이었다. 김원희의 결혼식에서는 유재석이 MC를 맡고 유명 스타들이 하객으로 총출동하면서 취재진도 대거 운집했다. 처음에는 포토라인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던 취재진은 신랑, 신부가 입장하면서 라인을 넘어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버진로드까지 침범하는 과열된 취재경쟁으로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사회를 보던 유재석은 "신랑, 신부가 행진하는데 기자들이 '나와', '네가 뭔데' 하며 고성과 욕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원희는 "심지어 주례가 목사님이었는데, 취재진이 주변에 동그랗게 몰려서 사진을 찍느라 제 얼굴이 안 보일 정도였다. 목사님도 당황해서 땀을 흘리시더라"며 "결혼식을 두 번은 못하겠더라. 그래서 참고 산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김원희는 전설로 통하는 MBC 공채 21기 탤런트 출신이다. 톱스타가 된 장동건, 박주미 등이 김원희와 동기였다. 김원희는 공채 입사와 동시에 국민 드라마였던 <한지붕 세가족>에 출연하여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초창기의 김원희는 연기가 적성에 안 맞아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김원희는 "연기도 못하는데 분량이 너무 컸다. 오죽하면 감독님이 '너 열심히 안 하면 극 중에서 죽이든가, 유학을 보내버릴 것'이라고 협박을 하시더라. 속으로 그럴거면 차라리 짜르라고 생각했다"고 험난했던 신인 시절을 회상했다.
한때 연기를 포기할까 고만하던 김원희는 한석규-최민식 주연의 MBC 주말드라마 <서울의 달>에 출연하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시 김원희는 드라마 중반부에 합류하여 최민식을 짝사랑하는 순박한 시골 처녀 '호순' 역할을 맡아 큰 화제가 됐다.
당시 신인인데도 스케줄이 있다고 핑계를 대며 출연 제의를 거절했던 김원희는 PD에게 들켜서 크게 혼이 나고 강제로 출연하게 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전했다.
당시 PD의 거친 말에 상처를 받았던 김원희는 소심한 복수로 "이 사람 너무 예의가 없네? 일단 연기 하고나서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말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시청률 48.7%를 기록했고, 엉뚱한 매력의 호순 캐릭터도 오히려 큰 사랑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김원희라는 배우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특히 김원희는 상대 역이었던 최민식이 아직 어리던 자신을 누구보다 잘 챙겨줬다며 "그 분이 아니었으면 끝까지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를 전했다.
김원희가 배우보다 더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방송 진행이었다. 1996년 <기쁜 우리 토요일>에서 첫 MC로 낙점되어 예능을 통하여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김원희는 <놀러와>를 비롯하여 <만물상> <백년손님> 등 여러 장수 인기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 MC로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한다.
절친인 유재석은 MC 김원희 만의 장점으로 "항상 사람에 대한 궁금함이 있었다"고 했다. 김원희는 "식구가 많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사람이 좋더라. 가장 자신있던 게 대화이고 토크쇼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김원희는 7년 전 개인 SNS에 여성 MC들의 활동 기회가 남성들보다 부족하다는 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원희는 "예능에는 여자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이후로 여자들의 활약이 커졌다. 자신을 잘 드러내고 잘 표현하는 분들이 인기가 많다"면서 이지혜, 홍현희, 장영란 등 최근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성 후배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칭찬했다.
한동안 방송활동이 뜸했던 김원희는 최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의외의 소식을 전하며 놀라움을 안겼다. 김원희는 30년 넘게 뇌전증으로 투병했던 남동생이 있었다. 동생이 한창 아프던 시절에는 가족에게 걱정의 대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동생을 통해 주변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김원희는 오랫동안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하거나, 해외의 환우들을 후원해왔다는 미담이 알려지며 훈훈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김원희는 남동생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향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삶의 가치를 자신에게 두기 보다 타인에게 베푸는 것으로 가치의 방향을 바꾸면서 오히려 스스로에게도 기쁜 일이 늘었다고.
향후 계획에 대해 김원희는 활동 재개를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방송이나 토크쇼 외에도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경력이 30년 정도 넘으니까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있다. 안방마님이라는 수식어도 좋지만, 그게 고인물처럼 제 자신의 한계나 틀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더라. 이전 다양하게, 그리고 더 나이 먹기 전에 더 즐기고 열심히 해야겠다, 틀에 박혀 있지말고. 그래야 되지 않겠나. 100세 인생인데"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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