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분위기, 얼마만인지…” 설 잔치에 찾아온 은둔청년들

정신영 2024. 2. 8.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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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골목.

은둔 경험이라는 공통점만으로 한자리에 모인 6명의 청년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전에 밀가루와 달걀 물을 묻히기 시작했다.

은둔청년을 위한 명절 잔치는 2022년 추석부터 시작됐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은둔청년은 부모와 형제자매가 곤란해질까봐 명절에 내려가지 않을 때가 많다"며 "명절 분위기를 내면서 기분을 환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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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청년들이 설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경로당에 직접 만든 명절 음식을 전달하고 있다. 정신영 기자

설 연휴를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한 골목. 사단법인 씨즈가 운영하는 고립·은둔 청년 활동공간인 ‘두더집’에서 열린 명절 잔치에서 전 부치는 냄새가 가득했다. 이곳에 한 남성이 쭈뼛거리며 들어섰다. 두더집을 찾은 한모(36)씨 손에는 나눠 먹을 약과와 식혜가 들려 있었다.

은둔 경험이라는 공통점만으로 한자리에 모인 6명의 청년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전에 밀가루와 달걀 물을 묻히기 시작했다. 불판에는 동그랑땡부터 오색꼬치전까지 갖가지 전이 올라갔다. 서로 부친 전을 맛보라고 건네면서 서먹했던 분위기는 금세 풀어졌다. 주위에서 “점점 더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자 전을 부치던 청년은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요리에 열중했다.

한씨는 “시골에 온 기분”이라며 웃어 보였다. 그에게 그동안 명절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한씨는 “은둔기간 명절 때 억지로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던 경험이 다반사”라며 “친척집을 방문하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곳에 오기까지도 수차례 망설였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군대에 갔다. 전역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그가 은둔생활을 시작한 건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간 그는 집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오겠다고 결심하면서 두더집을 찾았다. 그는 “이제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데 적응이 많이 됐다. 취업도 천천히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8일 오전 서울 은평구 불광동 ‘두더집’에서 은둔 청년들이 명절을 맞아 전을 부치고 있다. 정신영 기자

음식을 준비하던 중 작은 소동도 있었다. 한 청년이 실수로 전기그릴을 휴대용 버너에 올려놔 그릴 밑판이 녹은 것이다. 어쩔 줄 몰라하자 주위에서는 “작은 실수일 뿐이다. 괜찮다”며 격려했다. 또 다른 은둔청년인 박모(26)씨는 “다 같이 모이니 명절 느낌이 나서 좋다. 오랜만에 명절을 명절같이 보낸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전 부치는 방법을 청년들에게 알려주던 오모(28)씨는 4년간 은둔 경험이 있는 ‘은둔 선배’였다. 스무 살에 독립한 오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결국 3학년 때는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학교에 가지 못했고, 그렇게 은둔이 시작됐다. 그는 지난해 은둔청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지난 1월부터 씨즈 직원으로 일하게 됐다. 오씨는 “은둔 경험이 있다고 해도 섣불리 내 모습을 투영할 수는 없다. 얘기를 최대한 많이 들어주려 한다”고 말했다.

은둔청년을 위한 명절 잔치는 2022년 추석부터 시작됐다. 평소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청년들도 이곳을 찾는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박한 행사지만 함께 모여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올 힘을 얻는다. 이은애 씨즈 이사장은 “은둔청년은 부모와 형제자매가 곤란해질까봐 명절에 내려가지 않을 때가 많다”며 “명절 분위기를 내면서 기분을 환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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