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안보패키지 예산 좌초…“국경 안보, 트럼프 선거용 이슈였나”

김형구 2024. 2. 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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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ㆍ이스라엘 지원과 국경 통제 강화 등을 함께 담은 미 상원의 ‘안보 패키지’ 법안이 7일(현지시간) 사실상 좌초됐다.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 때문인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전략과 공화당 내 혼란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상원은 이날 안보 패키지 법안에 대한 정식 표결에 앞서 토론 종결을 위한 표결을 실시했지만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의결 정족수 60명(전체 100명 중 5분의 3)에 10명이 모자랐다. 안보 패키지 법안 자체는 지난 4일 민주ㆍ공화 양당 합의로 도출된 것이었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이날 표결에서 대부분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 상원은 7일(현지시간) 1180억 달러 규모의 안보 패키지 법안에 대한 정식 표결에 앞서 토론 종결을 위한 표결을 벌였지만 찬성 49표, 반대 50표로 부결됐다. 방송 화면 캡처

안보 패키지 법안은 ▶우크라이나 지원 600억 달러 ▶이스라엘 지원 140억 달러 ▶중국 견제 동맹국 지원 48억 달러 ▶남부 국경 강화 200억 달러 등 총 1180억 달러 규모로 편성됐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전날 우크라이나ㆍ이스라엘 지원의 절박함을 호소하며 공화당의 협조를 촉구했지만 토론 종결 안부터 부결되면서 안보 패키지 예산은 그대로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공화당은 반대 이유로 국경 통제 조항이 약하고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과 연계하는 것은 안 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 때문에 비협조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보 패키지에 들어있는 국경 통제 강화 방안에는 불법 입국자 수가 일주일간 하루 평균 5000명 이상이거나 하루 8500명을 넘는 경우 국경 폐쇄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해당 예산이 통과돼 국경 문제가 일부 해소될 경우 기존 국경 난맥상을 대선 본선까지 끌고 가 바이든 정부 공격 소재로 삼으려는 트럼프의 선거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안보 패키지 법안의 의회 통과를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전날 안보 패키지 법안의 의회 통과를 촉구한 바이든 대통령도 “트럼프가 공화당 상원ㆍ하원을 접촉해 (안보 패키지) 법안에 반대할 것을 강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공화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위해 일할 건지 국민을 위해 일할 건지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안보 패키지 법안이 좌초되자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상태인 진보 성향의 커스틴 시너마 상원의원은 “국경 보안은 실제로는 우리 국가 안보에 위험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며 “단지 선거용 이슈일 뿐”이라고 공화당을 비판했다.

‘트럼프 압박설’에 대해 론 존슨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번 표결을 앞두고) 트럼프와 얘기해본 적 없다. 우리는 국경을 지키고 싶어 반대표를 던지는 것”이라며 부인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내부의 혼란과 분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공화당은 전날 하원에서 국경 통제 실패 책임을 물어 알레한드르 마요르카스 국토안보부 장관 탄핵안 표결에 나섰지만, 공화당 전체 219명 중 3명의 이탈표가 나와 반대 216표, 찬성 214표로 부결됐다.

또 전날 이스라엘 지원 예산만 따로 추려 만든 법안도 하원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한 신속처리 절차로 상정됐지만, 공화당에서 다시 14명의 이탈이 발생하면서 가결 정족수를 못 채웠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리더십 부재’와 공화당의 혼란을 한꺼번에 비판했다. NYT는 “6일 공화당의 연이은 패배는 하원의장에 오른 지 약 100일 만인 마이크 존슨의 미숙함을 부각시켰다”며 “공화당은 하원에서 우위를 점하면서도 이름뿐인 다수당이라는 것이 거듭 입증됐다”고 짚었다.

민주당은 기존 안보 패키지에서 국경 강화 예산을 빼고 우크라이나ㆍ이스라엘 지원 등을 담은 수정안 ‘플랜 B’를 만들어 다시 표결을 시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내 강경파가 재수정을 원하며 반대하고 있어 계속 난항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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