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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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을지로는 3만 개가 넘는 기계금속, 전자전기, 인쇄출판 등의 소규모 상공업체들이 밀집되어 분업을 기반으로 업체간 긴밀히 협력하면서 자생적으로 형성된 산업생태계다. 오래된 공간이기 때문에 80년대에 걸쳐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여러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레트로 열풍과 함께 서울시민들의 소비공간으로도 인기를 얻고, 이곳의 산업적·문화적 가치와 도시조직의 역사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개발보다는 보존되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 소상공인들과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지난 2018년 말 세운3-1,4,5구역이 철거되면서 산업생태계에 대한 대책 없이 추진되는 재개발에 격노한 상공인들은 관수교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2019년 초 2만여 명의 시민들은 재개발 전면 중단과 '제조산업문화특구' 지정을 요청하는 서명을 제출했다. 서울시는 재개발 전면중단과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변경을 선언했다.
상공인과 시민들은 재개발 예정 지역을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조사와 기록을 진행했고, 서울시도 계획 변경을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그 사이에 재개발 절차가 시작된 곳들은 차례로 철거가 되고, 시행사에 의해 퇴거 압력이 지속되면서 청계천-을지로를 떠나는 상공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3월 4일, 보전을 기조로 하는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이 발표되며 상공인들에게 희망이 생겼다.
서울시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된 재개발
서울시 대책의 기조는 '단계적·순환적' 정비사업을 통해 도심 산업생태계를 보호하고, 구체적으로는 '세입자 이주대책 마련 후 정비사업에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3-2,6,7구역은 세입자 대책으로 이미 LH산림지식산업센터를 설립 중이었고, 수표구역과 5구역도 마찬가지로 공공임대상가를 지을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도심 산업 활성화를 위해 사업이 미추진되는 5구역에 산업재생거점과 산업특화골목 등을 조성하기로 했다. 6구역에는 인쇄 산업을 위한 시설을 짓기로 했다.
▲ [그림] 산업생태계 보전과 재생을 기조로 한 도심산업 대책※출처: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서울시, 2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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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내용이 담긴 본격적인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수립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울시장이 바꿨고 청계천-을지로 일대에는 재개발이 계속 진행됐다. 3구역은 2018년부터 3-1,4,5구역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3-2,6,7구역과 3-8,9,10구역은 시행사 한호건설이 재개발을 위한 세입자 압박을 지속했다. 5-1,3구역은 세입자 대책인 공공임대상가 건립 전까지 안전한 영업을 보장하는 상공인연합회-시행사-중구청 3자 협약을 맺기로 했지만, 서울시의 계획 수립을 기다리면서 차일피일 미뤄졌다. 수표구역도 시행사가 공공임대상가를 지어주기로 약속하면서, 상공인들은 2022년부터 단계적 이주에 들어갔다. SH 주도의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던 4구역은 이주와 철거가 시작되었다. 6구역도 부분적으로 재개발이 계속되었다.
2021년 4월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시장직을 맡게 된 오세훈 시장은 민관이 함께 논의하며 만들어왔던 도심산업 보전 대책을 한마디 논의도 없이 뒤집었다. 그리고 '녹지생태도심'을 이야기하며 서울시 도시계획을 하나씩 변경하기 시작했다.
'산업생태계 연계' 없는 도심 재개발 계획
▲ [그림] ‘제조밀집지역 신산업허브 조성’ 계획과 상충되는 ‘도심거점 특별육성지구’※출처: <서울도심 기본계획 보고서>(서울연구원, (주)피엠에이엔지니어링, 서울시립대학교, 2023) |
ⓒ 서울연구원 등 |
산업생태계와 연계한 신산업 허브 육성 등을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결국 제조밀집지역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략적인 방안도 제시되지 않고 재개발을 신속히 추진하기 위한 방식들만 늘어놓고 있다. '전통적 도시조직을 바탕으로 형성된 도심 특화산업'과 이를 기반으로 한 '특색 있는 골목 상권 활성화'는 지역의 잠재력이지만, 물리적 환경의 노후화나 제조업 기술 경쟁력 약화 등은 우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전면 철거 방식의 재개발이 아닌 역사와 산업을 고려한 중장기적 재생 사업을 통해 풀어가야 할 문제다.
그나마 '서울도심기본계획'은 도시 공간의 구체적인 현황을 담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설계된 계획이라면,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변경안인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은 신속하게 고밀도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한 계책들이 담겨 있다. 이 계획에서는 이 지역에 대한 서울시의 인식이 잘 담겨 있다. 여기서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생활의 불편을 넘어 지역주민과 시민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오래된 공간을 '낙후된 지역'과 '흉물'로 낙인찍고 불도저식으로 철거를 자행했던 개발국가 시대의 프레임이 그린워싱을 동반하여 반복된다.
녹지생태도심 계획에서는 147개로 쪼개져 있었던 정비구역을 23개 구역으로 통합하고 규제를 완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담고 있다. 세운상가군을 단계적으로 공원화하여 녹지생태도심을 조성하고, 신산업 인프라를 공급하고 도심 주거단지를 조성하여 직주 혼합도시를 만들며, 충무로 일대에 뮤지컬 공연예술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지역 영세사업자에 대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정비사업을 위한 토지이용계획, 용적률 등 밀도계획, 허용용적률 인센티브, 높이·경관계획, 건축계획, 기반시설계획 등 재개발을 위한 부문별 가이드라인뿐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재개발 방식, 장기화되는 전쟁으로 인한 건설 물자 공급, 부동산 경기 하락과 부실 건축, PF를 통한 자본 조달 문제 등 재개발 사업들의 여러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대규모 재개발을 진행하려 하는가? 현재와 같이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방식의 재개발은 청계천-을지로 상공인들에게도, 이곳을 자주 찾는 시민들에게도, 도심 속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시민들에게도, 심지어 건설사에게도 아무런 이득이 없는 허울 좋은 계획이다.
▲ [그림] 도시기본계획 중 도심권역의 방향과 과제※출처: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서울시,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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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순서(안) |
1화 멈추지 않는 청계천-을지로 재개발 2화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의 문제들 3화 산업유산 아키비스트가 살펴본 도심 산업 공간 4화 디자이너들이 경험한 청계천-을지로 산업생태계의 가치 5화 재개발로 쫓겨난 상인들의 이주 경로 6화 도시역사와 근대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도시기본계획 7화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기' 용산정비창 개발 프로젝트 8화 재개발로 사라지는 문화유산과 역사적 기억 9화 시민들이 바라는 청계천-을지로의 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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