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엔 자식들 보러 부산에서 서울 갑니다

곽규현 2024. 2. 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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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되거나 마음 상하는 가족 없이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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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행복한 설날이기를 바라는 지방자치단체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 곽규현
 
며칠 있으면 음력으로 1월 1일,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다. 민족의 절반 이상이 고향을 찾아 가족들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이동을 한다. 나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꼬박꼬박 귀성 대열에 합류했다.

본가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형제, 조카들을 만나 가족으로서 정을 나누었다. 고향 친척이나 친구들과도 웃음꽃 피우는 한때를 보냈다. 일상을 벗어나 그리운 사람들과 회포를 풀면서 명절 기분을 냈다.

고향을 오고 가는 길이 정체되어 시간이 걸려도 정다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잠시나마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를 즐김으로써 새로운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시가와 처가에서 따뜻함이 넘치는 분위기를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설날이 나에게는 마음을 훈훈하게 한 명절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일이 있다. 부모님은 생전에 으레 설날이 가까워지면 언제쯤 본가에 내려오는지 물으셨다. 나는 빨리 가서 늦게 오고 싶었지만, 아내는 늦게 가서 빨리 오고 싶어했다.

명절이 되면 본가에 머무르는 시간 문제로 아내와 본의 아니게 의견 충돌이 잦았다. 아내가 그러는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자식과 손자녀를 손꼽아 기다리는 부모님 마음도 헤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치를 보며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잘 알기에 적당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곤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손이 빠르고 야무져서 집안일을 미루지 않고 제때제때 잘 처리한다. 명절에 본가에 가서도 자기가 할 일은 알아서 깔끔하게 잘했다. 그런데 어머니와 마음이 통하지 않아 힘들어했다. 어머니가 좀 일찍 마음을 여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었다면 아내도 더 살갑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도 아내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편하게 이야기하고 귀성길에 오를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서로 마음을 나누어서 어머니와 아내가 오순도순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바랐으나 인생살이가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미묘한 불편함에 속앓이를 했고, 나는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나름대로 노력하였으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는 마음이 누그러지셔서 아내와 정답게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된 것은 다행스러웠다.

결혼하고 명절에 시가를 가거나 처가를 가면 가정생활의 풍습이 다르거나 가족들의 성향을 잘 몰라서 새로운 가족 구성원으로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결혼 초기부터 남편은 아내가 시가 가족 분위기에 잘 어울리도록 마음의 배려가 필요하다.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가 자연스럽고 편해야 가족 전체가 화목해지는 것 같다.

남편이 처가에 갔을 때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쭈뼛쭈뼛하게 있으면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고 처가의 풍습에 녹아들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새로운 가족으로서 며느리와 사위를 맞이하는 시부모와 처부모의 따뜻한 마음이 결국 아들과 딸의 가정 평화로 이어진다.

형제들 간에 이해와 배려로 우애를 다지는 명절이기를

그리고 명절은 형제들이 만나서 우애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족 문제를 의논하는 과정에서 불편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가까운 지인 중에 초기 치매 증상이 있는 노모를 모시는 분이 있는데, 지난 추석 명절에 노모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들 간에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지인은 노인 요양보호사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몇 시간을 제외하고는 노모를 모시는 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노모의 병세가 깊어지면 어떻게 모실지 걱정이라며 이번 설에 형제들이 모이면 다시 의논해 보겠다고 하는데, 형제들 간에 서로 생각이 달라서 또 다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했다.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점점 거동이 불편해지자 조금이라도 편하게 모시기 위해 명절에 형제가 모일 때마다 의논하였다. 다행히 우리 형제는 큰 마찰 없이 여건에 맞추어 역할을 나누기로 하여 본가 가까이에 사는 누나가 거의 매일 어머니를 보살피고, 형님과 나도 틈틈이 본가에 들렀다.

고향 마을에 거주하는 요양보호사의 도움도 받았다. 어머니의 생활비와 요양비,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가정 형편이 좀 나은 내가 많이 부담했다. 가족 문제는 가족 모두가 서로 배려하고 합심하여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어느 한 사람에게 부담이 가중되면 형제간의 우애는 금이 가고 즐거워야 할 명절 분위기는 깨진다.
 
 필자가 아들딸을 보기 위해 예매해 놓은 서울 수서행 열차 승차권이다.
ⓒ 곽규현
   
9년 전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본가마저 없어진 데다, 장인 장모님도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내가 설 명절에 이동하지 않은 지도 몇 년이 흘렀다. 아들딸은 어느덧 장성하여 서울로 떠났다. 지난 몇 년 동안은 명절마다 서울에 사는 아들딸이 내려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적적함을 달랬다.

이번 설에는 아들딸이 집으로 내려올 수 없는 사정이 있어 우리 부부가 역귀성을 하려고 한다. 오고 가는 불편이 좀 있지만 가족 간에 얼굴 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즐거움이 훨씬 크지 않은가. 가볍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으려 한다.

음력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설날, 가족 간에 소외되거나 마음 상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따뜻한 떡국을 나눠 먹으며 화목하고 행복한 설을 쇠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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