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진 업계 반발에 꼬리 내린 공정위…‘플랫폼법’ 사전 지정 재검토
중소기업·소상공인 안정적 기반 구축
소비자 권익 보장…디지털 집중 점검
대기업집단 범위 합리적으로 정할 것
정부가 플랫폼 시장 공정거래규범과 문화를 정립·확산하고 민생 안정·혁신을 지원하는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을 사실상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 업계와 주된 갈등이었던 ‘사전 지정’ 방식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8일 서울 성수동 소재 문화복합공에서 ‘함께 뛰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살맛 나는 민생경제’를 주제로 개최한 민생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정위 핵심과제를 발표했다.
공정위는 플랫폼에 대해 국내·외 업계와 이해관계자와의 폭넓은 의견수렴·소통을 통해 합리적 규율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전날 브리핑을 열고 “사건 지정 제도의 다양한 대안을 열어놓고 학계나 전문가 등의 여러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지정 제도를 폐기하겠다는 건 아니고 다른 대안이 있는지 추가로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플랫폼법은 공정위가 매출과 이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거대 플랫폼 기업을 이른바 ‘플랫폼 재벌’로 지정해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사우대·최혜대우·멀티호밍(자사 플랫폼 이용자에게 경쟁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행위)·끼워팔기 등 4대 반칙행위가 적발되면 이를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플랫폼법 제정을 마지막 ‘골든타임’이라는 각오로 제정에 나서고 있다. 독과점 플랫폼의 폐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다.
공정위는 일단 학계와 관련 전문가 위주로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사전 지정하지 않고 대형 온라인플랫폼에 대한 공정거래법 위반 판단 시일을 단축할 방안을 수렴하기로 했다.
플랫폼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폭넓게 소통하고 의견수렴을 통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업계와의 충분한 소통 없이 플랫폼법이 추진 중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다.
발표시점은 명확하지 않다. 공정위는 최근까지도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 플랫폼법 세부 내용을 두고 최종 협의를 진행해 왔다. 이르면 이달 중 플랫폼법 정부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법안 발표가 임박한 상황에서 추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와 입법과 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정위는 다른 결제수단보다 높은 수수료율과 긴 정산주기로 인해 소상공인 부담이 큰 모바일상품권 관련 거래 관행을 개선할 방침이다.
아울러 숙박 애플리이케이션(앱) 입점업체에 큰 부담이 되는 광고비 경감을 위해 상생안 마련을 지원한다.
버티컬플랫폼(특정 상품군에 특화한 플랫폼)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하고, 음원 스트리밍, 동영상 광고 등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수급사업자 대응 매뉴얼 마련…CVC 관련 규제 완화
공정위는 중소기업 피해가 우려되는 업종을 중심으로 다양한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건설분야에서 지적돼 온 부당특약 사법상 효력을 무효화하고(하도급법 개정), 불합리한 유보금 설정을 통한 대금 미지급 등 건설업 특유 불공정관행을 중점적으로 점검한다.
하도급 업체가 대금을 못 받는 사태를 막기 위해 건설 하도급 지급보증 등 수급사업자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보급할 계획이다.
또 납품단가 연동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연동지원본부를 통한 맞춤형 컨설팅 등 제도안착에도 나선다.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해 기술유용 피해기업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도 법원에 직접 법 위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를 하도급법에 도입한다.
자동차부품, 에너지설비 등 주요 산업기자재 분야에서 중소·벤처기업 성장을 막는 부당한 기술자료 요구, 기술자료 제3자 제공행위 등을 집중 감시한다.
웹툰·웹소설 분야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불공정약관을 시정하고, 수익이 정당하게 배분되도록 표준계약서 제·개정도 추진한다.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을 늘리는 등 점주에게 불리하게 거래조건 변경 시 점주와 협의를 거치도록 의무화하고 필수품목 가격산정방식 등을 구체화한다.
중소 납품업체에 대한 판촉비 부당전가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신설하고, 정액과징금 한도를 상향할 방침이다.
피해기업이 손해배상소송에서 손해의 증명, 손해액 산정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공정위가 보유한 자료를 법원에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아울러 국가 재정 손실을 야기하는 공공분야 입찰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입찰담합징후분석시스템(BRIAS)을 개편할 계획이다.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 CVC 외부출자는 40%에서 50%로, 해외투자는 20%에서 30%로 상한을 확대한다.
상품 용량 변경 알리지 않으면 부당행위…SNS 집중 점검
소비자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가격을 유지하면서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제품 용량 변경 사실을 소비자에게 사전 고지한다. 상품 중요사항이 변경됐음에도 해당 사실을 알리지 아니하는 행위를 사업자의 부당행위로 지정했다.
신유형 거래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예방을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켓 전자상거래법 준수 여부, 숏폼(짧은 영상) 뒷광고 점검을 강화한다.
또 신발, 화장품 등 주요 전문 상품몰 다크패턴(눈속임 상술) 자진시정을 유도한다.
플랫폼이 법 위반 의심 사업자 거래를 즉시 중단할 수 있도록 임시중지명령 발동요건을 완화한다.
소비자 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도 나섰다.
소프트웨어로 인한 사고의 원활한 배상을 위해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하고, 안전관리 체계 확립을 위해 소비자안전기본법 제정을 추진한다. 성형, 휴대전화, 안마의자 등 일상에 스며든 부당광고 등도 밀착 감시할 예정이다.
대기업집단 제도 개선…TRS 탈법행위 규율방안 마련
공정위는 TRS(총수익스와프) 등 파생상품을 사실상 채무보증처럼 이용하는 규제회피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탈법행위에 대한 효과적 규율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경제 환경 변화를 반영해 대기업집단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한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기준을 현행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서 ‘GDP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변경한다.
금융산업 변화에 발맞춰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제도를 선진화한다. 대기업 금융·보험사가 핀테크 등 금융 밀접업종 영위회사에 대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민·기업 목소리를 듣겠다”며 “관계 부처와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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