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 육아휴직만 길어요?" 남녀 구분 없애는 선진국[K인구전략]
美·유럽 등 고소득 국가일수록
남녀 노동 참여율 격차 적어
해외선 성중립 육아휴직 이슈화
유연근무제 부작용 대책 마련 숙제도
편집자주 - 대한민국 인구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기업에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로 평가하는 기업 내 분위기와 가정 친화적인 문화가 곧 K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이기 때문이다. 저출산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하지만, 적어도 일터에서의 부담감이 걸림돌이 돼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시아경제는 가족친화 정책을 선도하는 기업을 찾아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지점을 짚고, 현실적인 여건이 따라주지 못하는 기업과는 다각도에서 함께 방법을 찾아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업부터 변하도록 독려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도 분석한다. 금전적 지원보다 심리적 부채감을 줄여주는 회사의 문화와 분위기가 핵심이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측면에서의 대안을 제시한다.
일·가정 양립은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핵심 화두다. 여성의 노동 시장 진출과 맞벌이 부부 확대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여성에 쏠린 육아 부담을 덜어주면서 부모가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주요국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다. 특히 성별 구분 없이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유연근무를 활용해 부모가 스스로 일과 삶을 구성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은 고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여성의 노동 시장 참여율은 2019년 기준 세계 평균 52.9%로 집계, 30여년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왔다.
남성(78.5%)에 비하면 30%포인트가량 낮지만, 주요국에서는 그 격차가 과거에 비해 크게 좁혀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고소득(High income) 국가의 여성 노동 시장 참여율은 67.3%로, 다른 소득군에 비해 높다. 남녀 노동 시장 참여율 격차로 보면 북미(10%포인트)와 유럽(13.8%포인트), 동아시아·태평양(14%포인트) 지역이 세계 평균(25.6%포인트)보다 적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로 자연스럽게 맞벌이 부부도 증가세를 보인다. 이미 2010년대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녀가 1명 이상인 가정 중 남성이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비중은 셋 중 하나도 채 되지 않았다.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등에서는 부모가 주당 30~39시간 일하는 맞벌이 가구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았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아버지가 주당 40시간 이상 근무하고 어머니가 주당 3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복합적인 형태의 맞벌이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4월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이 높은 미국의 경우 남성이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정의 비율이 1972년 49%에서 2023년 23%로 절반 이상 줄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 쏠려 있는 것은 국내나 해외나 마찬가지다. 육아휴직 제도 사용률만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WB에 따르면 1970년에는 190개국 중 13개국이 남성 육아휴직(출산휴가 포함)을 허용했지만, 2021년에는 114개국으로 확대됐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 자체를 도입한 국가는 크게 늘었으나 2021년 기준 육아휴직 평균 사용 일수는 남성이 21일로 여성(191일)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여성이 가정의 생계에 기여하는 바가 커져도 남성보다 가사·육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육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상 과제로 떠올랐다. 육아 부담에 출산을 꺼리는 젊은 부부가 늘면서 출산율 하락이 이어지자, 인구 감소를 우려한 주요국 정부가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각국 정부는 정책을 통해 무상 보육 확대 등을 추진하는 한편, 기업이 주체가 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도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생산시설 건설에 지원금을 주는 조건 중 하나로 보육시설 설치 의무를 제시한 것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한 조치였다. 미국은 출산휴가·육아휴직을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몇 안 되는 OECD 회원국인 만큼 보육시설 제공은 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복지로 꼽힌다.
"엄마 육아휴직만 길어야 하나요?"…해외선 성 중립 육아휴직 도입 기업↑해외에서는 최근 ‘공동 육아휴직(shared parental leave)’ ‘평등한 육아휴직(equal parental leave)’ ‘성별 탈피(de-gendering)’ 등 성 중립 육아휴직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남녀를 구분 지어 육아휴직을 제공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육아 부담을 부모가 함께 질 수 있도록 육아휴직 등 제도를 누가 사용할지 선택권을 당사자들에게 주는 것이다. 1990년대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에서 여성만 사용할 수 있던 육아휴직 제도에 남성의 의무 사용 비율을 할당하면서 확산한 개념이다.
유급 출산휴가가 없는 미국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러한 성 중립 육아휴직제 도입이 확산하고 있다. 복지가 잘 갖춰진 구글, 핀터레스트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뿐 아니라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아온 월가 기업도 이를 속속 도입했다.
예를 들어 스탠더드차타드(SC)그룹은 지난해 9월부터 성별 구분 없이 전 세계 직원이라면 누구든 유급 출산휴가를 20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2017년부터 여성에게만 지급했던 20주 유급 출산휴가를 지난해 9월1일 남성으로 확대해 배우자 출산휴가의 기간을 동일하게 맞춘 것이다. 여성의 경우 육아휴직은 최대 2년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출산휴가의 경우 부모가 된 직원이라면 성별 구분 없이 100% 급여를 보장받고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로 인해 SC그룹의 국내 계열사인 SC제일은행은 배우자 출산휴가(입양 포함)를 기존 10영업일에서 최대 100영업일로 확대, 지난해 12월 기준 3명의 남성 직원이 아이 출산 시점에 맞춰서 배우자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성 중립 육아휴직제는 실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영국 최대 생명보험사인 아비바는 2017년부터 부모 성 중립 육아휴직제를 사용해 영국 내 직원들 대상으로 기본급 전액을 받고 26주 휴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성별은 물론 출산, 입양 등 부모가 된 방법 등을 제한하지 않았다. 이후 2018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을 살펴보면 총 2500여명 중 절반인 1227명이 남성이었고, 남성 육아휴직 대상자의 99%가 이 제도를 이용했다. 또 육아휴직을 두 번 이상 사용한 직원 268명 중 남자 직원이 131명이나 됐다.
영국은 2015년부터 법적으로 출산휴가를 부모가 나눠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했으나 이를 실제 남성이 사용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아비바 사례는 정부 정책에 기업의 실행 여부가 더해질 때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점을 보여준다.
육아 부담을 남녀 구분 없이 주양육자와 부양육자로만 나누는 해외 기업들도 있다. 덴마크의 세계적인 기업인 레고의 경우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주양육자와 부양육자를 구분해 주양육자의 경우 26주간 유급 출산휴가를 받고 부양육자는 8주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주양육자와 부양육자의 구분은 부모가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유연근무제가 또 다른 성차별이 되지 않으려면육아휴직 이후 육아 과정에서는 시차출퇴근제, 단축근무 등 각종 유연근무제가 주목받고 있다. 육아를 이유로 일자리를 내려놨던 여성 직장인들이 단시간 근로가 가능해지거나 자신의 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해 육아 문제를 해결하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도입했던 유연근무제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미국 등을 중심으로 유연근무제에 대한 요구가 커 이를 유지하는 기업이 국내보다 많은 상황이다. 미국은 법적으로 육아휴직이 제공되지 않는 만큼 기업의 이러한 제도가 직장을 선택할 때 더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유연근무 확산 영향으로 미국은 지난해 6월 기준 5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 비중이 사상 최대인 70.4%까지 치솟았다.
다만 학계에서는 육아를 위해 선택한 유연근무가 직장 내 양성평등에는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서서히 등장하고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무실이나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에 비해 성과 평가를 높게 받을 수 있고, 승진 경쟁에서도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을 담은 논문도 나온 상태다. 그러나 동시에 유연근무 하는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률이 높아져 가정 내 양성평등이 개선된다는 분석도 나오는 등 이와 관련한 학계 연구가 활발한 상황이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유리·이현주·정현진·부애리·공병선·박준이·송승섭 기자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 달에 150만원 줄게"…딸뻘 편의점 알바에 치근덕댄 중년남 - 아시아경제
- 버거킹이 광고했던 34일…와퍼는 실제 어떻게 변했나 - 아시아경제
- "돈 많아도 한남동 안살아"…연예인만 100명 산다는 김구라 신혼집 어디? - 아시아경제
- "일부러 저러는 건가"…짧은 치마 입고 택시 타더니 벌러덩 - 아시아경제
- 장난감 사진에 알몸 비쳐…최현욱, SNS 올렸다가 '화들짝' - 아시아경제
- "10년간 손 안 씻어", "세균 존재 안해"…美 국방 내정자 과거 발언 - 아시아경제
- "무료나눔 옷장 가져간다던 커플, 다 부수고 주차장에 버리고 가" - 아시아경제
- "핸들 작고 승차감 별로"…지드래곤 탄 트럭에 안정환 부인 솔직리뷰 - 아시아경제
- 진정시키려고 뺨을 때려?…8살 태권소녀 때린 아버지 '뭇매'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