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협의 없었다? 낯뜨거운 '파우치' 질문... 결국 '다큐쇼'
[임병도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이 사전 녹화한 'KBS특별대담-대통령실을 가다'는 공개 전부터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 표명이 어느 정도 수준을 이뤄질지에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러나 7일 밤 10시부터 공개된 대담 영상에서 윤 대통령은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공작"이란 여당과 대통령실의 입장만 되풀이했습니다. 사과 역시 하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김 여사 옹호 발언입니다.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다. (가방을 준 최재영 목사가) 자꾸 오겠다고 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된다. 저라면 조금 더 단호하게 대했을 텐데 제 아내 입장에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되고, 하여튼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는 "국민께서 직접 제 입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주길 바랄 수 있겠지만, 또 나올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도 있다"면서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은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 안 하게 조금 더 분명하게, 단호하게 선을 그을 땐 선을 그어가면서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로 사과를 갈음했습니다.
이날 윤 대통령은 '가방을 왜 받았는지' '그 가방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김영란법 위반 여부' 등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야당이 의혹을 제기했던 어떠한 사안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입장 표명을 마쳤습니다.
▲ KBS 박장범 앵커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파우치 논란'이라고 말했다. |
ⓒ KBS 보도 갈무리 |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이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겠다는 불안감은 박장범 앵커의 질문에서부터 감지됐습니다.
박장범 앵커는 "최근에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마한 백이죠"라고 운을 띄웠습니다. 사전에 어떠한 질문지도 없었다는 대통령실의 설명과 다르게 명품백 수수 의혹을 의도적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대목입니다.
박 앵커는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에 관한 질문 두 개를 윤 대통령에게 던졌습니다. 첫 번째는 "대통령 부인의 신분인 상태였는데 어떻게 저렇게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더군다나 시계 몰래카메라를 착용한 전자기기를 가지고 대통령 부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을까 이거는 의전과 경호의 문제가 심각한 거 아니냐"였습니다.
두 번째는 "여당에서는 이 사안을 정치공작이라고 부르면서 김 여사가 정치 공작의 희생자가 됐다고 얘기하는데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두 질문의 공통점은 여당이 주장했던 '몰카'와 '정치공작'을 복사해서 붙였다는 점입니다. 질문지는 없었지만 여당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질문한 수준에 그쳐, 사전에 협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만 더 짙어졌습니다.
▲ 개고기 식용금지법안 질문 전에 보여준 사진. 윤 대통령 부부가 시각장애인 안내 후보견과 함께 있는 모습이 담겼다. |
ⓒ 유튜브 갈무리 |
이날 대담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박장범 앵커가 용산 대통령실을 함께 돌아다니며 소개하는 장면도 나왔습니다. 박 앵커는 대통령 부부가 시각장애인 안내 후보견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사진만 봐도 대통령 부부의 어떤 애견인으로서의 모습이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후 "개고기 식용금지 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면서 "김건희 여사도 댁에서 같이 강아지를 많이 키우시고, 개고기 식용 금지법안 같은 법안을 얘기할 때는 김건희 여사 조언도 듣고 그러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경제·외교·안보 등 질문거리가 산더미처럼 있는데도 대통령 부부가 개와 찍은 사진을 소개한 뒤 개고기 식용 금지법안을 연결하는 구성을 보였습니다.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질문은 그 이후에 나왔습니다. 김 여사에 대한 이미지를 호감도 있게 만든 뒤 질문하려는 의도라는 평가가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여러 차례 국회에 한 2년 정도 유예하자 말씀을 하셨는데 결국은 국회에서 이제 그 말이 통하지가 않았습니다. 입법부 입법권력은 국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갖고 있는데 이게 바로 윤석열 정부 초반에 한 특징 여소야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답답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죠."
박장범 앵커는 "국회에 말이 통하지 않았다" "답답한 상황"이라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마치 야당 탓인 듯 질문했습니다. 이는 대통령의 시각이지 권력자를 감시해야 하는 언론의 질문으로는 부적절했습니다.
김효은 새로운미래 선임대변인은 논평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대담은 돈은 많이 쓰고 흥행에 참패한 지루한 90분짜리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라며 "국민은 안중에 없는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 1인의 홍보대행사가 된 공영방송을 봐야 하는 국민은 좌절한다"고 비판했습니다.
▲ 2019년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특별대담에서 송현정 KBS 기자는 '독재자'라는 단어를 인용해 질문했다. |
ⓒ KBS 보도 갈무리 |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기 특별대담에서 인터뷰를 맡은 송현정 KBS 기자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지금 대통령께 독재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독재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느냐"라고 질문했습니다. 단어의 선택만 봐도 2024년 박장범 앵커의 질문이 얼마나 편파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2019년 대담 당시 송 기자는 문 대통령의 말을 여러 차례 끊으며 질문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박 앵커는 윤 대통령의 답변을 한 번도 끊지 않았습니다. 똑같은 KBS의 대통령 특별대담이었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입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KBS와 특별대담을 하고 있다. |
ⓒ 대통령실 제공 |
"이 정치 분야 질문 들어가니까 이제 대통령께서 좀 이렇게 답답하게 느끼시는 것도 저도 이제 느낄 수 있는데 국민들이 후보 시절에 봤던 혹은 검찰총장 시절에 봤던 승부사 윤석열 당시 정부 정권에서 좀 이렇게 핍박을 받았다 하더라도 역대 정부에서 계속 그랬잖아요.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사람을 향해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국민들에게 각인이 되고 지난 정부에서 상당히 고초를 겪으실 때도 국회 청문회에서 법무부장관을 향해서 '예전엔 안 그러는데 왜 저한테 지금 이러십니까'라고 얘기하셨는데 이 한마디가 진심이 느껴졌고 속 시원한 메시지고 무슨 말하는지 알겠다라는 국민들이 많았거든요. 그 시원한 승부사 윤석열 정치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너무 조심하시는 거 아니에요?"
박장범 앵커는 대담 내내 대통령 친화적인 발언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승부사 윤석열' '핍박을 받았다' '상당히 고초를 겪으실 때도' '진심이 느껴졌고' 등의 표현은 잘 각색된 누군가의 일대기같은 인상입니다. 다수 언론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조차 없는 마당에 국민을 대신해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언론의 표현과 태도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입니다.
이날 대담 앞부분에 박장범 앵커가 "가끔씩 기자들과 질의응답하는 기회를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는 국민들의 의견도 있다"고 말하자 윤 대통령은 "우리 언론과 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종종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여당 편에 서서 듣기 좋은 질문을 하는 대담이 아닐 것입니다. 'KBS특별대담 - 대통령실을 가다'는 윤 대통령이 왜 여러 언론사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신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는, 다큐를 가장한 쇼 영상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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