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르포]"美中 경제 가치사슬 끊어지지 않았다"
中 개혁개방후 칭다오 등 천지개벽 실감
韓 기업들 대거 철수하며 관계 소원
中 경제 어렵지만 5% 성장 지속
코트라 칭다오 무역관장
"韓 미래 경제 위해 계속 관심" 당부
인천항의 중국행 관문이 근래 바뀌었다. 코로나가 한창인 지난 2020년 6월, 약 6,000억을 쏟아부은 최첨단 국제여객항이 송도에 새로이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중국의 강력 봉쇄정책과 한·중 관계 악화로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과거 인천항 주위 대형마트엔 중국인 쇼핑객들로 넘실거렸지만, 이제는 그러한 호황은 찾아보기 힘들다. 웨이하이(威海)로 가는 정원 700명의 여객선엔 중국인 상인 중심으로 100여 명 채웠을 뿐, 한국인은 찾기 힘들다.
산둥(山東)성은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중국이다. 인천, 평택, 군산 등지에서 웨이하이, 석도(石島), 옌타이(煙台), 칭다오(靑島)로 초대형 화물여객선이 정기적으로 운항한다. 과거 여객선에 허용됐던 선상 비자도 막혔고 비자 발급 비용도 적지 않아 중국행을 고려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겨울 바닷바람이 차다. 저녁 7시에 출발한 여객선은 아침 9시가 되니 웨이하이 항에 도착했다.
◆한국과 깊은 인연
관광객 관점에서 산둥성은 한국과 지나치게 가까운 게 단점이다. 비행기로 1시간 10분 남짓이면 도착하니 말이다. 그 때문에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1순위이고 기업인은 산업인프라가 압도적인 광저우가 가장 선호된다. 그러나 중국 개방 이후 역사를 고려하면 산둥의 중요성은 무척 크다. 과거 한·중 경제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투자의 절반 이상이 산둥, 그것도 칭다오에서 진행되었을 정도다. 섬유, 신발, 식품, 가전 등 산둥성의 노동력 없이는 한국의 발전이 손쉬웠을 리 없다. 그러나 이제는 흘러간 옛 가락이 되었다. 기업인들이 대거 중국서 철수하며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다.
청나라 말기 북양함대의 본진이 머문 웨이하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군사 항구다. 수도 베이징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이자 한반도와 일본을 견제하는 역할이다. 서해를 말기 북양함대의 본진이 머물렀고, 지금도 발해와 서해를 지키는 관문으로 전략적으로 비밀이 많은 도시다. 한국과 가깝다는 증거는 거리 간판에서 보이는데, 종종 한글 병기 간판이 눈에 띈 것이다.
웨이하이를 떠나 인근 역사도시 옌타이로 향한다. 고량주로 유명한 옌타이는 한국인과 인연이 깊다. 고려말 재상 정몽주가 명나라에 갈 때 이곳을 거쳤을 정도. 불과 10년 전만 해도 고속열차는커녕 일반열차도 귀했지만, 어느새 산둥의 주요 지역이 첨단 고속열차로 촘촘히 연결되었다. 서울서 모바일로 중국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별다른 불편 없이 12시에 기차를 타, 30분 만에 옌타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요즘 중국에선 현금을 사용할 일이 크게 줄었다. 식당에서도 QR코드로 웨이터 없이 주문하고, 택시도 디디추싱(滴滴出行)이라는 온라인 앱으로 잡고, 대금 결제도 알리바바나 웨이신 등의 모바일 시스템을 쓴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택시 기사들이었는데, 모두가 친절하고 정확한 정보로 외국인을 응대한 것이다. 이 도시의 대표적 관광지인 조양가(朝?街)로 향한다. 옌타이는 이미 1862년 개항장이 설치된 도시답게 여러 역사유적이 산재해 있고, 그 때문인지 관광객도 적지 않다.
다시 고속열차에 올라타고 최종 목적지 칭다오로 향한다. 1시간 15분 만에 대략 230km 거리의 반도를 가로지르는 행로. 해당 고속철은 거리가 짧은 탓에 최고속력 250km를 기록하더니 차근차근 속도를 낮춘다. 중국의 고속철 연결망은 우리가 상상 이상으로 거미줄처럼 촘촘히 확장되었다. 2008년에 시작된 중국의 고속철 굴기(屈起)는 오늘날 4만km 이상(한국은 약 1천 km)으로 늘어나, 중국과 아세안 대륙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했다. 이른바 ‘고속철경제’다. 대륙의 허리에 자리한 산둥은 고속철 경제의 중심축을 이룬다.
◆관광도시에서 경제도시로
칭다오 북역은 예전에 상상치 못했던 거대함과 화려함으로 외지인을 놀라게 한다. 20년 전 인구 300만의 농업도시 칭다오는 진즉 사라졌고, 화려한 빌딩의 스카이라인에 둘러싸인 인구 900만의 초대형 도시로 거듭난 것. 2015년 첫 개통한 지하철은 어느새 16호선까지 공사가 진행 중일 정도. 오늘날 칭다오의 풍광은,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부산의 해운대나 인천의 송도보다 크고 다이내믹해졌다. 과거 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과 비교과 불가능한 ‘2선 도시’로 분류된 칭다오는 최근엔 ‘준 1선 도시’로 한 단계 격이 올랐다.
이 거대한 빌딩 숲을 어떤 비즈니스가 다 차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바깥에서 우려하는 것만큼 허장성세는 아닌 듯싶다. 산둥성의 자랑 칭다오 맥주와 하이얼과 하이센스 등의 가전회사, 연간 1억 명에 달하는 외지 관광객, 고속철로 촘촘히 연결된 중국 내수 비즈니스의 활기가 이곳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4.5%, 거대한 규모의 경제를 고려하면 아직도 그 성장세는 놀랍기만 하다.
한국 기업의 현지 나침판 역할을 하는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칭다오무역관을 찾았다. 25년 넘게 중국 시장을 파고든 황재원 무역관장은 중국경제의 리오프닝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역할이다. 그는 현재 중국의 상황은 과열된 부동산 경기를 연착륙시키면서 동시에 코로나 침체를 극복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의 금융부분 개혁과 공동부유라는 사회적 과제도 전 세계인의 관심거리란다. 과연 중국은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도,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낼 수 있을까. 황 관장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위해 중국 시장의 변화를 면밀하게 관찰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 “여러 갈등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미국의 긴밀한 가치사슬은 여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다”고 중국 시장에 관한 관심을 당부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5% 가까운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지역은 중국과 아세안이 전부인 상황. 이 지역 모두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적으로도 긴밀하게 연결된 지역이라는 점에서, 정세의 굴곡과 무관하게 배척하자 말아야 하는 배경이 된다.
칭다오의 중심엔 1919년 제국주의에 반기를 든 5.4운동 기념광장이 있고, 양쪽 해안가로 10km가 넘는 장대한 해안 관광지가 펼쳐진다. 바다로 향한 50층 이상의 고층빌딩 숲은 낮엔 세련된 첨단경관으로 밤엔 화려한 빌딩조명쇼로 관광객을 끌어모은다. 바다 공원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은 틱톡 영상을 촬영하고 음악인들은 거리공연을 즐기며 대도시 생활을 즐기고 있다. 겉으로 보는 중국인의 일상생활은 서울이나 도쿄와 별 차이 없는 평안하고 안락한 모습이다. 이번 여정에서 확인한 건, 1) 중국의 높아진 물가 2) 편리해진 모바일 생활 3) 전국의 고속철도 연결 4) 여전한 성장 기조였다. 유럽도, 미국도, 중국도 각자의 내부 모순과 격렬히 충돌하며 새로운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내구력’과 ‘끈기’가 서구의 견제를 극복할 것인지가, 미래학자들의 과제가 된다.
정호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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