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마리 잡겠다더니 33마리 잡았다…'꿩과의 전쟁' 허무한 결말, 왜

김정석 2024. 2. 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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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16일 강원 강릉시 남대천 갈대숲에서 봄나들이를 나온 꿩(장끼)이 카메라에 잡혔다. 연합뉴스

‘꿩과의 전쟁’을 선포했던 경북 울릉군이 59일 동안 총력전을 펼쳤지만 꿩 33마리 잡는 데 그쳤다. 당초 “1500마리를 잡겠다”고 선언했던 것이 무색한 결과다.

8일 울릉군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이달 7일까지 59일간 유해 야생동물인 꿩 포획 기간을 진행했다. 육지와 약 210㎞ 떨어진 울릉도는 ‘농가 기피 대상 3종’으로 꼽히는 고라니와 멧돼지·까치가 서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꿩이 활개를 치면서 농작물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포획단 구성해 운영


꿩은 울릉도 봄철 고소득 특산작물인 명이나물을 비롯해 부지깽이·미역취 등 새순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울릉군은 이 기간 꿩 포획 목표를 1500마리로 잡고 엽사 16명으로 포획단을 구성해 운영에 들어갔다.

2022년만 해도 꿩 포획단은 포획 기간 806마리를 포획했다. 하지만 올해는 목표의 2% 수준에 불과한 성과를 거둔 이유는 뭘까.

성과가 미미한 데 가장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꿩 자가소비(식용)’ 전면 금지한 조치다. 이전까지 엽사들은 잡은 꿩을 직접 조리해 먹거나 유통해 왔다. 울릉군도 엽사들에게 꿩 자가소비를 허용했다.

경북 울릉군에서 포획당한 꿩 사체. 울릉군은 엽사 16명 규모 포획단을 운영해 '꿩과의 전쟁'을 벌였다. 사진 울릉군

하지만 울릉군이 꿩 자가소비가 위법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이번 포획 기간에는 자가소비를 금지했다. 앞서 정부는 2020년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멧돼지와 꿩 등 야생동물 식용을 전면 금지했다. 야생동물 사체는 매몰 또는 랜더링(고온·고압 처리)해 처리해야 하며 자가소비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자가소비’ 금지하자 포획량 급감


울릉군은 포획단으로 활동하는 엽사들에게 자가소비 금지 방침을 전달하고 대신 꿩을 포획하면 포상금으로 마리당 5000원을 주기로 했다. 그러자 포획단으로 지원한 엽사의 절반가량이 활동을 포기할 정도로 적극성이 떨어졌다.

또 꿩 포획 활동에 지자체나 경찰이 매번 동행할 수 없는 만큼 엽사들이 꿩을 포획하고도 이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자가소비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울릉군 관계자는 “울릉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수차례 포획단과 동행해 단속하기도 했지만, 매번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있어 엽사들이 제대로 포획 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완벽하게 단속하기가 어렵다”며 “이 때문에 이번 포획 기간 포획된 꿩 수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북 울릉군청 청사 전경. 김정석 기자

앞서 최근 5년간 울릉도에서 포획된 꿩은 2018년 134마리, 2019년 152마리, 2020년 383마리, 2021년 268마리, 2022년 806마리다.


“울릉도 특수성 고려를” 조례 추진


일각에서는 울릉도에 꿩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해 농가에 큰 손해를 끼치고 있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꿩 자가소비를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울릉도에는 애초 꿩이 살고 있지 않았지만 1980년대 한 주민이 식용과 관상용으로 수십 마리의 꿩을 키우던 중 태풍으로 우리가 망가지면서 꿩이 탈출해 섬 전체에 급속도로 늘었다. 꿩이 급속도로로 번식하게 된 것은 울릉도에 매나 독수리 같은 천적이 거의 없어서다. 울릉도에는 꿩 1만 마리 이상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울릉군은 보다 정확한 실태 파악을 위해 농가에 피해를 주는 동물들에 대한 개체수 조사와 생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울릉군 관계자는 “지자체가 조례를 정해 자가소비 등을 허용할 수 있다”며 “울릉도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조례 제정 등 절차를 거쳐 꿩 포획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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