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공연’ 고민 본격화…정작 정부는 외면 [리(re)스테이지③]

박정선 2024. 2. 8.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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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쓰레기 줄이기 넘어 본질적 문제 해결 나서야
아르코 '지속가능한 공연예술 창제작을 위한 안내서' 발간
공연계 기후위기 움직임에 관심조차 없는 문체부

국립극단의 ‘기후비상사태: 리허설’은 한 달 조금 안 되는 기간의 공연 이후 130톤의 폐기물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중 일반폐기물 3.5톤, 재활용 폐기물 126.2톤이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결실에서도 이 정도 폐기물이 발생했다면, 이 같은 노력이 없는 공연, 그리고 더 큰 규모의 공연에서는 얼마나 더 많은 폐기물, 탄소를 배출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빨간지붕 나눔장터 ⓒ국립극단

공연계가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지만 사실상 제작 현장에서 여전히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동반되는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큰 비용과 수고를 들여 만든 창작물이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공연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극단의 경우 재공연의 여부를 가늠하기 어려워 큰 비용을 투자해 소품과 의상·세트들을 무작정 보관해 둘 수 없고, 혹여 비용을 들였다 하더라도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도 마땅찮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공연 이후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국립극단의 공연 물품 무료 나눔 사업 ‘빨간지붕 나눔장터’, 공연 후 사용하지 않는 무대 소품과 세트 등을 나누고 구하는 커뮤니티 ‘공쓰재’(공연 후 쓰고 남은 무대 재활용)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나온다.

‘빨간지붕 나눔장터’는 첫 사업 당시 1570여개의 물품을 대상으로 해 최종적으로 940여개 물품을 민간 극단 49곳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극장 관계자는 “무료나눔으로 받은 세트나 소품을 공연 고유의 색깔과 맞지 않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한 번 재활용을 한 이후 결국은 다시 쓸모없는 물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본질적인 공연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장기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을 넘어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일종의 매뉴얼, 가이드북은 매우 중요한 지표다. 이미 영국에선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극장과 관계자들이 모여 ‘시어터 그린북’을 만들었고, 우리나라도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화예술부문의 지속가능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지속가능한 작품 제작, 지속가능한 공연 운영을 위한 노력과 실천 방안을 담은 안내서다.

안내서에는 △사용하지 않거나 줄이기(재활용되지 않거나, 많은 자원의 소비로 얻어지는

재료는 줄이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사용하기(한 번 쓰고 버릴 것이 아니라 되풀이해 사용할 수 있는 재료를 고르고, 구하고, 비축한다) △용도를 바꿔 사용하기(기존의 재료 중 손을 봐서 다른 용도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해 활용한다) △재활용하기(버려지는 폐기물에서 제작에 활용할 수 있는 재료를 탐색해 사용한다) △지역에서 자원을 확보하기(일손을 포함해 가능한 지역자원을 활용한다)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논의와 실행(위의 다섯 가지 방향의 구체적 적용은 모든 구성원이 논의에 참여해 협력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등 지속가능한 창제작을 위한 여섯 가지 기본 방향성을 제시했다.

지속가능한 공연예술 창제작을 위한 안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실천을 통해 얻은 효과와 어려움, 개선을 위한 제언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정리했다. 다만 다수의 공연 관계자는 아직까진 이를 ‘실행’으로 옮기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연예술 분야에 특화된 기준이나, 방법론적인 부분들을 제안하는 것은 분명 큰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현실적으로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거나, 에너지를 줄이기 위한 새로운 장비를 도입하는 등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추가적 비용과 또 다른 탄소발자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방법을 알면서도 무작정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당 가이드북을 접해보지도 못했다면서 “활자화된 안내서도 물론 도움이 될 테지만, 그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지속가능성 매니저’라는 새로운 영역의 인력이 배치돼 극장의 구조와 운영 그리고 작품의 창작, 유통까지 모든 과정에서 새로운 제안을 한다면 더 큰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최준영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은 이 안내서를 내놓으면서 “지금의 안내서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향후 공연예술 현장의 목소리가 더해지고, 과학적 측정 도구와 정확한 데이터까지 더해진다면 안내서와 사례집의 효용성은 더 커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이번 첫 안내서와 사례집이 공연예술의 현장에서 기후위기와 지속가능한 공연예술을 이야기하는 ‘재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문제는 정작 공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이 같은 공연계의 고민을 외면하는 식이다. 일부 국공립 극장에서 탄소절감을 위한 사업 계획안들을 발표하고, 민간 단체들은 친환경 소재의 MD를 제작하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상 본격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려면 정부의 지원과 관련 정책이 필요하다.

문체부는 공연계의 탄소 절감 움직임에 대해 “생소한 이야기”라며 사실상 관심조차 두지 않는 듯한 분위기다. 결국 공연계의 의미 있는 움직임들은 공연장 혹은 공연 제작사에서 자체적인 ‘선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정부의 지원 없이 추가적인 제작비 지출까지 감수하면서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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