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 무산 '경제·안보 vs 민영화' 충돌…매각 실기 우려

임철영 2024. 2. 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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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해진공 “경영개입·감사 불가피”
하림 컨 “최대주주 지위만 갖는 거래”
신속 재매각 '회의론' 속 실기 우려

국내 유일의 국적선사인 HMM의 매각 시도가 좌절됐다. 지난해 12월 20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의 팬오션-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요구한 경영관여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7주에 걸친 협상을 성과 없이 종료했다.

협상 일정을 한 차례 연장하면서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양측은 경제·안보 논리와 완전 민영화 논리 사이에 접점을 찾지 못했다. 앞으로 재매각 작업도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해운업황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의 대호황을 지나 본격적인 다운 턴(down turn)으로 접어든 데다, 최근 글로벌 해운동맹도 합종연횡에 나서는 등 전기를 맞고 있어 당분간 선뜻 HMM을 품에 안을 인수자가 나오기 힘든 환경인 탓이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7주간 이어진 HMM의 인수합병(M&A) 협상 과정에서 매각 측의 경제·안보 논리, 인수 측의 구조조정·민영화 논리가 팽팽하게 대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측의 경영 관여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라 협상 테이블을 여는 것조차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채권단을 대표한 산업은행은 협상 결렬을 선언하면서 "협상기간 동안 상호 신뢰 하에 성실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일부 사항에 대한 이견으로 최종 결렬됐다"고 발표한 반면, 하림 컨소시엄 측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하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날을 세웠다.

7주의 협상기간 양측은 ▲1조 6800억원 규모의 HMM 영구채 주식 전환 3년 유예 ▲정부 채권단 사외이사 임명권을 포함한 주주간계약 유효기간 5년으로 제한 ▲재무적투자자인 JKL파트너스의 지분 매각 제한 등 3가지 쟁점을 두고 치열한 샅바 싸움을 벌였다. 우선 하림 컨소시엄 측은 HMM 영구채를 보통주로 전환할 경우 산은·해진공의 지분율이 32.8%에 달해 하림(38.9%·전환시 지분율)에 못지않은 수준이 돼 온전한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만큼 3년간의 유예기간을 요청했다. 반면 매각 측은 배임 이슈와 함께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의 특성상 사실상 유일한 국적선사인 HMM에 대한 일정 수준의 경영개입 및 감시는 불가피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한 사모펀드(PEF) JKL파트너스의 '주식 보유 조건'과 관련해서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하림 컨소시엄 측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PEF의 특성을 고려해 5년간 주식을 보유해야 하는 조건에서 JKL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해진공은 경영 안정성을 들어 이를 반대했다. 하림 컨소시엄 측은 재차 지분 매각 제한기간을 3년으로 줄여달라고 요청했으나 수용되지 않으면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HMM 인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여의도 파크원타워에 있는 HMM본사.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예고된 결렬?…매각 측, 산은·해진공조차 온도차

금융권과 해운업계선 HMM 인수합병 결렬이 각 주체의 목표와 가치가 끊임없이 충돌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산은의 경우 악화된 건전성 관리를 위해 HMM의 매각이 시급했다. 산은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2021년 말까지만 해도 16.0%에 이르렀으나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론 13.75%까지 하락한 상태다. 지분을 보유한 한국전력(32.9%)의 손실, HMM(29.2%)의 주가하락이 각기 지분법 손실과 주가변동평가 손실로 이어져 BIS 비율을 끌어내린 것이다.

강석훈 산은 회장도 건전성 관리를 위한 HMM 매각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지난해 기자간담회에서 "HMM의 주가가 1000원, 한전의 적자가 1조원 움직이면 산은의 BIS 비율도 각 7bp(1bp=0.01%) 움직이고, 이는 1조8000억원가량의 자금 공급여력에 영향을 준다"면서 "산은 재무구조 안정화를 위해선 HMM 매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책금융기관인 산은으로선 국내 유일의 국적선사를 두고 경제·안보 논리도 배제할 수 없었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경영 관여라는 '안전장치'가 필요했다. 잔여 영구채를 보통주로 전환하지 않을 경우 배임 이슈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업계 안팎에서 자금력이 부족한 하림 컨소시엄 측이 HMM을 인수할 경우 내부 유보금을 활용할 수 있단 우려가 쏟아진 점도 발목을 잡았다.

채권단과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해진공과 해양수산부는 경제·안보 논리와 관련해 보다 강경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진공은 세계 4대 선사였던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산업 재건'이란 기치를 든 정책기관으로, 2018년 출범 이래 HMM의 대규모 선대 확장 등을 주도해 왔다.

그런 만큼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해진공은 인수 측의 잔여 영구채의 주식전환 유예, 5년 주식 보유 조건 완화 등에 대해 강경한 반대입장을 보였다. 충분한 체력을 갖춘 기업이 인수해야 하고,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경영개입이 불가피하단 것이다. 조승환 전 해수부장관 역시 지난해 우선협상자 선정에 앞서 "해운 산업 이해도가 높고 제대로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는 대안을 가진 기업이 맡아야 할 것"이라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하림그룹의 무리한 인수계획…산은, 해운업 구조조정 실기 우려

인수주체인 하림그룹은 자신보다 덩치가 큰 HMM을 삼키기 위한 자금 마련이 난제였다. HMM은 공정자산 기준 자산이 25조 8000억원으로 하림그룹(약 17조원) 보다 규모가 크다. 그러나 지난해 9월말 기준 하림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현금 및 현금성 자산, 단기금융자산)은 약 1조2900억원 수준으로 인수대금(6조4000억원)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며 승자의 저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배경이다.

이에 하림은 자회사 팬오션의 각종 자산을 유동화하는 한편 FI로 사모펀드 JKL과 손을 잡았다. 그런 만큼 매각 측의 '5년 주식 보유 조건'은 하림 컨소시엄 측으론 수용하기 어려운 카드였다. 결국 HMM이란 대어(大魚)를 삼키기에 역부족이었던 체급이 발목을 잡은 셈이 됐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해진공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국내 해운산업 정상화 및 진흥이란 단일한 목적하에 설립된 정책기관"이라며 "사실상 국내 유일의 컨테이너 선사라 할 수 있는 HMM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은 존재 이유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산은과 해진공은 HMM 매각을 재추진할 방침이지만 신속한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매각 건에서 드러났듯 산은·해진공의 존재가 원매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단 평가가 나온다. 중국 등을 중심으로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해운산업이 다운 턴에 돌입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2년 1월 초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5109.6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나, 이후론 내리막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서야 '홍해 사태'의 영향으로 2200선을 회복한 상태다.

특히 줄어든 물동량과 호황기 각 선사가 늘린 선복(적재용량)이 해운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국면이다. 국제선주협의회인 발틱국제해사위원회(BIMCO)는 올해 신조 컨테이너선 선복량이 전년 대비 41% 증가한 310만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일컫는 단위)에 이르고, 전체 선복량도 10%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해운사가 합종연횡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위협이다. 세계 선사 2위인 덴마크의 머스크(현 '2M')와 5위 독일 하팍로이드(현 '디 얼라이언스')가 내년부터 새로운 해운동맹을 창설키로 하면서다. 특히 하팍로이드는 HMM이 정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디 얼라이언스'에서 가장 큰 선복량을 가진 선사다. 각 해운동맹체가 카르텔 형태로 운영 중인 업계 특성상 이런 합종연횡 흐름은 HMM에게도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협상 결렬로) 이번 매각 절차는 모두 종료됐다"면서 "별도의 채권단 협의를 거쳐 새로운 매각 절차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사이클에 따라 고저차가 큰 해운업 특성상 튼튼한 체력을 갖춘 기업군이 아니면 신규투자 등이 어려운 만큼 기업들도 섣불리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며 "산은·해진공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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