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북클럽 3기] 소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버섯, 이게 말해주는 것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 <편집자말>
[김현진 기자]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생명체가 송이버섯이라고 한다. 인간이 신이 되길 꿈꾸며 만든 무기가 바로 핵폭탄이다. 핵폭탄을 갖게 되면서, 전쟁을 일삼고 기술 발전에 몰두하면서, 인간은 삶의 터전을 스스로 망가뜨렸다. 그런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섯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을 만났다.
▲ <세계 끝의 버섯> 송이버섯은 위기에 처한 인류에 대한 은유다. 소나무에게 헌신하고 숲을 재생하여 인간에게 선물이 되는 버섯처럼, 인간은 타종과 어우러져 서로를 먹이며 지구를 재생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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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로웬하웁트 칭의 <세계 끝의 버섯>(노고운 옮김, 현실문화)에는 송이버섯이 등장한다. 일본에서 귀한 선물로 취급되는 이 버섯은 관계에 대한 염원을 내포한다. 버섯을 따는 채집인들에게도 송이버섯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 태평양 연안 오리건주의 캐스케이드 산맥에는 송이버섯을 채집하며 살아가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베트남전쟁 참전용사나 자유주의를 꿈꾸는 백인 남성, 라오스, 캄보디아 출신 난민으로 구성된다. 이들 채집인에게 송이버섯은 자유의 상징("내가 만난 채집인 중 어느 누구도 송이버섯으로 얻는 돈을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지 않았다." - 146쪽)이자 선물이다.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가 전지구를 지배하며 경제성장을 가속화했다. 이는 과학 기술 발달과 맞물려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 극심한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진보의 개념이 더 이상 해피엔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되살아난다." - 21쪽,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그는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 가지 방식을 보여준다"(26쪽)며 '송이버섯'과 버섯을 둘러싼 숲, 인간을 탐색한다. 그렇게 <세계 끝의 버섯>에는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상황, 즉 안전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하기 위해 버섯과 함께 떠난" 인류학자의 이야기(22쪽)가 담겨 있다.
송이버섯, 공생과 재생 그리하여 선물이 되기
애나 칭의 연구은 캐스케이드 산맥에서 송이버섯 채집을 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시작한다. 일본에서 값비싼 선물이 되는 송이버섯이 북미 지역에서 채집되는 모순의 배경에는 역사와 문화, 경제적 서사가 얽혀 있다. 송이버섯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 그는 오래 되고 먼 여행을 시도한다.
일본에서 송이버섯이 자라던 시절, 버섯 채집이 계절을 향유하는 놀이였던 과거를 지나, 세계 대전 이후 패권과 자본의 흐름을 따라, 부(富)가 편중되고 생산자와 판매자가 분리되는 과정을 지난다. 그리고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업들이 형성한 글로벌 공급사슬을 통해 생산자로부터 상품이 소외되는 현재에 이른다.
한때 송이버섯이 자라던 일본의 숲은 목재 산업으로 벌목되어 폐허가 되었다. 선물을 위한 송이버섯은 북미에서 수입한 버섯으로 대체된다. 다시 캐스케이드 산맥으로 돌아가보자. 그곳의 송이버섯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플랜테이션(자본가가 현지인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특정 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경영 형태)' 숲으로 관리되다 목재 가격 하락으로 캐스케이드 숲 또한 황폐화되었다. 하지만 소나무는 헐벗은 숲에서 자란다. 활엽수가 풍성한 숲에서는 빛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자라는 데는 곰팡이가 긴요하다. 곰팡이는 토양을 분해해 소나무에게 필요한 양분을 제공하고 소나무는 곰팡이를 먹인다. 송이버섯은 곰팡이의 자실체다. 송이버섯은 소나무와 공생한다.
자본주의가 실패한 숲에서 소나무와 송이버섯의 재생이 이루어진다. 의도하지 않은 두 종(種)의 공생으로 숲은 다시 살아난다. 거기에 채집인이 합류하여 땅을 파헤치고 이는 소나무와 버섯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숲은 교란과 오염, 뒤얽힘, 불확정성으로 인한 마주침이 펼쳐내는 공생의 장소가 된다. 의도치 않은 패치의 연결에서 풍경이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전쟁과 탄압을 피해 숲으로 흘러든 채집인의 삶이 자본주의에 토대를 둔 삶과 거리가 멀듯 그들이 모으는 송이버섯 또한 상품이라고 불리기에는 예외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다. 채집인에게 송이버섯은 자유의 상징이다. 송이버섯은 여전히 '선물'로 소비된다.
송이버섯 또한 글로벌 공급사슬을 떠돌며 상품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있지만 저자는 송이버섯이 '선물'로 존재하는 패치, 자본주의의 가장자리에서 '소외'를 지워 나가는 장소를 찾아낸다.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으로 발생하는 공생과 재생의 현장을 '알아차리기' 위해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삶의 기본은 불안정과 불확정성
이 책의 성격은 하나로 규정짓기 어렵다. 인류학자가 쓴 책이지만 버섯의 생활로 깊숙이 들어간 부분에서는 생물학책인가 하는 혼란에 빠졌다. 글로벌화한 자본주의의 특성을 파헤치며 자본주의의 가장자리, 그 획일성에서 벗어난 공간을 탐색하는 부분에서는 경제서의 성격을, 라오스와 캄보디아인이 미국에서 버섯 채집인이 된 배경을 논하고 미국과 일본의 경제 사회 문화적 관계를 살피는 부분에서는 역사서의 면모를 보인다.
다방면의 지식을 조각처럼 끌어와 엮어가는 책은 조각조각의 천을 꿰매어 완성한 조각보 같다. 저자가 공들여 의미를 설명하는 '패치'와 '배치'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이어진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애나 칭이 강조하는 것은 '알아차림'의 기술이다.
폐허가 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농민의 방식으로 숲을 재생하고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방식이 아닌 낯선 방식으로 삶을 운영할 수 있음을 알아차리기. 또한 인간과 자본 중심의 사고,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공존하기 위해 주목받지 않는 공간, 버려진 틈새를 주시하자고 우리를 이끈다.
그 긴 여정에서 그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모든 생물은 공생한다는 점이다. 교란과 오염이 삶을 확장하는 긍정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그는 알려준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하는 불확정성과 불안정성 속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속삭인다.
송이버섯은 위기에 처한 인류에 대한 은유다. 소나무에게 헌신하고 숲을 재생하여 인간에게 선물이 되는 버섯처럼, 인간은 타종과 어우러져 서로를 먹이며 지구를 재생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을까.
숲을 살려 다양한 생물이 자연스럽게 뒤얽히는 삶으로 향하는 길이 인간을 살리는 길로 향할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소나무와 버섯, 흙이 뒤엉킨 냄새가 코 끝에 감돌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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