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삼쩜영] 아이 둘 엄마의 고백...돈 말고 이런 걸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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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희 기자]
첫 출산은 2009년이었다. 한여름이었는데 아이가 40주가 되도록 나올 기미가 없어 걱정 속에서 출산을 기다렸다. 당시 살던 월셋집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양수가 터지던 날, 차가 없는 우리 부부는 택시를 잡기 위해 큰길까지 조심조심 내려갔다.
둘째 아이의 출산은 2013년이었다. 둘째 역시 40주가 되도록 출산할 수 없어서 의사와 상의하여 유도분만 날짜까지 잡았는데 분만일 하루 전에 양수가 터졌다. 당시 살던 전셋집은 경사가 완만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전보다 더 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국가를 걱정해서도 아니고, 힘세고 오래가는 생산가능인구 증가에 일조해 대기업의 수익을 높여주기 위해서도 아닌, 그냥 낳고 싶어서 두 아이를 낳았다. 누군가의 눈엔 미래의 국군장병, 노동자, 임산부로 보이겠지만 내겐 그냥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이들에 불과하다.
가족이 아닌데도 다정한 사람들
▲ 작은아이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의 도서관 도서관 벽을 폴딩 도어로 교체하여 모든 학생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로 변경하였다. 내부에는 의자와 책상도 있지만 계단 형태의 쉼터나 빈백도 있어서 신체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
ⓒ 임은희 |
작은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신다. 사정이 있어 학교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생각해 매주 월요일 학교방송을 비공개 스트리밍으로 진행하며 그림책을 낭독하셨다.
나눔을 가르치기 위해 비영리 단체를 후원하고, 장애통합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도서관 접근성을 개선했다. 말로만 듣던 배리어프리 도서관은 아름답기까지 해서 장애에 관계없이 많은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 경쟁보다 공존을 중요시하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는 느리지만 함께 성장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고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준영씨는 오래전부터 아이들 건강에 관심이 많았다. 동네 아이들이 싸우면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고 싸움을 말렸다. 늘 밝은 얼굴로 아이들과 동물들을 애정으로 대하는 준영씨의 또 다른 직함은 '가습기문제해결위원회공동대표 추준영'이다.
그가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광화문으로, 여의도로 바삐 다니며 가습기 피해를 알린 덕분에 나는 내 아이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나는 운 좋게도 포장을 뜯지 않았던 가습기 살균제의 구매자였다. 준석이의 일은 내 아이의 일이었고, 준영씨의 눈물은 나의 눈물이었다.
2024년 1월 기준으로 정부가 인정한 가습기 살균제 참사 사망자수는 1258명이다.(관련기사: 24시간 콧줄에, 폐기능 19%… 이 사람들 다 어떡할 거예요? https://omn.kr/27757) 재판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기괴한 감정으로 준영씨와 준석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속으로 말한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 비워진 임산부 배려석 임산부 시절부터 영유아 둘을 데리고 외출하던 시절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사람들의 배려로 비어있는 배려석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자리 양보를 부탁했는데 무시당하거나 비아냥이 돌아왔을 때의 서러움은 당해본 사람들만 알 수 있다. |
ⓒ 임은희 |
돌봄에 필요하다고 알려진 것들은 대체로 눈에 보이는 것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실상 아이들을 키우는 주양육자인 나에게 힘을 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어리고 약한 아이들을 위해 관용을 베풀 때 감사함을 느꼈다.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 서러웠던 일은 차가 없어서 불편했던 점이나 집이 없어서 매번 이사를 고민해야 했던 일이 아니었다. 아이에게 어른의 사회적 규범을 강요하며 못 지킨다고 손가락질 하거나 안전을 위협당하는 순간들이 내겐 가장 서러운 일들이었다.
배우자가 출장 간 사이 아이가 많이 아파 응급실에 갔는데 소아과 의사가 없으니 다른 병원으로 가라며 진료를 거부했을 때 나는 한없이 작아져 무능한 엄마가 되었다. 걸어 다니는 안전 약자인 아이들의 생명을 도로의 절대강자인 차가 위협하는 상황을 두고 '빠르게 달리는 차'가 '걸어다니는 어린이'를 발견하긴 어렵다며 망가질 차와 전혀 다치지 않을 운전자를 걱정하고,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아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서러웠다.
안내도를 보며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찾았는 데 사용 중지인 상태라 결국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어 다시 유아차를 끌고 갔던 길을 돌아나와야 했을 때, 아이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커다란 차가 정지선을 넘어 횡단보도를 침범할 때 서러웠다.
식당에서 아이가 투정만 부려도 싸늘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서러웠다. 자식을 위해선 위장전입, 입시비리, 고액과외, 생기부를 위한 기부까지 마다하지 않는 부모이면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은 모른 체 하는 정치인들의 태도가 서러웠다.
▲ 야트막 제로웨이스트 클럽의 어린이 환영 공지 반려견과 어린이 손님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포스터.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는 작은아이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소 중 하나다. 포스터 제작 일러스트 스튜디오 포카. |
ⓒ 야트막 |
현금성 출산장려정책을 볼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은 사람인데 혜택이 사람이 아닌 돈에만 맞춰져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돈이면 다 된다는 식의 출산정책이 나올 때마다 출산을 두 번이나 한 것이 잘한 일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아이를 낳을 때 주는 축하금도 좋지만 1회에 그치는 축하금보다는 아이를 낳은 엄마가 원만하게 직장에 복귀해 꾸준히 수입을 가져가며 정부의 시혜적 수당에 기대지 않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데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유급 노동을 하는 맞벌이 가정과 무급 노동을 하는 전업주부를 차별하지 않고 부모라면 누구나 필요할 때 돌봄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은아이의 모습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어서가 아니다. 그저 유아차 대여가 가능하고, 유아휴게실이나 수유실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아이들을 한 명의 관객으로 존중하는 직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
ⓒ 임은희 |
기준을 높여 통과하는 아이들만 살아남는 사회가 아니라 가난한 아이, 아픈 아이,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 모두를 끌어안고 함께 갈 수 있는 사회에서 그런 아이들을 돌보는 보호자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지금보다는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분향소 방향을 완벽하게 차단한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서울광장의 스케이트장은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가린 형태로 만들어졌다. 분향소 방향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에는 크고 작은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존중받지 못하는 타인의 슬픔은 언젠가는 나의 슬픔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민다. |
ⓒ 임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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