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맞물린 주총시즌…자사주 소각 요구 ‘봇물’
금융당국 4월 총선 앞두고 기업가치 개선 유도
다가오는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정부의 ‘기업 밸류업’ 정책과 맞물리면서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들의 주주환원 강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기업들의 자사주 제도 개선을 꾀하고 있어 이러한 움직임에 더욱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이달 발표할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비교 공시하는 대책 등을 담을 예정이라고 밝히면서 주주행동주의 바람이 강해지고 있다. 이번 정책의 핵심은 상장사가 자사주 매입과 소각 등을 통해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아난티 소액주주연대는 지난 5일 청주지방법원에 아난티를 대상으로 주주명부 열람 등사(복사)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소액주주들은 이번 청구소송을 통해 주주명부를 확보한 뒤 소액주주지분 결집에 직접 나설 계획이다. 회사가 지난 1996년 코스닥에 상장한 이후 한 번도 주주배당을 시행하지 않는 등 주주가치 제고에 소극적인 움직임을 이어간 데 따른 것이다.
소액주주연대는 앞서 지난 2일 회사 측에 자사주 매입·소각과 이사·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내용의 주주제안서를 발송하기도 했다. 특히 주주연대는 이번 제안에 대해 회사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행동주의펀드와 연대해 지분 30% 이상을 확보, 주총에서 경영권 행사까지 강행하겠다는 목표다.
소액주주들은 호텔·리조트 기업 아난티가 올해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성장세에 비해 주주환원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자사주 100만주(66억5912만원 어치)를 매입해 소각했으나 전체 발행 주식의 1.09%에 불과해 이들의 불만을 더 키웠다.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도 주총을 앞두고 삼성물산에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 이재용 삼성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과 관련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내달 삼성그룹 주총과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이 18.26%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은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그룹에서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이다.
안다자산운용과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매니지먼트, 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 등 국내외 헤지펀드는 지난 2일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돼 적극적인 주주환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주주 제안서를 삼성물산에 제출했다. 이들 펀드는 삼성물산 지분 1%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말 삼성물산이 1조원대 자사주를 소각한다고 발표했지만 기관들은 이런 조치가 주가 저평가를 해소하기엔 미흡하다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에도 영국계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이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투명화를 촉구했고 시티오브런던인베스트먼트는 배당금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 규모를 5000억원까지 확대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VIP자산운용이 최근 삼양그룹 계열사인 삼양패키징을 상대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요구해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VIP운용은 삼양패키징 지분을 5.83% 보유하고 있다. VIP운용은 삼양패키징이 지난 2022년 현금배당 성향을 약 100%까지 올리는 파격적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했음에도 주가부양 효과를 보지 못해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소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선 4월 총선을 앞둔 지금이 자본시장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도가 높은 시기라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검토했던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정책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따라 선제적인 자사주 매입·소각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며 “여기에 정부가 총선 표심을 잡기 위해 개인투자자들을 의식한 정책을 내놓거나 의견들을 반영하고 있어 이런 방향성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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